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4일 (수)
(백) 부활 제4주간 수요일 나는 빛으로서 이 세상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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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8.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마음을 여시어 성경을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 양주 올리베따노 이영근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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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문숙 [moon6388] 쪽지 캡슐

2021-04-17 ㅣ No.146163

 

루카 24, 35-48(부활 3 주일)

 

오늘은 부활 제3주일입니다.

오늘 <말씀전례>는 우리로 하여금 부활의 신비에 더 깊이 참여하도록 이끌어줍니다.

 

<제1독서>에서는 사도 베드로가 성전 문 곁에 있는 앉은뱅이를 치유한 다음, 솔로몬 주랑에서, 예수님의 죽음으로 예수님의 영광이 드러나셨음을 선포합니다. 곧 베드로는 앉은뱅이의 치유를 예수님 부활의 의미를 일깨워주는 징표로 들려줍니다,

<제2독서>에서는 사도 요한이 온 세상의 속죄 제물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느님 앞에서 우리를 위해 변호해주신 분이심을 선포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살아계신 하느님께 대한 올바른 깨달음으로 변화된 삶, 부활의 삶으로 살아갈 것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부활의 의미를 깨우치시고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주간 첫날, 엠마오로 가던 길에서 예수님을 만난 두 제자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보니, 열한 제자와 동료들이 모여 “주님께서 되살아나시어 시몬에게 나타나셨다.”(루카 24,34)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엠마오로 가다가 되돌아온 두 제자들도 그들이 길에서 겪은 일과 빵을 떼실 때 그분을 알아보게 된 일을 이야기 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들 가운데 서시며 당신의 평화를 주십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루카 24,36). 그러나 제자들은 “너무나 무섭고 두려워 유령을 보는 줄로 생각하였습니다.” 마치 바다를 걸으신 예수님을 보고서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왜 놀라느냐? 어찌하여 너희 마음에 여러 가지 의혹이 이느냐?

                   내 손과 내 발을 보아라. 바로 나다. 나를 만져보아라.”(루카 24,38-39)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증명하시기 위해, 손발의 상처를 보여주시며 만져보라고 하십니다.

우리도 제자들처럼, 보고도 믿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당신께서는 보지 않고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고 말씀하셨지만, 사실, 우리는 보고도 믿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마치, 히브리인들이 모세를 따라 홍해를 건너왔건만 기적을 보지 못해서가 아니라, 목이 뻣뻣하여 믿지 못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 역시 매일의 삶에서 벌어지는 기적들을, 특히 성체성사를 매일 만지고 먹으면서도 그럴 때가 많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단지 보고 만져보라고만 하시는 것이 아니라, 물고기를 잡수시면서 당신이 유령이 아니라 살아계심을 증명해 보여주시기까지 하십니다.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단지 유령이 아니라는 것을 증거 하시는 것만이 아니라, 제자들과 여전히 친교를 이루고 함께 사신다는 사실을 드러내줍니다.

이처럼, 보여주고, 만지게 하고, 함께 먹으며 친교를 나누시는 주님의 사랑으로 제자들은 차차 눈이 열려갑니다. 그러나 꼭 필요한 한 가지가 남았습니다.

진정 필요한 한 가지, 그것은 바로 “말씀”이었습니다. 믿음은 기적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말씀으로부터 오는 까닭입니다. 마침내, 성경말씀을 들려주심으로 제자들의 마음을 활짝 열어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마음을 여시어 성경을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마태 24,45)

 

그렇습니다. 눈도 귀도 마음을 열어주는 통로입니다. 그러니, 당신의 영으로 하여 그 통로를 열고 마음을 열어야 할 일입니다. 우리의 외적인 눈이 열리고, 속눈이 열리고, 영의 눈이 열려야 할 일입니다.

비록 우리가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고 들을 수 있어도, 결코 마음을 열지 않고는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 부활의 신비입니다. 막달레나 마리아도 예수님이 서 계셨지만 그분이 예수님이신지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들도 함께 걸어가면서도 그분이 예수님이심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부활의 신앙은 믿음의 눈을 떠야만 다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마음이 열리면 곧 부활입니다. 눈이 열리어 하느님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 어디에서나 누구에게서나 부활의 신적 생명을 보는 일입니다. 그리하여 부활의 증인이 되는 일입니다.

이는 부활신앙이 기적을 보는 데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말씀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밝혀줍니다. 말씀이 우리의 마음을 믿음으로 여는 열쇠임을 말해줍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도 우리 주님께서는 말씀으로 우리의 마음을 열어주십니다.

우리의 마음을 열고, 부활의 생명을 부어주십니다. 그 지고한 사랑을 말입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부활의 증인으로서의 사명을 부여하시고자, 먼저 그들을 깨우치시고 사명을 주십니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그리스도는 고난을 겪고 사흘 만에 죽은 이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한다.”(루카 24,46)

 

하오니, 주님!

제 뼈에 새겨지고 제 위장 속에 부어진 말씀이 심장 속에서 불처럼 타오르게 하소서.

제 마른 뼈가 살아나고, 제 마음이 뜨겁게 타오르게 하소서.

당신 무덤의 문을 열듯, 성소의 장막을 가르듯, 제 마음의 빗장을 벗기소서.

무지와 어리석음을 부수소서. 당신 빛으로 말씀을 깨닫게 하소서. 아멘.

 

 

 

-오늘말씀에서 샘 솟은 기도 -

 

그들의 마음을 여시어 성경을 깨닫게 해 주셨다.”(루카 24,45)

 

주님!

제 마음 속 깊은 곳을 여시어,

침묵의 언어로 새겨진 당신의 말씀을 깨닫게 하소서.

깨달은 바를 제 삶으로 인쇄하게 하소서.

제 삶이 당신의 말씀을 기록하는 잉크가 되게 하소서.

당신의 선과 질서, 당신의 뜻과 지혜,

형언할 수 없는 당신의 신비들을 온몸에 새기며 살아가는

당신의 복음서가 되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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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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