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건태 신부님_조욱현 신부님_이병우 신부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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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712 최원석 [wsjesus] 스크랩 2026-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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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태 신부님_일치와 영광
예수님의 기도는 이어집니다. 그러나 앞 단락, 곧 어제 복음에서는 기도의 대상이 제자들에게 한정되었으나, 오늘은 제자들만이 아니라 “이들의 말을 듣고 저를 믿는 이들”에게로 확대됩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당신 사명 수행의 협조자로 부르신 제자들만이 아니라, 이들의 선교 활동을 통하여 모든 시대와 모든 장소에서 믿는 이들의 공동체 곧 교회를 이룰 사람들까지 당신 기도 안에 담으십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하고 기도하십니다. 이 기도는 “그들도 우리 안에 있게 해 주십시오” 하는 기도와 짝을 이루면서 동시에 동일한 내용으로 다가옵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름으로써, 믿는 이들은 성부와 성자를 하나로 묶는 하나 됨, 사랑의 일치에 동참하게 되며, 그렇게 하나가 되어 세상에 대한 하느님의 구원과 예수님이 수행하신 사명의 진실성을 나타내는 표징 그 자체가 됩니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 저를 보내셨다는 것을 세상이 믿게 하십시오.”
이어서, ‘영광’이라는 주제가 다시 등장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통하여 성부에게서 받으시는 영광은, 그분이 성부와 이루시는 일치가 사람들에게 완전하게 드러남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사실을 깨닫는 신앙인들은, 또 그들대로 예수님의 영광에 참여하면서, 그것을 세상에 드러냅니다. 이렇게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 또한 서로의 사랑으로 이루어지는 일치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확인합니다. 믿는 이들이 예수님과 함께 있음은 주님이신 그분의 상황에, 곧 수난으로 당신 자신을 끝까지 비우고 낮추시는 순종과 함께 죽음과 부활을 통한 영광으로 들어 높여지심에 동참함을 의미합니다: “저는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는 제 안에 계십니다.”
끝으로, 예수님은 하느님을 “의로우신 아버지”로 부르시며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이들도 제가 있는 곳에 저와 함께 있게 되기를 바라시는” 청을 올리십니다. 하느님께 적용된 ‘의롭다’라는 수식어는, 우선 하느님이 내리시는 판단과 심판의 올바름과 완전함을 뜻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개념은 또한 그분의 성실하심과 특히 자비하심을 강조하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올바르게 판단하거나 심판하시되, 자비가 판단이나 심판의 탁월한 잣대로 자리한다는 의미에서의 ‘의로움’을 말합니다. 이 자비로운 잣대는 “아버지께서 저를 보내셨다는 것을 알게 된”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적용될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신 그 사랑이 그들 안에 있고 저도 그들 안에 있게 하려는” 주님의 기도와 바람이 성취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사람과 하나 되시기 위해 하느님이심까지 포기하고 사람이 되어 이 세상에 오신 것처럼, 우리도 우리 이웃과의 일치를 말하고 이루어내기 위해서는 포기와 희생을 앞세워야 합니다. 일치라는 것이 어차피 서로 다름을 전제로 하기 때문입니다. 포기와 희생으로 일치를 이루는 그것만으로 영광을 말하기에 충분합니다. 포기와 희생으로 일치를 이루고 일치를 통해 영광에 동참함이 바로 우리가 주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임을 드러내는 구체적 표징이 될 것입니다.
오늘 하루, 내외적으로 내 것을 조금이라도 내려놓고 이웃과 하나 됨을 추구하는 가운데 주님을 믿고 따름이 얼마나 큰 기쁨이며 영광인지를 확인해 나가는, 은혜로운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조욱현 신부님_모두 하나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유언과도 같은 기도를 듣는다.
“그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 아버지께서 제 안에 계시고 제가 아버지 안에 있듯이, 그들도 우리 안에 있게 해 주십시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 저를 보내셨다는 것을 세상이 믿게 하십시오.”(21절).
이는 교회의 본질을 드러내는 말씀이며,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제자들과 모든 신자를 위하여 드리신 간절한 기도이다.
예수님께서는 단순히 인간들 사이의 평화적 일치를 바라신 것이 아니다.
그분이 말씀하신 일치는 아버지와 아들, 성령 사이의 내적인 친교, 곧 삼위일체의 신비에 참여하는 일치이다.
성 치릴로는 이렇게 말한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당신 안에서 하나로 묶으셨다. 그분이 성령을 주시어 우리가 서로 다른 몸이 아니라 한 몸으로, 당신 안에서 일치를 이루도록 하셨다.”(In Joannis Evangelium, XI, 요한 17,21-23 의역) 따라서 교회가 하나가 된다는 것은 단순한 조직적 통합이 아니라, 성령께서 주시는 내적인 친교 안에서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삶에 참여하는 신비이다.
“우리가 하나인 것처럼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22절)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 말씀을 해설하며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그분 안에서 하나가 되며, 그분의 사랑이 우리를 묶어 하나의 공동체로 세우신다. 사랑은 많은 사람들을 하나로 만들며, 하느님은 사랑이시다.”(In Ioannis Evangelium Tractatus, 110, 1요한 4,8 의역) 즉, 교회의 일치는 제도적 강제력이 아니라, 사랑의 끈으로 이루어진다. 사랑이야말로 하느님과 교회를 동일하게 특징짓는 표지이다.
“그들이 완전히 하나가 되게 하여 세상이 아버지께서 저를 보내셨음을 알게 하십시오.”(23절)
교회의 일치는 단순히 내부적 화합을 위한 것이 아니라, 세상에 대한 증거, 곧 선교적 표징이다.
성 이레네오는 말한다. “교회는 세상 전역에 흩어져 있지만, 믿음은 하나요 전해진 전승도 하나이며, 이 신앙은 모든 이들에게 같은 목소리로 선포된다.”(Adversus Haereses, I,10,2 의역) 하느님과의 일치는 세상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진리를 드러내며, 교회의 일치는 복음의 신뢰성을 보증하는 표지가 된다.
교회 헌장은 교회의 일치에 대해 이렇게 가르친다.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마치 하나의 몸과 같이 결합되어 있으며, 그리스도의 영으로 하나 되어있다. 이 일치는 사랑 안에서 완성된다.”(7항 요약) 또한 교리서는 다음과 같이 선포한다. “교회의 깊은 일치는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일치에서 오며, 교회가 하나라는 것은 바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친교 안에 뿌리내린 것이다.”(813항 의역)
예수님의 기도는 단순한 소망이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이다.
우리는 서로 다른 문화와 성격과 상황 속에서도, 사랑 안에서 하나가 되도록 부름을 받았다. 일치 없는 신앙은 세상 앞에서 복음을 설득력 있게 증거할 수 없다.
교회의 분열은 세상에 상처를 주고, 교회의 일치는 세상에 희망을 준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기도를 우리 자신의 기도로 삼아야 한다.
예수님의 기도는 오늘도 우리 안에서 울려 퍼지고 있다. 우리 각자가 성령 안에서 사랑의 끈으로 묶일 때, 교회는 참으로 하나가 되고, 그 일치는 세상에 하느님의 구원과 영광을 드러내게 될 것이다.
이병우 신부님_"거룩하신 아버지, 저는 이들만이 아니라 이들의 말을 듣고 저를 믿는 이들을 위해서도 빕니다."(요한17,20)
'하나가 되는 길!'
오늘 복음(요한17,20-26)은 예수님 고별기도의 마지막 부분으로, 예수님께서 '믿는 이들을 위해 기도하시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당신 자신을 위해 기도하시고, 그리고 당신을 따르는 제자들을 위해 기도하신 다음, 믿는 이들을 위해 기도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 안에 계시고 아버지께서 예수님 안에 계신다는 사실을 강조하시면서, 믿는 이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십니다.
"그들이 모두 하나가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영광을 저도 그들에게 주었습니다. 우리가 하나인 것처럼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요한17,21ㄱ.22)
'예수님께서 하느님 아버지로부터 받은 영광이 무엇일까?'
저는 그것이 '십자가 죽음'이라고 묵상했습니다.
'이 십자가 죽음이 믿는 이들을 하나가 되게 하는 길'이라고 묵상했습니다.
'우리가 지금 여기에서 하나가 되는 길'은 '우리를 위한 하느님 사랑의 결정체인 십자가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이고, 이 큰 사랑 안에 머무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도 예수님처럼 너를 위해 내 것을 내어놓는 사랑이 되는 것'입니다. 내 것이, 나의 육적인 것들이 시퍼렇게 살아 있으면 결코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온전하게 하느님 사랑 안에 머물게 될 때, 우리는 성령을 선물로 받게 되고, 이 성령께서 우리를 하나가 되게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용기를 내어라. 너는 예루살렘에서 나를 위하여 증언한 것처럼 로마에서도 증언해야 한다."(사도22,11ㄴ)
용기를 냅시다!
예수님 부활의 대전제인 십자가 사랑 안에 머물고, 나도 십자가 사랑이 됩시다!
성령의 힘으로 내 안에 자리잡고 있는 육적인 것들을 비워내고, 우리도 예수님처럼 부활합시다!
'이 부활이 하나가 되는 길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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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활 제7주간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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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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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들이 완전히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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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713
최원석
2026-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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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건태 신부님_조욱현 신부님_이병우 신부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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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712
최원석
2026-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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