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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천주교회 희망의 아이콘 최양업(토마스) 신부 선종 157주년 추모(5)[2018-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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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관우 [pgu77] 쪽지 캡슐

2022-01-19 ㅣ No.224253

조선 최초의 신학생 최양업을 비롯하여 최방제와 김대건은 1836년 12월 2일 대망의 유학길에 오르기에 앞서 마카오 외방전교회 극동대표회 신학교 교장신부에게 순명하고 교구의 신부가 되어 열심히 봉사할 것을 서약하는 선서문에 서약하였는데 그 전문을 공개한다.


< 제1회 조선신학생의 선서문 >

1836년(헌종 2) 12월 2일

조선신학생이 수업할 신학교 교장 000 전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으로 하노라.


나에게와 또한 나의 뒤를 이어 조선교회를 다스릴 목자들에게 순명과 복종을 맹세하느냐? ㅡ 맹세합니다.


나에게와 또한 나의 뒤를 이어 조선교회를 다스릴 수석성직자들에게 장상의 허가 없이는 그들이 지정하지 아니한 다른 지방이나 다른 회로 가지 않을 것을 맹세하느냐? ㅡ 맹세합니다.


외방전교회 신부 조선선교사, 조선교회의 수석으로 있는(이 아래에 서명한) 나는 이 소년들 ㅡ 즉 최 방지거(최 야고보와 황 안나의 아들, 태생지 : 경기도 남안), 최 토마스(태생지 : 충청도 홍주 다래골), 김 안드레아(태생지 : 충청도 밋내 놀매) ㅡ 이들이 오주(吾主) 예수 고상 앞에서 복음 성경 위에 손을 얹고 1836년(헌종 2) 12월 2일 서약하였음을 받았음.


베드로, 필립벨도, 모방, 조선선교사.


위의 선서문을 통하여 볼 때 먼저 신학생들에게 성직자로서 순명을 요구하였고, 다음 다른 곳으로의 이탈을 방지하는 내용이 서술되어 있다.


특히 신학교의 교장신부 성명을 정확히 기재하지 않은 이유는 연락관계가 여의치 못하여 그곳에 가서 형편에 따라 조처할 것이며, 국경지방에서 입국의 기회를 기다리던 샤스탕(Chastan, 鄭牙各伯) 신부에게 일임한다는 뜻이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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