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8일 (목)
(백) 부활 제3주간 목요일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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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인으로 산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고민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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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만연 [fisherpeter] 쪽지 캡슐

2021-04-17 ㅣ No.146156

 

지금 국내 모기업이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습니다. 기업의 이미지 실추와 경영상의 적자 손실을 메우기 위해 자사 제품에 대해 과도한 선전을 코로나 시국에 불안한 소비자들의 불안한 심리를 이용해 허위 과대 선전을 했음이 밝혀졌기 때문에 일어난 결과입니다. 스스로가 자살골을 허용한 위험한 자충수를 둔 것입니다. 조그마한 구멍가게도 아니고 인지도가 있는 기업인 만큼 어떻게 이런 일을 생각하고 무모한 일을 구상한 것인지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자신의 회사의 생존을 위해서 타사 제품을 비방하는 글을 온라인 상에 지속적으로 알려서 상대방 기업에 막대한 손실을 입힌 것으로 지금 의혹을 받고 있는 상태라 조사 중에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자신의 기업이 생존하기 위한 전략으로서 사용한 일이라고는 하지만 이것도 하나의 지켜야 할 상도가 있는 것처럼 근거 없는 사실로 인해 타기업의 생존에도 해를 끼칠 위험한 행동을 한다는 것은 기업의 윤리정신의 근간을 해치는 좋지 못한 행동임에 틀림없습니다. 처음엔 국민들도 불안한 사회적인 코로나 시국에 순간적으로 혹했지만 이게 과대 광고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이제 이 기업에 대해 등을 돌리는 극한의 상황으로까지 번져가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기업이 힘든데 이젠 자사의 기업 이미지에 이로 인해 더 큰 타격을 입게 된 것입니다. 이 사태를 바라보면서 신앙에 접근해봤습니다. 우리는 이 사태를 바라보면서 하나의 교훈을 얻어야 할 게 있습니다. 세상이든, 종교 신앙생활이든 인간이 사는 세상에는 정도라는 게 있습니다. 근거 없이 자신의 안위를 위해 남을 비방하는 행위를 하게 되었을 때, 그게 거짓이라는 사실이 드러나게 되면 지금 모 기업처럼 씻을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올 수가 있습니다. 실제 이런 것처럼 신앙 안에서도 이렇게 하는 사람도 문제이지만 이런 것에 동조하는 것도 좋지 못한 것입니다. 상거래에도 상도가 있듯이 신앙에도 최소한의 윤리가 있습니다. 이런 윤리는 성당에서 가르쳐주는 게 아닙니다. 자신이 스스로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거창한 영원한 생명을 위해서만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최종 목표는 그것이라고 하더라도 그 길을 가는데 있어서 가장 기본이 되는 신앙인으로서의 기본소양을 먼저 갖추는 게 더 급선무가 될 것입니다. 이런 소양이 없으면 그건 죽을 때까지 한낱 종교인으로밖에 남지 않을 것입니다.

 

신앙인은 신앙을 가진 사람이라고 해서 신앙인이라고 불리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인은 신앙인다운 모습을 갖춘 사람을 신앙인이라고 불러야 할 것입니다. 종교인과 신앙인은 차이가 많이 있습니다. 외형과 형식에 맞추어서 살게 되면 종교인으로 전락할 경우가 많습니다. 신앙인은 부족하지만 신앙에 의지해서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메우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진정한 신앙인이 될 것입니다. 신앙의 길은 자신이 그 길을 가는 데에도 바쁘기만 한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신앙인은 순수한 면이 많이 있어야 합니다. 그건 나이가 많고 적고를 따질 상황이 아닙니다. 굿뉴스에 글을 올리는 같은 종씨의 형제님 글에 제가 추천을 여러 번 했습니다.

 

제가 그 형제님의 글에 추천을 한 이유는 딱 한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글 속에 진심이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글 속에서 순수함이 묻어 있는 게 느껴집니다. 저보다 연배는 많으신 분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확실한 건 잘 모릅니다. 제가 이 형제님의 글을 보면서 느끼는 느낌이지만 자신을 글 속에서 어떤 꿍꿍이를 가지고 글을 쓰는 걸 발견할 수가 없다는 걸 매번 글을 보면 느낍니다. 그래서 저는 이 형제님의 글에 산뜻한 느낌을 받습니다.

 

성인성녀의 전기를 보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사실 엄밀하게 말하면 남을 쳐다볼 시간도 없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모습을 봐도 다 볼 수가 없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지금 카톡이 하나 왔습니다. 굿뉴스에 글을 올리시는 형제님이십니다. 격려의 글을 보내주셨습니다. 바로 이게 진정한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이런 내공이 하루아침에 생긴 것은 아닐 겁니다.

 

우리는 나약한 존재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된 사람입니다. 실제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됐다면 그 모습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정작 그런 모습으로 살아가는지 자문해본다면 어떻습니까? 저도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그만큼 나약한 인간이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길을 가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나약한 존재라고 하는 변명만 할 수가 없습니다. 인간은 유아기, 청년기, 장년기를 거치면서 성장해나가는 게 인간의 삶입니다. 몸은 어른이면서 생각과 행동은 언제까지나 유아기에 머물러 있을 수 없습니다. 하느님께서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성장하기를 원하실 겁니다.

 

신앙인으로 남을지, 종교인으로 남을지는 누군가의 평가보다도 일단 먼저 자신 스스로가 생각해봐야 할 것입니다. 우린 신앙인에 대한 정의를 새롭게 다시 한 번 더 정의를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앙인은 신앙을 가진 사람이 신앙인이 아니라, 신앙인의 모습과 면모를 갖춘 사람이 진정한 신앙인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더 새겨봤으면 합니다. 객관적인 외부의 평가보다는 스스로 자신의 양심 속에 있는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보면 자신의 양심이 말해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가장 확실한 답이 될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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