2026년 6월 10일 (수)
(녹) 연중 제10주간 수요일 나는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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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바르나바 사도 기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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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 [umbrella] 쪽지 캡슐

05:52 ㅣ No.190042

며칠 동안 후배 신부님과 함께 지내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작년 8월에 미국으로 와서 교포 사목을 시작하였으니 어느덧 1년 가까운 시간이 흐르고 있습니다. 제가 지난 3월에 신부님 본당으로 사순 특강을 다녀왔습니다. 신부님은 제가 있는 본당을 방문하고 싶다고 해서 좋다고 해서 만남이 이루어졌습니다. 함께 지내며 타산지석(他山之石)’이라는 말이 생각났습니다. 다른 이의 삶을 통해 나를 돌아보고 배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먼저 인상 깊었던 것은 기억력이었습니다. 신부님은 12년 전에 만났던 달라스 본당 교우들의 모습과 그때 나누었던 대화까지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저도 기억력이 나쁜 편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그 신부님의 기억력은 감탄할 만했습니다. 그 비결은 단순했습니다. 기록하고 저장하는 삶이었습니다. 20여 년 전 교우들과 함께했던 영상까지도 소중히 간직하고 있었고, 체계적으로 정리된 기억은 사람과의 관계를 더 깊고 따뜻하게 만들어 주고 있었습니다. 또 하나는 친화력이었습니다. 예전에 주교님께서 저를 미국으로 보내시면서 조 신부는 사막에서도 잘 지낼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저 역시 어느 정도 적응력과 친화력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 신부님은 한 걸음 더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운동과 음악이라는 자신의 재능을 통해 처음 만난 사람과도 오래된 친구처럼 어울렸습니다. 그 모습 속에서 공동체를 살리는 힘은 결국 사람을 향한 따뜻한 마음에서 나온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습니다.

 

오늘 우리는 성 바르나바 사도를 기억합니다. 바르나바는 위로의 아들이라는 이름처럼 따뜻한 마음과 넉넉한 품으로 공동체를 세운 사도였습니다. 성령과 은총으로 가득했던 그는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희망의 길을 열었습니다. 안티오키아에서 복음을 전할 때, 그곳에서 처음으로 신자들이 그리스도인이라 불리게 되었던 것도 바르나바의 헌신과 열매였습니다. 저는 문득 피겨 스케이팅의 김연아 선수와 아사다 마오 선수가 떠올랐습니다. 두 선수는 경쟁자였지만, 그 경쟁은 서로를 넘어뜨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서로를 성장시키는 경쟁이었습니다. 그들의 선의의 경쟁 덕분에 피겨 스케이팅은 더 높은 수준으로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초대 교회 안에서도 비슷한 모습이 있었습니다. 바르나바가 먼저 길을 열었고, 바오로 사도가 그 길 위에 신학과 교리의 토대를 놓았습니다. 바르나바가 감성적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열었다면, 바오로는 이성적으로 복음을 정리하고 확장했습니다. 바르나바가 공동체를 품었다면, 바오로는 서간을 통해 공동체를 가르치고 격려했습니다.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누가 더 위대한가를 따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시선에서는 다릅니다. 바르나바도 바오로도 모두 하느님 정원의 아름다운 꽃들입니다. 서로 다른 색깔이 모여 무지개를 이루듯, 각자의 은총과 사명이 모여 교회를 이루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업적이 아니라 겸손이며, 능력이 아니라 하느님을 향한 순명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가서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 앓는 이들을 고쳐 주고, 마귀들을 쫓아내어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이 말씀은 2,000년 전 제자들에게만 하신 말씀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말씀입니다. 우리는 사도는 아니지만, 사도직에 참여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삶의 자리에서 복음을 전하고, 위로하고, 격려하며 살아갈 때 우리는 이미 주님의 제자가 됩니다. 신앙생활은 단순히 시간이 흐르는 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처럼, 의미를 향해, 가치를 향해, 하느님의 뜻을 향해 나아가는 삶입니다. 신부님 본당은 올해 설립 50주년을 맞이하여 공동체가 한마음 한뜻으로 그 시간을 준비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달라스 성 김대건 안드레아 본당도 2027년에 설립 50주년을 맞이하게 됩니다. 두 공동체 모두에게 이 시간은 단순한 기념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이끌어 오신 시간을 돌아보고 앞으로의 길을 새롭게 여는 은총의 시간입니다. 바르나바 사도처럼 주님의 말씀을 충실히 지키고 따르며,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공동체가 된다면, 두 본당의 50주년은 분명 은총의 50, 희망의 50이 될 것입니다.

 

하늘에서 이루어진 아버지의 뜻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 우리 각자의 자리에서 바르나바처럼 위로하고, 바오로처럼 증언하며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그럴 때 우리의 삶 또한 누군가에게는 믿음의 길이 되고, 희망의 길이 될 것입니다. “내가 일을 맡기려고 바르나바와 사울을 불렀으니, 나를 위하여 그 일을 하게 그 사람들을 따로 세워라. 그래서 그들은 단식하며 기도한 뒤 그 두 사람에게 안수하고 나서 떠나보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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