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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양승국 신부님_극심한 고통은 영원히 지속되지 않습니다!

189665 최원석 [wsjesus] 스크랩 09:49

 

지난 겨울, 피정 센터 근처에 사는 아이들과 함께 남도 여행을 갔을 때의 일입니다.
아직 어린 아이들이지만, 이 아이들에게도 아픈 역사를 알게 하는 것도 필요한 듯해 광주 518 민주화 묘역을 찾아 참배했습니다. 
 
안장되어 계신 분들 묘비 뒤쪽에는 이름과 생년월일과 사망일, 그리고 남은 가족들의 마지막 절규와도 같은 작별 인사말들이 적혀 있었습니다.
한분 한 분의 생년월일을 확인하면서 참으로 송구스럽고 안타까웠습니다.
10대 후반, 20대 초반의 청춘에 희생된 분들이 부지기수였습니다. 
 
5월만 돌아오면 언제나 가슴을 묵직하게 짓누르는 감정은, 시대의 깊은 아픔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한 것에 대한 큰 부끄러움이요 송구함입니다.
전남대학교 정문 근처에 저희 수도 공동체가 자리 잡고 있었기에, 아직도 5월의 기억들이 생생합니다. 
 
불행한 정치 군인과 일당들의 무지막지한 폭력 앞에 다들 숨죽이고 있을 때, 속수무책으로 끌려가고, 얻어 맞고, 투옥당하면서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해맑은 얼굴로 또 다시 스크럼을 짜고, 거대한 악이요 불의 앞에 온몸으로 저항하던 학생들과 시민들의 얼굴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유가족들의 슬픔과 비애는 아무리 새월이 흘러도 변함이 없습니다.
든든한 기둥 같았던 남편,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생떼 같은 자식들을 먼저 떠나보낸 후 겪어야 했던 슬픔과 상처는 하늘을 찔렀습니다.
그들이 남기고 간 빈자리는 그 어떤 것으로도 대신할 수 없었습니다. 
 
그보다 더 큰 슬픔이 있었습니다.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당당히 일어선 분들이었습니다.
놀라운 용기와 희생정신을 지닌 분들이었습니다.
그들의 위대한 행동에 찬사를 드려도 부족한데, ‘폭도’란 말로 오물을 덮어씌웠습니다.
가족들은 오랜 세월 동안 죄인처럼 숨죽여 지내야만 했습니다. 
 
더구나 참혹한 대 학살의 주범 옆에 빌붙어 부귀영화를 누리던 공범자들이 아직도 고개 뻣뻣이 쳐들고 떵떵거리며 잘 살고 있습니다.
아직까지도 청산해야 할 과제가 남아있는 것입니다.
정리되지 않은 불행한 역사가 조속히 청산되길 또한 기도합니다.
어제의 범죄를 벌하지 않는 것은 내일의 범죄에 용기를 주는 것이기에 그렇습니다. 
 
사랑이신 주님께서 518민주화운동의 영령들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시고, 유가족들과 부상자들에게
세상이 줄 수 없는 한없이 따뜻한 위로를 베풀어주시길 기도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길고 긴 고별사를 마무리하시면서, 제자들에게 힘과 용기를 북돋아주는 감동적인 말씀을 건네십니다. 
 
“너희는 세상에서 고난을 겪을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요한 16,33)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부재 기간 동안, 사악하고 불의한 세상의 세력이 판을 칠 것임을 예견하시면서, 잘 견뎌내라고 당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빛으로 이 세상 오셨지만 세상은 빛보다는 어둠을 선호합니다.
따라서 세상은 빛이 사라지도록 하기 위해 발버둥칩니다. 
 
세상의 세력이 기승을 부리는 고통의 시간은 어떤 면에서 예쁜 아기의 출산을 기다리는 진통의 시간과도 같습니다.
극심한 고통은 영원히 지속되지 않습니다.
조금만 기다리면 그간의 고통은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여겨질 정도의 기쁨 충만한 순간, 위로와 축복의 시간이 도래합니다. 
 
물론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살아가는 시간은 ‘조금 더 기다려야 하는’ 시간입니다.
우리는 아직도 예수님께서 재림하지 않으신 불완전한 시대, 미완성의 세상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매일의 고통과 시련, 불완전과 부족함 앞에서도 절망하지 않아야겠습니다.
오늘 우리들의 이 극단적 미성숙으로 인한 호의적이지 않은 상황, 존재, 사건 속에서도 부단히 희망하면서, 인내롭게 기다려야겠습니다. 
 
경건한 이들은 구원의 지평에 들어가기 전, 반드시 어두침침한 고난의 길을 거쳐야만 합니다.
새 날이 오기 전에 옛날은 뿌리채 흔들릴 것이다.
마지막 눈 앞에 펼쳐지기 전에 가장 두려운 순간이 찾아올 것입니다.
그때는 마지막으로 악마가 판을 치는 시간입니다.

어쩌면 그 순간은 수난과 죽음을 끝까지 잘 견뎌내고 극복하신 메시아의 시간과도 같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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