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 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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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879 박영희 [cornelia2] 스크랩 0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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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 가해] 요한 3,16-18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사랑하면 서로 닮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부부가 함께 하는 시간이 길수록, 그들 사이의 사랑이 깊을수록 성격이나 습관 뿐만 아니라 얼굴 모습까지 닮아간다는 뜻이지요. 이는 단순한 ‘속설’이 아니라 심리학, 생물학적 연구를 통해 입증된 ‘사실’입니다. 서로를 사랑하는 만큼 상대방과 일치하고 싶은 마음이 커지면, 함께 웃고 우는 감정의 교류를 통해 인상이 비슷해지고, 함께 있을 때 호흡과 심박 수가 같아지며, 식성이나 취향은 물론 심지어 면역체계까지 서로를 닮아가는 겁니다. 유한한 사랑을 하는 사람들끼리 이처럼 서로를 닮아간다면, 무한하고 완전한 사랑을 하시는 삼위일체 하느님은 어떨까요? 단순히 닮는 정도가 아니라 온전히 ‘하나’를 이루고 계시지 않을까요? 오늘은 그런 하느님 사랑의 신비를 묵상하는 “삼위일체 대축일”입니다. 그런데 삼위일체 하느님께서 이루고 계시는 일치는 서로의 존재를 침해하지 않습니다. 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이 말하듯, 사랑은 상대방을 소유하거나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존중하고 자유롭게 해주어 서로가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존재’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성부, 성자, 성령께서는 고유한 위격을 온전히 간직하신 상태에서 하나로 일치해 계십니다. 즉 ‘다양성 안의 일치’를 이루고 계시지요. 그리고 외아드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그 사랑의 일치 안으로 초대해 주셨습니다.
오늘의 전례독서에서는 “삼위일체”의 신비에서 드러나는 사랑의 구체적 특성들을 하나씩 살펴보게 됩니다. 먼저 제1독서인 탈출기를 보면 하느님께서 구름에 싸여 시나이산으로 내려오셔서 모세와 ‘함께’ 하십니다. 그리고 당신이 누구신지 그 ‘이름’과 당신이 어떤 분이신지 그 ‘본성’을 알려주시지요. 그러자 모세는 하느님 앞에 무릎을 꿇어 경배하며 이렇게 청합니다. “주님, 제가 정녕 당신 눈에 든다면, 주님께서 저희와 함께 가 주시기를 바랍니다.” 여기서 발견할 수 있는 삼위일체 사랑의 첫번째 특성은 ‘함께 있음’입니다. 누군가를 사랑하면 그와 함께 있고 싶은 것이 당연한 마음이지요. 하느님은 모세를 사랑하셨기에 그와 함께 있기 위해 시나이산으로 내려오셨고, 모세 또한 하느님을 사랑했기에 자기와 함께 있어 달라고 그분께 청합니다. 이처럼 사랑은 함께 있으면서 친교를 맺고, 그 친교가 깊어져서 내 안에 그가 그 안에 내가 살아가며, 마침내는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완전한 하나가 되는 아름다운 과정인 겁니다.
하지만 서로 완전히 ‘하나’가 된다고 해서, 그 하나가 되기 위해 나라는 존재가 무시되거나 사라지는게 아니지요. 상대방과 내가 서로 뗄 수 없을 정도로 깊은 일치를 이루고 있는 와중에도, 나와 상대방은 서로 분명히 구분되며 온전한 자유를 누리는 상태로 존재하는 겁니다. 이런 어찌보면 서로 ‘모순’되어 보이는 두가지 상태가 어떻게 동시에 존재할 수 있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가톨릭 교회에서는 ‘본체’(Substance)와 ‘위격’(Persona)이라는 용어를 사용합니다. 본체란 한 분이신 하느님이라는 신적 존재를 가리키고, 위격은 한 분이신 하느님 안에서 드러나는 세가지 서로 다른 지위, 즉 성부, 성자, 성령을 가리키지요. 성부, 즉 창조주께서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모든 것의 근원이시자 시작이며 마침이신 분입니다. 또한 당신께서 창조하신 세상을 당신 뜻대로 섭리하시는 분입니다. 성자, 즉 구세주께서는 성부의 뜻에 따라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당신 자신을 희생제물로 바치신 분입니다. 또한 우리를 하느님 나라로 이끄시기 위해 직접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신 분입니다. 성령, 즉 성화주께서는 우리가 성부와 성자 사이의 관계, 즉 사랑과 순명의 관계 속에 머물도록 인도하시는 분입니다. 또한 우리가 하느님 뜻에 맞는 좋은 것이 무엇인지를 올바르게 식별하고 따라가도록 곁에서 함께 하시며 힘을 주시는 분입니다. 오늘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실 때 대충 뭉뚱그려 사랑하시지 않고, 성부께서는 사랑으로 성자께서는 은총으로 성령께서는 친교로 우리와 함께 하시어 우리가 그 다채롭고 충만한 사랑 안에서 참된 기쁨과 평화를 누리게 하신다는 걸 알려주지요.
삼위일체 사랑의 세번째 특성은 더 친밀한 관계일수록 그 사랑이 주는 행복이 더 커진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누군가와 친밀한 관계를 맺으려면 그에게 나의 소중한 것을 내어주어야 하지요. 나에게 정말 소중한 것을, 얼마나 내어주느냐에 따라 내가 그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 ‘진심’이 드러나고, 상대방이 그 진심을 알아보고 나를 온전히 신뢰하여 마음을 열게 되면 그와 나 사이의 사랑이 더 깊어지게 되는 겁니다. 성부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습니다. 성자 예수님께서는 친구를 위해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는 것을, 당신께서 친구로 여기시는 우리를 위해 기꺼이 자기 목숨까지 내어주신 그 헌신적 사랑으로 보여주셨습니다. 우리는 그런 사랑을 보고 느끼며 깨달음으로써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더 깊이 신뢰하고 사랑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신뢰와 사랑이 깊어지면 우리는 삶이 주는 참된 기쁨과 행복을 충만하게 누릴 뿐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얻어 하느님 나라에서 언제까지 그분과 함께 하게 되지요.
그러니 우리는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서 보여주신 그 사랑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즉 삼위일체라는 사랑의 신비를 이 세상에서 드러내야 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고 손으로 만질 수도 없는 하느님을 직접적으로 사랑할 방법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시고 그분 사랑이 우리에게서 완성됩니다.”(1요한 4,12) 그러니 성령께서 이끄시는대로 함께 살아가는 이웃 형제 자매와 사랑의 친교를 맺음으로써 평화를 이루어야겠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베풀어주신 은총을 나 혼자가 아닌 우리 모두를 위해, 하느님 뜻에 맞게 사용함으로써 이 세상에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드러내야겠습니다. 하느님께서 베풀어주신 그 큰 사랑의 은혜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기꺼이, 기쁘게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내가 사는 세상을 행복과 평화가 가득한 하느님 나라로 만들어가야겠습니다. 그것이 “삼위일체”의 신비를 살아가는 방법입니다.
* 함 승수 신부님 강론 말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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