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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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미사에서 꽂힌 말씀 : 7+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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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관 [gabie] 쪽지 캡슐

2022-06-25 ㅣ No.225389

오늘 미사에서 꽂힌 말씀 : 7+70=?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625)

 

오늘 625일은 72년 전을 기억하는 날이다. 이른바 한국전쟁이라는 6·25가 터진 날이 72년 전 오늘의 날짜다. 동족상잔을 뼈저리게 기억하여 오늘 우리 교회가 기도한다. 그래서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이라고 오늘을 일컫는 교회의 기도지향은 한 마디로 화해. , 남북으로 갈라져 살기를 이제 그만하고 일치하여 살자고 화해를 촉구하면서 그 실현을 하느님께 간구하는 날이 오늘이다.

72년 이상, 아니 더 거슬러 올라가 8·15해방1945년에서부터 우리가 갈라져 온 77년의 참혹한 질환을 화해와 일치라는 처방으로 치유하기 위해서는 어찌해야 하는가? 이에 대해서 오늘 미사에서 봉독하는 마태오복음서 1822절의 예수님 말씀으로 우리 자신을 무장(?)하는 것이 치유를 위한 처방전의 기본이라는 생각이 든다. “usque septies : sed usque septuagies septies” 일곱 번까지? 더욱 일흔일곱 번까지!” 이렇게 우리가 무장(?)해야 한다. 7번 했으면 더 나아가 70번을 계속하라는 말씀이다. 도합 77번이다. 77번까지 우리 마음을 다지고 또 다져야 한다는 말씀이다.

우리 마음을 어떻게 다지라는 건가? 용서(容恕)할 마음을 다지라는 말씀이다. 형제가 나를 거스른 행위를 7번 정도까지 용서하면 되겠는가 질문한 제자에게 그것의 10배를 더 예수님께서 부가하셨다. 아니, 이게 가능한 일인가? 아득하다! 분단으로 서로 척지고 참아 살아온 게 70년을 훨씬 넘겼는데, 이걸 10번 반복하려면 앞으로도 700년 이상을 이렇게 살아야 한다. 정말 까마득하고 아득하다. 그러나 그럴 각오를 지녀야 한다. 또다시 서로 싸워서(전쟁해서) 공멸하지 않으려면 이렇게라도 마음을 다져야 한다. 이러한 다짐 비슷한 일을 해보자고 교우들께 제안해서 해본 일이 있다. 다음과 같이 기억하는 일이다.

본당 주임신부 노릇을 하던 시절, ‘북한의 자매성당 재건기금 마련 운동이란 걸 했다. 1945년 해방 전까지 존속했던 북한의 성당중 하나를 우리 본당이 선정하여 자매로 삼고, 언젠가 우리가 손 쓸 수 있을 때가 오면 즉시 달려가서 그 성당을 복구할 기금을 마련하자는 운동이었다. 이름하여 북한 짝사랑 본당 재건기금을 위해 매월 한 주일에 뜻있는 교우들이 모여서 기도하고 본당에서 모금하는 일이었다. 예를 들자면, 사리원성당, 해주성당, 진남포성당 등을 짝사랑 자매본당이라 하여 그런 일을 했다. 그런데 내가 임기 마치고 이동된 후 그 운동이 사라지고 그간 모금했던 것은 본당의 다른 일에 전용되어버렸다는 소식을 듣곤 했다. 그런 소식을 들을 때마다 희망의 불꽃을 살려 나가자는 나의 뜻이 이렇게 어리석은 짓으로 뭉개지고 만다는 절망으로 서글펐다. 실효성 없는 것 그만하라는 후임 사제의 조치였다는 것이다. 하니, 나는 미친놈이었다.

한 사제로서 지금까지 비겁하게 살아온 게 없는지 나 자신을 반성해보면 나의 부끄러운 모습이 여러 가지로 드러난다. 그 한 가지를 오늘 고백한다. 북한에 비밀리에 가서 거기 신자 한 사람이라도 만나서 성사와 미사를 해주지 않은 사제가 나 자신이라는 생각으로 참 부끄럽다. 70년 넘게 북한에서 비밀리에 신앙을 지키며 살고 있을 신자들을 상상해본다. 그런데 남한에서 편히 신앙생활하고 있는 사제 중 하나라도 북한의 신자들을 찾아갈 생각을 해보았는가? 나 자신부터 참담하게 부끄러워해야 하는 것이다. 옛적 오가작통의 철저한 그물망 박해 속에서 이역만리로부터 몰래 우리나라에 숨어들어와 목숨 걸고 신자들을 찾아다니며 사목한 파란 눈에 코가 큰 서양 선교사들은 어렵사리 조선말 떠듬거리면서 그리하다가 잡혀서 순교했는데, 정작 같은 얼굴에 같은 말을 쓰며 동족인 나는 북한의 괴물 빨갱이 집단을 두려워해서 그곳의 신자 한 사람이라도 찾아갈 생각을 한 번도 하지 않고 편안하고 번창하는 남한 교회에서 잘 먹고 잘살아 온 사제가 나 자신이다. 앞으로 미래의 후배들이 나 같은 이 시대의 사제들을 뭐라 평가할는지! “매우 비겁한 선배들이었구나!”라 할 것이다. 해서 6·25라는 과거의 동족상잔 야만을 상징하는 오늘, 미래의 후배들이 평가할 것을 상상하여 참으로 비겁한 두려움에 사로잡히는 날이다. 역사는 그렇게 냉혹하기에 더욱 두렵다.

하지만 기도는 해야 한다. ‘민족 화해와 일치를 위하여! 그러나 분명히 해 둘 것이 있다. 실천이 없는 기도는 위선이라는 사실을! 화해와 일치를 기도한다는 입에서 걸핏하면 빨갱이, 좌파, 종북이란 욕을 쏟아낸다는 것은 위선을 넘어 비열한 증오를 토하는 짓이다. 내가 실행해보자고 했던 북한 짝사랑 자매성당 재건기금 마련 운동을 냉소하던 분들은 가능한 짓을 해야지!”라며 거부했다. 그런 분들은 치가 떨리는 6·25의 전범괴수 김일성 일가 체제를 박멸하기 전까지는 그쪽에 대고 아무런 희망을 걸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쪽에 대고 말을 거는 행위 자체가 빨갱이, 좌파, 종북이라는 것이다. 이런 주장을 하는 분들은 말할 것이다. “가능한 것을 바라며 기도해야지!”

그렇다! 아득하다.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희망은 작은 불씨 같은 것이다. 그걸 훅 불어버리면 꺼진다. 그렇게 훅 불어버리는 행위가 절망 가득한 한숨이다. 그런 한숨을 쉬지 말라고 하신 말씀이 예수님의 부가공식 ‘7+70=?’이다. 답은 77이겠지만 끝없이라는 뜻이다. 우리의 마음이 끝없이받아들일 수 있어야 화해와 일치가 현실로 다가올 것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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