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병우 신부님_조욱현 신부님_김건태 신부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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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885 최원석 [wsjesus] 스크랩 2026-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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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우 신부님_<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5.31) -청소년 주일-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요한3,17)
'하나가 되려면!'
오늘 복음(요한3,16-18)은 '예수님께서 니코데모와 대화하시는 말씀'인데, 예수님께서 니코데모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요한3,16-17)
오늘은 '위격으로는 각각이신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 본성상 온전한 일치를 이루고 계심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삼위일체대축일'입니다.
지금 우리가 믿고 있는 신앙은 '삼위일체 신앙'입니다.
우리는 '성호'를 그을 때마다, '영광송'을 바칠 때마다, '사도신경을 바칠 때마다, '미사'에 참례할 때마다, 삼위일체 신앙을 확인하고 다시금 기억합니다.
그런데 삼위일체 신앙을 삶의 자리에서 살아낸다는 것이 참으로 힘들고 어렵습니다.
삼위일체 교리를 확립해 놓으신 성 아우구스티노는 해변가에서 만난 천사 소년으로부터 이런 얘기를 들어야만 했습니다. "삼위일체 교리를 이해하는 것보다, 이 조개 껍데기로 바닷물을 이곳으로 퍼담는 것이 더 쉽다."
삼위일체 교리는 '사랑의 교리'입니다.
삼위일체 교리는 '온전한 내어줌의 교리'입니다.
삼위일체 교리는 '십자가 교리'입니다.
한 분이신 하느님, 곧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하느님께서는 사랑 안에서, 온전한 내어줌 안에서, 십자가 안에서 일치를 이루고 계십니다.
"아버지, 저에게 주신 이름으로 이들을 지키시어, 이들도 우리처럼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요한17,11)
하나가 되려면,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서로 온전히 내어주는 사랑을 해야 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위해 죽는 사랑을 해야 합니다.
조욱현 신부님_외아들을 보내주신 하느님의 사랑
1. 삼위일체의 신비: 구원의 중심에 계신 하느님
오늘 우리는 삼위일체 대축일을 지낸다. 교회가 이 축일을 지내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탄과 수난, 죽음과 부활이라는 구원의 모든 신비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사랑에서 비롯되었음을 고백하기 위함이다. 삼위일체의 하느님은 우리 구원의 주체이시며, 동시에 우리 안에 현존하시는 분이시다. 바오로 사도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하느님의 사랑과 성령의 친교가 여러분 모두와 함께하기를 빕니다.”(2코린 13,13)라고 인사한다. 이 인사는 단순한 축복의 말이 아니라, 하느님의 내적 생명과 인간의 구원 역사 사이의 친밀한 관계를 드러내는 고백이다.
교리서는 이렇게 말한다. “그리스도교 신앙의 중심 신비는 삼위일체의 신비이다. 신앙의 모든 진리는 삼위일체에서 나오며, 그 삼위일체를 향해 나아간다.”(234항) 삼위일체는 단지 하느님의 존재 방식에 관한 신비가 아니라, 우리가 그 안에서 살고 움직이며 존재하는 실재의 중심이다.(사도 17,28 참조) 우리의 몸은 “성령이 계시는 궁전”(1코린 6,19)이며, 삼위일체의 내적 사랑이 우리 안에 머무른다.
2. 하느님 아버지: 사랑으로 외아들을 내어주신 분
요한 복음은 이렇게 선언한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셨다.”(16절) 여기서 ‘내주셨다.’는 말은 단순히 ‘보내셨다.’는 뜻이 아니라, ‘넘겨주셨다, 죽게 하셨다.’는 깊은 의미를 지닌다.(로마 8,32 참조) 곧 아버지께서는 세상의 구원을 위하여 당신 아들을 사랑 안에서 내어주신 분이시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 구절을 묵상하며 이렇게 고백한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을 죽게 하셨다기보다, 우리의 생명을 살리기 위하여 그 아들을 우리 손에 맡기셨다. 그분의 죽음 안에 우리의 생명이 있다.”(Tractatus in Ioannem, 12,12) 이처럼 삼위일체의 첫 번째 신비는 하느님 아버지의 절대적인 사랑이다. 아버지는 단죄가 아니라, 구원을 원하시며(17절), 그분의 심판은 항상 사랑의 정의, 곧 ‘생명을 위한 심판’(요한 12,47)이 된다.
3. 하느님 아들: 사랑의 얼굴이신 예수 그리스도
아들은 아버지 사랑의 선물이며, 동시에 그 사랑의 계시이시다. 성 아타나시오는 이렇게 가르친다. “아들은 아버지의 본질로부터 나셨으며, 아버지를 드러내시는 살아 있는 말씀이다. 아들을 본 이는 아버지를 본 것이다.”(Oratio contra Arianos, I, 20)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의 사랑을 드러내시는 살아 있는 얼굴로서, 세상 속에서 하느님의 자비를 체험하게 하신다. 그분 안에서 하느님은 더 이상 멀리 계신 분이 아니라, 인간의 역사 속으로 들어오신 분, 우리의 고통과 죽음에 참여하시는 분이 되셨다. 교리서는 이렇게 밝힌다. “성자는 인간을 하느님께 이끌고, 하느님을 인간에게 드러내신다.”(240항)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삼위일체의 사랑이 가장 완전하게 드러난 자리이며, 그곳에서 우리는 “사랑이신 하느님”(1요한 4,8)의 실체를 본다.
4. 하느님 성령: 사랑으로 하나 되게 하시는 분
성령께서는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영원한 사랑의 관계이시며, 동시에 우리를 그 사랑 안으로 이끄시는 분이시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말한다. “성령은 아버지와 아들의 사랑이시다. 그 사랑이 우리 안에 부어졌을 때, 우리는 하느님과 일치한다.”(De Trinitate, XV,17,31)
성령의 친교는 단지 개인적인 신심의 차원이 아니라, 공동체의 일치와 사랑의 원리다. 그분 안에서 교회는 하나 되고, 신자들은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3,34)라는 그리스도의 명령을 실현할 수 있다. 따라서 삼위일체는 단순한 교의가 아니라, 삶의 모델이다. 교리서는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삼위일체는 모든 인간 공동체가 닮아야 할 최고의 모범이다. 각 사람은 자신이 다르면서도 사랑 안에서 일치할 수 있다.”(1878항)
5. 삼위일체의 사랑 안에서 사는 삶
프랑스 신학자 이브 드 몽슈이유(Y. de Montcheuil)는 말한다. “교회는 삼위일체의 교회이다. 교회는 삼위일체의 영원한 사랑의 계획이 성취되는 곳이다.” 삼위일체의 삶은 사랑의 순환 속에 있는 관계의 삶이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자신을 주시고, 아들은 아버지께 자신을 내어드리며, 성령은 그 사랑의 흐름 안에서 모든 이를 하나로 묶는다. 우리의 가정과 공동체도 이러한 ‘삼위일체적 사랑의 구조’를 닮아야 한다. 서로의 차이를 존중하면서도 사랑으로 하나 되는 것, 그것이 바로 삼위일체의 삶을 이 세상 안에 드러내는 길이다.
6. 결론: 삼위일체의 삶에 참여하도록 부름을 받은 우리
우리는 세례로써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새로 태어났다.(마태 28,19) 따라서 우리의 신앙생활 전체는 삼위일체의 신비 안에 머무는 삶이다. 이 신비를 믿고 고백하며, 그 사랑 안에 살아갈 때, 비로소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이자, 삼위일체의 살아 있는 성전으로 변화되는 것이다.
김건태 신부님_생명의 샘인 삼위일체 신비
[말씀]
■ 제1독서(탈출 34,4ㄱㄷ-6.8-9)
하느님의 구원계획에 따라 이집트 종살이에서 해방되고 시나이산 계약으로 하느님의 백성이 된 히브리인들은 그러나 율법을 준수하겠다는 약속을 저버림으로써 하느님의 진노를 삽니다. 이러한 위기의 상황에서 모세는 다시 한번 이 백성을 위하여 하느님께 간청하며, 이 간청을 받아들여 당신 백성을 용서하심으로 하느님은 “자비하고 너그러우신 분, 분노에 더디고 자애와 진실이 충만하신 분”으로 인식됩니다. 하느님의 이러한 모습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하게 드러날 것입니다.
■ 제2독서(2코린 13,11-13)
사도 바오로는 코린토 공동체의 형제들에게 온전히 자비로운 사람이 되도록 권고합니다. 그리스도교 신자들 사이의 형제애는 평화와 기쁨의 원천이 되며, 이러한 형제애는 사실 평화와 사랑의 주님으로 당신을 계시하신 하느님의 본 모습을 구체적으로 반영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사도 바오로는 구원을, 아버지 하느님과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의 합작품으로 설명합니다. 형제애 실천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믿어 고백하고, 그 고백이 참되고 값진 것임을 드러내는 행위입니다.
■ 복음(요한 3,16-18)
오늘 복음 말씀은 예수님과 니코데모 사이의 대화 내용 가운데 일부입니다. 이 대화에서 복음저자 요한은 특별히 하느님의 외아들, 세상의 구원을 위하여 파견되고 십자가상 제물이 되신 예수님에 대한 교회의 믿음을 강조합니다. 이를 믿어 고백하는 것은 생명으로 들어감을 의미합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느님께서 밝히신 당신의 구원 의지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동참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새김]
적지 않은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 삼위일체(三位一體)라는 표현은 하느님에 관한 추상적이거나 무조건적인 개념으로 인식되곤 합니다. 그러나 성경의 하느님, 교회가 끝내 믿을 교리로 선포한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은 사랑을 바탕으로 인간과 하나 되기 위한 관계의 역사를 이끌어 가시는 하느님입니다. 이스라엘을 당신 백성으로 선택하시고 이 백성과 계약을 맺으실 때나, 당신 독생 성자의 십자가상 피로 인류와 새로운 계약을 체결하실 때나, 하느님은 늘 관계라는 틀 속에서 당신을 계시하십니다. 계약은 관계의 출발점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관계 말입니다.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된 인간이 진정 그분의 모습을 드러내 보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세 위(位)가 사랑으로 하나 되신 하느님을 본받아 서로서로 사랑으로 하나 되는 길이다. 사랑으로 가족과 하나 되고 이웃과 하나 될 때, 우리는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신비를 사는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으며, 이로써 하느님의 자녀,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자격을 부여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으로 하나 되어 하느님을 본받고 그분의 생명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음에 감사드리며, 이 감사의 마음을 이웃 사랑을 통해 적극적으로 표현해 나가는, 아름다운 한 주간 되기를 기도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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