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삼용 신부님_ 공평함이 아니라 질서가 일치를 만듭니다
-
189715 최원석 [wsjesus] 스크랩 2026-05-21
-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영광을 저도 그들에게 주었습니다. 우리가 하나인 것처럼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저는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는 제 안에 계십니다. 이는 그들이 완전히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요한 17,22-23)
찬미 예수님! 부활 제7주간 목요일입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죽음을 앞두고 제자들을 위해 바치신 그 유명한 '대사제의 기도'의 절정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가장 많이 반복하시며 피를 토하듯 간절히 부르짖으시는 단어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하나(일치)'입니다.
예수님은 왜 돌아가시기 직전, 제자들이 부자가 되게 해달라거나 병에 걸리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시지 않고, 오직 "그들이 완전히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셨을까요? 그리고 그 일치를 이루기 위해, 당신이 아버지께 받은 '영광(은총과 진리)'을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깊고도 숭고한 주님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우리가 가진 아주 큰 착각 하나를 버려야 합니다. 우리는 흔히 부모가 자녀들에게 유산을 'N분의 1로 공평하게' 나누어 주면, 형제들이 다투지 않고 우애 있게 일치하며 살 것이라고 믿습니다. 하지만 인류의 역사와 심리학은 정반대의 끔찍한 진실을 증언합니다. 공평한 분배는 일치를 가져오지 않습니다. 오히려 서로가 동급이라는 '교만'을 부추겨 피 터지는 싸움을 만듭니다.
이 비극을 명백히 보여주는 역사적 사건이 있습니다. 9세기 유럽을 호령하던 카롤링거 제국의 루도비쿠스 1세(경건왕 루트비히) 이야기입니다. 그는 샤를마뉴 대제의 아들로 거대한 제국을 물려받았습니다. 그는 세 아들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제국을 세 명에게 아주 완벽하고 '공평하게' 나누어 주고 싶어 했습니다. 측량사들까지 동원하여 땅의 크기와 세금 수익이 1원 한 푼까지 똑같도록 영토를 3등분으로 갈라 아들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결과가 어땠을까요? 아버지가 생존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평하게 재산을 받은 아들들은 '내가 너와 동급인데, 왜 네 땅이 내 땅보다 더 기름져 보이느냐'며 서로 시기하기 시작했습니다. 급기야 아들들은 아버지를 감옥에 가두고, 형제들끼리 수십 년간 피비린내 나는 참혹한 영토 전쟁을 벌였습니다.결국 베르됭 조약을 끝으로 위대했던 제국은 산산조각 나 영원히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하느님의 영적 권위와 질서 없이 인간적인 계산으로 나눈 '공평한 분배'는, 평화가 아니라 가장 잔혹한 형제의 난을 부르는 도화선이 될 뿐이었습니다. (출처: 에두아르 페루아, 『프랑스 역사』)
오늘 복음에서 참된 어머니이자 대사제이신 예수님의 마음은 달랐습니다. 예수님은 진정한 일치가 '공평한 분배'가 아니라 '거룩한 질서의 확립'을 통해 이루어짐을 명확히 아셨습니다.
요한복음 17장 전체에 나오는 예수님의 대사제 기도를 찬찬히 살펴보십시오. 예수님은 은총을 무턱대고 군중에게 뿌리지 않으십니다. 철저한 '질서'에 따라 기도하십니다.
첫째, '당신 자신'을 위해 기도하십니다(1-5절).v 둘째, 하느님께서 당신에게 주신 '사도들'을 위해 기도하십니다(6-19절).
셋째, 그 사도들의 말을 듣고 믿게 될 '모든 신자들(백성)'을 위해 기도하십니다(20-26절).
은총과 영광은 수평적으로 똑같이 뿌려지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아버지로부터 예수님께, 예수님으로부터 사도들에게, 그리고 사도들로부터 백성들에게로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수직적 질서'를 탑니다.
이 기막힌 질서의 원리는 이미 구약성경 민수기 11장에 완벽하게 설계되어 있습니다. 광야에서 모세가 백성을 이끄는 짐이 너무 무거워 고통받을 때, 하느님은 70명의 장로를 세워 도우라 하십니다. 그런데 하느님은 장로들에게 하늘에서 새로운 영을 각자 공평하게 쏘아 보내지 않으셨습니다.하느님은 "너에게 있는 영을 덜어내어 그들에게 나누어 주겠다" (민수 11,17)라고 하셨습니다. 모세라는 머리(수위권)에게 주어진 영이, 그 아래 장로들에게 흘러가고, 마침내 온 백성을 살리는 거룩한 위계질서입니다. (출처: 『주석 성경』 민수기 11장)
시편 133편은 이 거룩한 질서 안에서 피어나는 형제들의 완벽한 일치를 이렇게 노래합니다. "형제들이 함께 모여 사는 것, 얼마나 좋고 얼마나 즐거운가! 머리 위에 부은 보배로운 기름, 수염을 타고 흘러내리는 기름, 아론의 수염을 타고 그의 옷깃으로 흘러내리는 기름 같아라." (시편 133,1-2).
기름(은총과 진리)은 옆으로 퍼지지 않습니다. 언제나 머리에서 수염으로, 그리고 옷깃으로 위에서 아래로 흐릅니다. 대사제이신 예수님이 교회의 머리인 베드로에게 천국의 열쇠를 주시고, 그 반석 아래 사도들이, 그리고 사도들 아래 백성들이 결속되는 이 거룩한 위계질서가 세워졌을 때, 비로소 교만으로 뿔뿔이 흩어졌던 인간의 마음들이 권위 아래 복종하며 완벽한 '하나(일치)'를 이룬 것입니다.
건축 공학에서 건물을 짓는 모습을 보면 이 신비가 아주 명확하게 풀립니다.
건물을 지을 때 수백 장의 흩어진 벽돌들을 가져다 아무렇게나 쌓아 올리면, 아무리 단단한 벽돌이라도 작은 바람에 와르르 무너지고 맙니다. 수백 장의 벽돌이 '완벽하게 일치된 하나의 성벽'이 되려면 반드시 두 가지가 필요합니다.
첫째는 위에서 아래로 곧게 떨어뜨리는 '다림줄'입니다. 다림줄은 벽돌들이 좌우로 삐뚤어지지 않고 하늘을 향해 똑바로 정렬되도록 기준을 잡아주는 '수직적인 질서'입니다. 영적으로 이 다림줄이 바로 주님의 '진리(말씀에 순종하는 권위)'입니다.
둘째는 단단한 벽돌들 사이를 메우고 부드럽게 융합시키는 시멘트 '모르타르'입니다. 이 모르타르가 굳어지면 수백 장의 벽돌은 하나의 거대한 통바위가 됩니다. 영적으로 이 모르타르가 바로 우리를 서로 끈끈하게 붙여주는 '은총(성령)'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가장 중요한 사실은, 다림줄(질서)이 없으면 아무리 끈끈한 모르타르(은총)를 발라도 건물이 삐딱해져 결국 스스로의 무게를 못 이기고 미끄러져 무너진다는 것입니다. 맹목적인 사랑과 은총의 분배만으로는 공동체가 서지 못합니다. 하느님이 세워주신 질서(다림줄)에 철저히 순종할 때만, 그 은총이 우리를 영원한 성전으로 묶어낼 수 있습니다.
이 거룩한 질서로 기적 같은 일치를 이룬 역사적인 사례가 있습니다. 바로 성 이냐시오 로욜라가 세운 '예수회'입니다.
16세기, 예수회원들은 전 세계 오지로 뿔뿔이 흩어져 험난한 선교 활동을 했습니다. 통신 수단도 없던 그 시절, 뛰어난 지성과 강한 개성을 지닌 수많은 수도자가 어떻게 분열 없이 그토록 완벽하게 '하나 된 하느님의 군대'로 움직일 수 있었을까요?
그 비결은 성 이냐시오가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은총과 진리를 바탕으로 세운 가장 철저한 영적 질서, 이른바 '시체와 같은 순명(Perinde ac cadaver)' 때문이었습니다. 이냐시오 성인은 만레사 동굴에서 성령의 엄청난 은총을 체험했지만, 그 은총을 개인의 영성을 뽐내는 도구로 쓰지 않았습니다.오히려 그 은총의 빛 안에서 '그리스도의 대리자인 교황과 장상에게 완벽히 순종하는 것만이 교회의 분열을 막고 하나가 되는 유일한 길'이라는 진리를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그는 회원들에게 각자의 지식이나 영적 체험을 평등하게 주장하는 것을 철저히 금지했습니다. "시체가 저를 씻기는 이에게 자신을 온전히 내맡기듯, 하느님의 대리자인 장상의 명령이라는 다림줄에 너희의 자아를 꺾어 복종하라." 이처럼 하느님이 세우신 위계질서에 완벽히 순복하는 체계가 잡혔을 때, 그들은 각자의 개성으로 다투지 않고 일사불란한 성령의 무기로 결합했습니다. 은총과 진리는 교만을 부추기는 것이 아니라, 질서에 순종하게 함으로써 일치를 완성하는 힘임을 증명한 것입니다. (출처: 성 이냐시오 로욜라, 『예수회 회헌』)
우리는 기도를 통해 하느님께 무엇을 청하고 계십니까? "주님, 저에게 더 많은 은총을 주십시오. 쟤보다 내가 못한 게 뭐가 있습니까? 저도 쟤만큼 공평하게 주십시오!" 이 기도의 끝이 오직 나의 성공과 이익, 형제들과의 수평적인 비교를 향해 있다면, 우리는 방금 전 유산을 똑같이 나눠 가지고도 아버지를 감금하고 피 터지게 싸웠던 카롤링거 제국의 아들들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은총과 진리라는 위대한 유산을 내려주시는 유일한 목적은 '일치'입니다. 그리고 그 일치는 우리가 가정에서 부모님의 권위를 존중하고, 본당에서 사목자인 신부님의 말씀에 순명하며, 직장과 사회에서 하느님이 세워주신 질서에 복종할 때만 맺히는 성령의 열매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
- 부활 제7주간 토요일
-
189726
조재형
05:57
-
반대 0신고 0
-
- 무엇이든 이해해주는 친구
-
189725
김중애
05:46
-
반대 0신고 0
-
-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6.05.22)
-
189723
김중애
05:44
-
반대 0신고 0
-
- 매일미사/2026년 5월 22일 금요일[(백) 부활 제7주간 금요일]
-
189722
김중애
05:43
-
반대 0신고 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