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GOOD NEWS 게시판

검색
메뉴

검색

검색 닫기

검색

오늘의미사 (백) 2026년 5월 21일 (목)부활 제7주간 목요일이들이 완전히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가톨릭마당

sub_menu

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전삼용 신부님_흐르지 않으면 거룩할 수 없다

189703 최원석 [wsjesus] 스크랩 2026-05-20

 

"아버지의 말씀이 진리입니다. 아버지께서 저를 세상에 보내신 것처럼 저도 이들을 세상에 보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들을 위하여 저 자신을 거룩하게 합니다. 이들도 진리로 거룩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요한 17,17-19)

찬미 예수님! 부활 제7주간 수요일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세상에 남겨두고 떠나셔야 하는 애틋한 마음을 담아 아버지께 기도를 올리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기도 중에 우리의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아주 독특하고 심오한 구절이 하나 등장합니다. "저는 이들을 위하여 저 자신을 거룩하게 합니다. 이들도 진리로 거룩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며, 태초부터 죄가 없으신 완벽하고 거룩한 분이십니다. 그런데 이미 백 퍼센트 거룩하신 분이, 십자가를 코앞에 두고 새삼스럽게 "저 자신을 거룩하게 합니다"라고 말씀하시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 말씀 안에는, 어떻게 쓰레기 같은 죄악을 뒤집어쓰고 살아가는 우리 인간이 하느님처럼 거룩한 상속자로 탈바꿈할 수 있는지에 대한 놀라운 물리학적, 영적 비밀이 숨겨져 있습니다.

이 신비를 풀기 위해, 팔레스타인의 지형을 묵상해 봅니다. 그곳에는 거룩한 흐름의 역설을 보여주는 두 개의 큰 바다가 있습니다. 하나는 생명이 넘치는 '갈릴래아 호수'이고, 다른 하나는 죽음의 바다인 '사해'입니다. 두 바다는 모두 요르단 강이라는 똑같은 원천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받습니다. 그런데 갈릴래아 호수는 온갖 물고기가 뛰놀고 주변에 푸른 나무가 우거지지만, 사해는 아무런 생명도 살지 못하고 이름 그대로 죽음의 바다가 되어버렸습니다. 왜 이런 차이가 날까요? 결정적인 이유는 단순합니다. 갈릴래아는 위에서 받은 물을 아낌없이 아래로 흘려보내는 '흐름'이 있지만, 사해는 들어온 물을 움켜쥐고 내보내지 않는 '고임'이 있기 때문입니다.

'흐르지 않는 거룩함'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거룩함은 내 안에 쌓아두어 썩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으로부터 받아 쉼 없이 이웃에게 흘려보낼 때 비로소 완성되는 동적인 생명력입니다.

예수님께서 "저 자신을 거룩하게 합니다"라고 하신 것은, 당신이 하느님 아버지라는 영원한 샘으로부터 솟아나는 생명의 물길이 되어, 십자가라는 거대한 수로를 통해 당신의 몸을 통째로 내어주심으로써 그 거룩함을 우리에게 끊임없이 '흘려보내시겠다'는 선언입니다. 십자가는 예수님이라는 거룩한 샘물이 세상의 메마른 땅을 적시기 위해 마련하신 유일한 물길이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왜 거룩해지지 못하고 매일 제자리걸음일까요? 그것은 내 영혼이라는 수로에 세상의 이기심, 자존심, 돈에 대한 탐욕이라는 시커먼 흙덩이와 쓰레기가 잔뜩 쌓여 물길을 꽉 막아버렸기 때문입니다. 물길이 막힌 수로는 물을 공급받지 못해 금세 갈라지고 딱딱하게 굳어버립니다. "이들도 진리로 거룩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가 거룩해지는 유일한 방법은 내 영혼에 쌓인 죄의 퇴적물을 걷어내고, 내 삶의 물길을 온전히 예수님의 본성(진리)과 똑같이 맞추어 연결하는 것뿐입니다.

이 위대한 생명의 소통, 거룩함의 전달 현상이 구약성경에서 아주 웅장한 알레고리로 등장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열왕기 하권 4장에 나오는 엘리사 예언자와 수넴 여인의 아들 이야기입니다. 수넴 여인의 어린 아들이 어느 날 갑자기 머리가 아프다고 울부짖다가 어머니 무릎에서 숨을 거두고 맙니다. 절망한 어머니는 죽은 아이를 엘리사 예언자의 침상에 뉘어놓고 엘리사에게 달려갑니다. 엘리사는 죽은 아이가 있는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고 하느님께 기도를 올립니다. 그리고 엘리사가 보여준 행동은 우리의 이성을 마비시킬 정도로 기괴하면서도 놀랍습니다. 엘리사는 침상에 올라가 그 죽은 아이의 몸 위에 엎드립니다. 자신의 입을 아이의 입에 맞추고, 자신의 눈을 아이의 눈에 맞추고, 자신의 두 손을 아이의 두 손에 완벽하게 포개어 맞춥니다. 거룩하게 살아 숨 쉬는 예언자의 온몸이, 싸늘하게 식어버린 죄와 죽음의 몸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하게 포개어진 것입니다.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예언자의 거룩하고 뜨거운 생명의 주파수(온기)가 죽은 아이의 차가운 몸으로 전염되어 흘러 들어가기 시작합니다. 죽은 아이의 몸이 따뜻해지더니, 마침내 아이가 일곱 번 재채기를 하고 눈을 번쩍 뜹니다. 엘리사의 생명과 아이의 죽음이 완벽하게 공명하여, 생명이 죽음을 집어삼킨 위대한 부활의 기적입니다. (출처: 『주석 성경』 열왕기 하권 4장).

이 엘리사의 기적은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이 보여주신 거룩한 희생의 완벽한 예형입니다. 우리가 어찌 스스로 거룩해질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수넴 여인의 아들처럼 죄악으로 인해 이미 차갑게 죽어버린 영혼들입니다.

그런데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께서 당신의 입술과 눈과 못 박힌 두 손을, 차갑게 식어버린 우리 영혼의 형태에 완벽하게 포개어 맞추셨습니다. 예수님이 당신 자신을 제물로 바쳐(거룩하게 하시어) 쏟아내신 그 십자가의 뜨거운 사랑이, 끊임없이 흐르는 샘물이 되어 우리 영혼을 적셨습니다. 주님의 심장 박동과 내 심장 박동이 완벽하게 일치하며 생명이 흘러들어오는 순간, 우리 영혼 안에 있던 죄악과 상처의 찌꺼기들은 밀려 내려가고, 우리는 참된 하느님의 자녀, 거룩한 상속자로 다시 숨을 쉬게 되는 것입니다.

초대 교회의 위대한 교부이신 알렉산드리아의 성 치릴로 주교님은 오늘 복음을 이렇게 해설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당신 자신을 거룩하게 하셨다는 것은, 당신에게 거룩함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흠 없는 제물로 바쳐진 당신의 육신을 통해 뿜어져 나오는 거룩함의 파동으로, 죄악에 물든 우리 영혼의 반죽 전체를 거룩하게 부풀리려 하심입니다." (출처: 알렉산드리아의 성 치릴로, 『요한 복음 주해』).

결론적으로 "그들을 거룩하게 하기 위하여 나 자신을 거룩하게 합니다"라는 주님의 선언은 우리에게 세 가지 위대한 영적 자존감을 깨우쳐 줍니다.

첫째, 우리는 본래 그리스도와 완벽하게 똑같은 모양, 곧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된 고귀한 악기라는 사실입니다. 모양이 다르면 공명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주님과 공명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우리가 애초에 하느님을 닮게 빚어졌다는 명백한 증거입니다.

둘째, 우리가 다시 그 거룩한 모습으로 회복되어 온전한 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주님께서 내어주시는 '은총(성령의 진동)'과 '진리(말씀의 악보)'에 철저히 공명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셋째, 내가 먼저 맑은 소리굽쇠가 되어 공명하기 시작하면, 그 진동으로 내 곁에 죽어가던 또 다른 누군가의 영혼을 깨워 하느님의 모상으로 회복시키고 거룩하게 만들 수 있다는 점입니다.

구약성경 에제키엘서 37장의 '마른 뼈들의 환시'는 이 세 가지 원리를 장엄하게 보여줍니다. 에제키엘 예언자가 서 있는 골짜기에는 바싹 말라빠진 뼈들만이 뒹굴고 있었습니다. 생명도 없고 스스로 소리도 낼 수 없는 철저한 절망의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 에제키엘에게 명령하십니다. "이 뼈들에게 내 말을 대언하여라" (진리의 전달). 그리고 "사방에서 숨기운(루아흐, 성령)아 불어와서 이 죽은 이들에게 숨을 불어넣어라" (은총의 진동).

에제키엘이 주님의 말씀과 성령의 진동에 온전히 공명하여 소리치자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그 메말랐던 뼈들이 덜그럭덜그럭 소리를 내며 서로 맞아 들어가고, 뼈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며, 마침내 숨기운이 들어가 거대한 하느님의 군대(본래의 거룩한 모상)로 일어서 함께 울려 퍼지기 시작합니다. 에제키엘 한 사람의 거룩한 공명이 온 골짜기의 죽은 뼈들을 깨워 하느님의 거룩한 군대로 부활시킨 것입니다. (출처: 『주석 성경』 에제키엘서 37장).

나도 누군가를 진동시켜 거룩하게 만들 수 있는 위대한 존재라는 사실, 이것이 부활을 사는 우리의 가장 벅찬 자존감입니다. 세상의 온갖 더러운 소음들을 산산조각 내고, 하느님과 영원히 동기화된 찬란한 천국의 교향곡을 연주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1 171 0

추천  1 반대  0 신고  

TAG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로그인후 등록 가능합니다.

0 / 500

이미지첨부 등록

더보기
리스트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