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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자) 2026년 2월 27일 (금)사순 제1주간 금요일물러가 먼저 그 형제와 화해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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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사순 제1주간 금요일

188184 조재형 [umbrella] 스크랩 2026-02-26

달라스는 겨울에도 그리 춥지 않습니다. 그런데 1년에 한 두 번 추울 때가 있습니다. 그런 예보가 있으면 수도꼭지를 천으로 감싸 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동파의 위험이 있습니다. 성당의 수도관 창고에도 난방 히터를 틀어주어야 합니다. 일기 예보에 눈 소식이 있었고, 눈이 온 다음에는 기온이 영하 10도까지 내려간다고 했습니다. 눈이 오면 달라스는 학교도 문을 닫습니다. 제설 작업이 거의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눈이 내리는 환경에서 운전을 거의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눈이 많이 올 것에 대비해서 공지문을 만들었습니다. 눈 소식이 있는 날이 토요일과 주일이라서 고민이 있었지만, 안전을 위해서 공지문을 만들었습니다. 토요일 미사는 없다는 내용과 주일 미사 참례 의무도 면제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근처 가까운 성당으로 갈 수도 있고, 방송으로 미사 참례를 할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성당에 오는 분들이 있기에 저와 부주임 신부님은 성당에 있었습니다.

 

추워지기 전에 신기한 것을 경험했습니다. 벌들이 사제관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벌들은 일기 예보를 모르지만, 본능적으로 피하는 것 같았습니다. 철새들도 때가 되면 수천 킬로가 넘는 먼 여행을 떠납니다. 내비게이션도 없고, 일기 예보도 없는데 역시 본능적으로 그렇게 길을 떠나는 걸 봅니다. 정태현 신부님의 성서 입문을 읽었습니다. 마지막 부분은 요한 묵시록이었습니다. 신부님은 묵시와 예언이 비슷하지만, 다른 점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묵시는 상징과 환시를 통해서 하느님의 심판과 구원을 이야기한다고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악의 세력을 심판하시고, 끝까지 믿고 따르는 자는 구원하신다고 합니다. 묵시문학은 악인에게는 회개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예언은 같은 환시와 상징을 사용하지만 한 가지 차이가 있다고 합니다. 악인이라 할지라도 회개한다면 하느님께서는 자비하시기에 용서하신다고 합니다. 의인들도 잘못하면 최후의 선택에서 배제될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어린양이 흘린 피로 구원의 길이 열렸다고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유다와 베드로의 이야기를 잘 알고 있습니다. 유다는 열정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였습니다. 그러나 유다는 예수님께서 보는 세상을 보지 않았습니다. 유다는 자신이 보고 싶은 세상을 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지려고 하셨던 십자가를 보지 않았습니다. 신앙과 진리가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욕심을 채우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결국 유다는 스승이신 예수님을 팔아넘겼습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종교의 이름으로 자신의 욕망을 채우고 있습니다. 지식이 위선과 가식을 포장하는 도구가 되고 있습니다. 종교의 거룩함은 사라지고, 종교라는 제도와 틀만 남게 되었습니다. 채우려 했지만 채워지지 않는 욕망 때문에 유다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유다는 자기 죄와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고 하느님의 자비를 전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유다의 죄가 크기 때문에 용서받지 못한 것이 아닙니다. 유다는 뉘우치지 않았기 때문에 구원받지 못한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도 열정이 있었습니다. 주님을 사랑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주님 저는 죄인입니다. 저의 곁을 떠나 주십시오. 주님 저도 물 위를 걷게 해 주십시오. 주님은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 주님 여기에 초막 셋을 지어서 하나는 모세에게, 하나는 엘리야에게, 하나는 주님께 드리고 싶습니다. 다른 모든 사람은 주님을 배반 할 지라도 저는 주님을 배반하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가시면 안 됩니다.” 그러나 베드로 사도는 주님께 이런 말씀을 들었습니다. “너는 오늘 닭이 울기 전에 나를 3번 모른다고 할 것이다.” 열정이 있었고, 사랑이 있었지만, 베드로 사도는 결정적인 순간에 예수님을 배반하였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고난의 시간이 다가오자, 예수님을 배반하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어쩌면 나약한 베드로의 모습을 간직하며 살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 사도와 유다의 차이점이 있습니다. 유다는 회개하지 않았고, 눈물을 흘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베드로 사도는 닭이 울자, 눈물을 흘렸고, 회개하였습니다. 베드로 사도가 용서받은 것은 죄가 작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베드로 사도가 천국의 열쇠를 받았던 것은 배반하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부족한 자신을 인정하고, 회개의 눈물을 흘렸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구체적으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말해주시고 있습니다.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네가 제단에 예물을 바치려고 하다가, 거기에서 형제가 너에게 원망을 품고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거기 제단 앞에 놓아두고 물러가 먼저 그 형제와 화해하여라. 그런 다음에 돌아와서 예물을 바쳐라.”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사순시기를 지내고 있는지 돌아봅니다. 하느님의 뜻을 따르면서 공정과 정의를 실천하는 사순시기를 보내면 좋겠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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