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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

183027 박영희 [corenelia] 스크랩 2025-06-24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 루카 1,57-66.80 "안 됩니다. 요한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오늘은 성 요한 세례자의 탄생 축일입니다. 보통 다른 성인의 경우 그가 이 세상에서의 삶을 마무리하고 하느님 나라로 들어가게 된 ‘천상탄일’을 그 축일로 삼는 것에 비해, 세례자 요한은 그가 수난 당하고 죽은 날을 ‘기념’일로 지냅니다. 그가 주님의 길을 미리 닦은 ‘선구자’로서 겪은 수난과 죽음이 주님께서 당하실 수난과 죽음을 미리 보여주는 ‘예표’의 성격을 지녔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신앙인이 겪는 수난과 죽음은 주님의 부활을 통해서만 그 의미가 완전히 드러나고 완성되기에, 세례자 요한의 죽음 자체에 큰 의미를 두기보다 그가 탄생하는 과정에서 큰 은총과 사랑으로 이끌어주신 하느님의 섭리를 기념하고, 그분께 찬미를 드리는데에 집중하고자 오늘 세례자 요한의 탄생 축일을 더 크게 지내는 겁니다.

오늘 제1독서인 이사야서를 보면 하느님께서 당신 뜻을 수행할 충실한 종의 탄생에 깊이 개입하시는 모습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나를 모태에서부터 부르시고, 어머니의 배 속에서부터 내 이름을 지어 주셨다.”(이사 49,1) 이런 하느님의 개입과 섭리는 세례자 요한의 탄생 과정에서 분명하게 드러나지요. 하느님은 성자의 강생으로 당신 백성을 구원하시려는 뜻을 이루시기 위해 즈카르야의 아들을 선택하시어 특별한 은총을 베푸십니다. 그의 어머니 엘리사벳이 아이를 낳지 못하는 몸이었음에도, 그의 부모 모두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어 생명을 잉태할 수 없는 상태였음에도, 그들이 아들을 얻게 하심으로써 그들을 통해 당신의 놀라운 권능과 크신 자비를 드러내신 것이지요. 하느님께서 친히 마련해주신 이름인 ‘요한’이 ‘하느님의 은총’, ‘하느님은 자비로우시다’라는 뜻을 지니는 것에서도 하느님의 의도가 드러납니다.

그러나 요한의 탄생 과정은 순탄하지만은 않았습니다. 그의 어머니 엘리사벳이 가브리엘 천사를 통해 전해진 하느님 말씀을 믿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의 아버지 즈카르야 또한 하느님의 뜻을 생각하기보다 자신이 처한 상황을 먼저 생각하며 하느님의 권능을 의심했기 때문입니다. 그에 대한 벌로 아기가 태어나는 날까지 몇 달 동안을 벙어리로 지내야만 했지요. 당신 말씀을 온전히 믿지 못하고 의심한 그가, 아직 당신의 뜻과 계획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그가 엉뚱한 소리를 하지 않도록 그의 입을 막아버리신 겁니다. 그러다 아기가 태어나고 그의 이름을 명명하는 자리에서, 그 부모는 ‘즈카르야’라는 가문의 이름 대신 하느님께서 미리 정해주신 이름인 ‘요한’이라고 정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그제서야 즈카르야의 묶인 혀가 풀리면서 하느님께서 자신들에게 베풀어주신 은총과 자비에 대해 감사와 찬미의 기도를 바치게 됩니다. ‘요한’이라는 이름을 통해 하느님께서 그들의 아기에게 부여하신 정체성과 소명이 확립되는 순간이었지요.

한편 오늘의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께서 요한에게 맡기신 사명이 ‘그분께서 약속하신 구원자를 보내주시기 전에, 이스라엘 백성에게 회개의 세례를 미리 선포하는 것’이었다고 증언합니다. 이는 요한의 존재가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 안에서 참된 의미를 지니게 됨을 밝혀줍니다. 만약 그리스도께서 오시지 않았다면 요한이 이 세상에 태어나고 존재해야 할 이유와 의미도 사라졌을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존재와 사명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결코 우리의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분리될 수 없습니다. 그분과의 관계가, 가지인 우리가 포도나무이신 주님께 단단히 붙어있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의미이자 가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주님의 뜻과 가르침을 마음에 새기고 그분께서 주신 사랑의 계명을 충실히 지키며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하느님께서 사랑과 자비의 손길로 당신의 종 요한을 보살피고 지켜주셨던 것처럼, 주님께서 우리를 은총과 사랑으로 보살펴 주시고 지켜주실 것입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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