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5.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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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088 김중애 [ji5321] 스크랩 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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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5월 10일
부활 제3주간 토요일
혹시 어젯밤 꿈을 기억하십니까?
어떤 분은 꿈을 꾸지 않는다고
말씀하실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어느 대학 교수님께서
학생들에게 꿈을 적어 오라는
과제를 내주었습니다. 그러자 학생 중
몇 명이 항의했다는 것입니다.
“저는 꿈을 안 꾸는데요?”
교수님은 “꿈꾸는 것까지 과제입니다.”
라면서 일주일 안에 무조건 과제를
해야 함을 강조하셨습니다. 일주일 뒤,
학생들은 과제를 모두 제출했을까요?
그리고 꿈을 꾸지 않는다는 학생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과제를 내지 않은
학생은 하나도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교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학점이 이렇게 무섭습니다.
꾸지 않던 꿈도 꾸게 합니다.”
학생에게는 학점이 제일 무서울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신앙인이
제일 무서워해야 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하느님의 사랑 안에 머물지 못하는 것이고,
또 그 사랑을 삶 안에서 느끼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요? 이것이 제일
중요한데도, 그 사실을 너무 자주
잊어버리는 우리입니다. 세상의 것,
순간의 만족을 주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이를 얻지
못할 것을 걱정하고 두려워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이 말씀은 듣기가 너무 거북하다.
누가 듣고 있을 수 있겠는가?”(요한 6,60)
라고 말하면서, 집으로 되돌아가고 또
더 이상 예수님과 함께 다니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이제까지 들었던 예수님의 말씀은
무엇일까요? 그리고 이제까지 보았던
예수님의 행적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을 세상의 기준으로만 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생명의 빵’이라며
당신 신원에 관해 말씀하시는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들이
무엇을 무서워하고 있었던 것일까요?
세상의 것들에서 벗어나는 것을 가장
두려워했고 무서워했던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에게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요한 6,67)
하고 물으십니다. 그때 시몬 베드로가
나서서 이야기합니다.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서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스승님께서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라고
저희는 믿어 왔고 또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요한 6,68.69)
세상 기준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하늘 나라의 기준으로 바라보고 있기에
이렇게 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주님을 따른다면 그 기준이
어디에 있는지를 분명하게 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깊이
묵상해야 합니다. 영원한 생명이 주어지는
하느님의 사랑에 집중해야 합니다.
♡오늘의 명언♡
스스로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마야 안젤루)
사진설명: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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