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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성 김대건 안드레아 탄생 200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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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을수 [mokmarcus] 쪽지 캡슐

2021-04-11 ㅣ No.222400

김대건 사제 생애

2021년 8월 21일은 김대건 안드레아(Andrre)사제 탄생 200주년이 되는 날이다.

김대건(金大建 18211846 25세 순교)사제는 충남 당진시 우강면 송산리 솔뫼 132번지에서 탄생하였다부친(先親)은 김해 김씨 제()자 항렬로 오행상 수생목(水生木)상생 제준(濟俊 17961839. 8. 19 사위 곽씨 고발로 기해사옥 순교, 1984년 시복묘소 실전이냐시오(Ignatius)와 모친(先妣고 울술라(17981864, 1984년 시복사이에서 3남매 중 맏이로 순조21년 신사년(辛巳年) 1821년 8월 21일 탄생하였다.

아이 때 이름이 복을 자주 많이 받으라는 뜻에서 재복(再福)이라 하고 호적상 이름은 지식<芝植동생 김난식 프란치스코(18271873)도 식()자 항렬에 오행상 木生火상생>이며 20세 관례(冠禮때에 자()를 대건(大建)이라 지었다()는 본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고 존중하는 뜻에서 본 이름대신 부르는 이름이다이순신(李舜臣 15451598) 장군의 자()는 여해(汝諧)이고 시호는 충무(忠武)이다.

조부(祖考)의 항렬이 솥귀 현()자로 오행(木火土金水)상 금생수(金生水)인 김택현(金澤鉉)이고 증조부(曾祖考김진후(金震厚 17381814) 비오(Biot)는 면천 군수(현 당진시 면천면)를 지내고 순조원년(1801) 신유사옥(국정지정 명칭 표기)때 서산시 해미면 읍내리 해미읍성 감옥에 투옥되어 1814년 옥사하였고 1984년 시복되었다.

김대건(金大建사제는 7살 때 옛 용인현 수여면 남곡동(호구총수용인현 양지면 남곡리 골배마실<마을 형상이 좌우 산으로 둘러 싸여 마치 배를 매던 골짜기 즉 배매실로 맬계()자와 배주()의 계주형국>로 이사하여 15살 때 헌종2(1836) 4월경 프랑스 선교사로 1925년 7월 5일 시복되고 1984년 시성된 모방(Moubant Pierre Philibert, 18031839 기해박해 때 순교명동성당 지하묘소)에게 용인시 양지면 남곡리 은이(隱里隱而隱伊隱怡공소에서 안드레아 세례명을 받았다.

1837년 6월 마카오(Macao)에 도착하여 파리 외방전교회의 오문신학교에서 수학하고 1844년 12월 초에 길림성 장춘시 소팔가자(小八家子)성당에서 1843년 12월 31일 제3대 조선교구장에 임명된 페레올(Ferreol Jean Joseph Jena Baptiste, 18081853, 묘소 미리내)주교에게 부제서품을 받고 1845년 8월 17일 중국 상하이(上海인근 김가항<金家巷김씨 성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사는 거리()이다한국 초기천주교회의 여정에는 항구 항()자 金家港 금가항 표기는 오기임>성당에서 페레올 주교로부터 사제서품을 받아 한국 최초의 사제가 되었다.

김가항성당은 2001년 3월 도시개발로 철거되어 은이로 182번 은이성지(0313381702)로 옮겨 그 해 7월 복원하였다.

1845년 10월 12일 밤중에 금강을 거슬러 올라와 옛 전라도 여산도호부 북일면 나암리(羅巖里호구총수여산현 전북 익산시 망성면 화산리 산기슭의 너른바위 이름을 딴 나바위로 페레올(Ferreol) 주교와 1941년 주교에 임명된 다블뤼(Daveluy Maria Nicolas Antoine 18171866 병인박해 때 순교선교사와 현석문(玄錫文 17971846 순교카로로(Caloro)등 신자 11명과 함께 입항 귀국하였다.

1846년 4월 골배마실을 떠나 6월 5일 황해도 강령현 남일면 등산리(현 경기도 옹진군 흥미면 등산리미수복지구순위도(巡威島등산진(登山鎭)에서 등산진 첨사 정기호에게 체포된 후 3개월 지난 9월 16(음력 8월 25용산 이촌2동 1991 새남터에서 순교하니 나이가 25세 이었고 체포되기까지 6개월간 사목활동을 하였다새남터에서 효수된지 40일이 지난 10월 26일 미리내에 사는 이민식(李敏植 18291921) 빈첸시오가 17살 때 시신을 수습하여 안성시 양성면 미산리 미산1길 21 미리내에 매장한 것을 파묘하여 1927년에 신축한 김대건 기념 경당 펜스 출입문 안 왼편에 유해 중 아래턱뼈를 사각 분묘에 검정 조각돌로 조성 안장하였고 2020년 기념경당을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기념 성당으로 명칭 변경하였으며 두개골 유해는 서울 가톨릭대학 성당에 안장하고 그 외의 유해는 전국 성당에 분산 안장하였다.

철종8(1857) 교황 피우스9(PiusⅨ 재위 18461878) 11(1857)에 가경자(可敬者)로 올리고 1925년 7월 5일 교황 피우스11(Pius재위 19221939) 3(1925)에 시복 된지 60년 지난 1984년 5월 6일 서울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2(19202005)에게 103위 성인과 함께 시성 되었다.

솔뫼성지은이성지와 미리내성지나바위성당

1) 솔뫼성지

솔뫼성지(0413625021, 충남 지방기념물 제146)는 1945년 백빌리버 사제가 김대건 사제 복자비를 세우고(철거) 1946년 김대건 사제 순교 100주년을 맞아 생가터 주변 4,600평을 매입하여 1977년 김대건 사제 동상 기념탑을 세우고 1982년 피정의 집(지하1층 지상3)을 짓고 2004년 생가를 복원하고 2005년 김대건 사제 기념관을 건립하였으며 2006년에 기념성당과 2011년 5월 원형야외성당 솔뫼아레나 와 12사도상을 세웠다.

2) 은이성지

은이는 천주교 박해를 피해 교인들이 숨어 살아 형성된 마을이 아니다고려말 때 영천이씨 남곡(南谷이석지(釋之묘소 용인시 처인구 고림동)가 목은 이색(穡 13281396)과 함께 과거에 급제하여 경상도 안렴사(현 도지사)를 지내다가 고려가 망하자 두문동 72현인 중 한 사람으로 이곳에 숨어 살으니(隱居그 손자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종검(宗儉)과 군자판사(軍資判事종겸(宗謙)이도 조선조 제6대 단종(14411457, 16)이 폐위되자 이곳에 은거하여 효우정(孝友亭)을 짓고 숨어 살았다이색이 지은 남곡기(南谷記)가 전하고 성종9(1478) 대제학 서거정(徐居正 14201488)이 지은 효우정기(孝友亭記)동문선(東文選)에 실려 있다.

3) 미리내 성지

미래내는 일부에서 용을 뜻한다고 하나 신라 중기 때 화엄종의 10대 사찰 중 하나인 쌍령산(雙嶺山 502m, 쌍룡산 또는 美理山 이라고도 함미리사(美理寺)가 창건되어 그 앞으로 맑게 냇물이 흘러 절 이름에 내 천()자를 따서 미리내(美理川라는 지명이 유래 된 것으로 추정된다따라서 1.300년전의 불교 성지가 천주교 성지(미리내성지 0316741256)로 바뀌었다.

4) 나바위 성당

1897년 프랑스 선교사 베르모렐(Vermorel 한국명 장약슬 18601937) 사제가 페레올 주교 일행이 강경에서 서쪽으로 2Km거리의 나바위로 입국한 기념으로 개인 주택을 매입나바위성당(0638618182, 사적 제318)으로 개조한 것을 1906년 목조와가 팔작 지붕으로 개축 하였다고 한국가톨릭대사전에 실려있다.

성전내부 문은 남녀 교우가 구별하여 들어가 앉도록 출입문을 만들고 칸막이로 막았었는데 지금도 그 흔적이 남아 있다고 한다강경성당과 은이성지 측에서는 충남 논산시 강경읍 황산리를 거쳐 입국하였다고 주장하나 위와같은 사실로 살펴볼 때 오류로 보인다.

페레올 주교 일행이 타고 왔던 라파엘호(Raphael 길이 25폭 9)를 본따서 3층 사괴석으로 쌓아 올린 위에 복자 안드레아 김신부 순교비라고 세로 두 줄로 쓴 정사각형 흰 표석 위로 십자가를 세웠다(순교비라 하면 순교지로 착각할 수 있음따라서 1925년 시복을 기념하기 위해 비석 첫머리에 복자를 쓴 것으로 보면 순교비를 기념비로 고쳐야 하고 비석 전면을 뱃머리 쪽으로 배치하여야 함). 나바위성당 설립 100주년 기념으로 지은 피정의 집(연건평 740)이 있다.

시복시성시호

교황청에서는 한평생 거룩한 삶을 살았거나 순교한 사람을 엄선하여 복자(福者 ,Blessed)로 선정된 이를 다른 이름으로 봉하여 세운다는 뜻의 시(號以易名曰諡)자를 취하여 시복(諡福)이라 부르고 시복 바로 윗단계의 성인(聖人, a saint)으로 선정된 이를 시성(諡聖, canonistic)이라 부른다.

세상에서 성()이라 하는 것은 보통사람들이 무엇 하나를 따르지 못하는 수준 높은 경지를 갖추고 있는 것을 말하기 때문에 바둑을 어느 누구와 비교할 만한 사람이 없을 정도로 잘 두는 사람을 기성(棋聖, a great master of paduk)이라 부르고 그림을 비교할 만한 자 없이 잘 그리는 사람을 화성(畵聖, a celebrated picture)이라 부르며 역사상 뛰어나고 위대한 음악가와 시인을 높여 악성(樂聖, a celebrated musician)과 시성(詩聖, a great poet)이라 부른다.

왕조시대에는 왕과 왕비 및 재상이 서거하면 평생의 행적을 기려서 명호(名號)를 세워 고귀하게 높여(夫名號 所以爲尊也韓非子詭使篇이름을 바꾸어 시호(諡號), 묘호(廟號), 휘호(徽號)를 내려준다.

 

2. 김수환 추기경 생가터 표석흉상 하나 없어

김수환(金壽煥 1922. 5. 82009.2. 16) 추기경은 논산시 연무읍 출신으로 1951년 사제 서품을 받고 같은 해 9월 15일 안동성당 주임신부에서 1966년 5월 31일 마산교구장을 거쳐 1968년 5월 29일 서울교구장 대주교가 되었다가 이듬해 로마 교황청으로부터 한국 최초의 추기경에 임명되었다.

김대건 시성은 출생지 솔뫼어릴 때 살던 골배마실세례받은 은이공소입국한 금강 나바위미리내 성지등 조성하여 활성화 하였는데 2022년 5월 8일 추기경 탄생 100주년으로 출생지에는 표석을 세우고 사목현장에는 흉상 설치 계획을 세웠는가광산김씨 문중에서는 족보까지 파 냈다고 하는데 너무 홀대한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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