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중 제14주간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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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60 조재형 [umbrella] 스크랩 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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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남부 꾸르실료 재교육이 있었습니다. 신앙의 열정이 있기에 5시간 넘게 운전하면서 재교육에 참석한 분들이 있었습니다. 휴스턴, 샌 안토니오, 오스틴, 포트워스, 달라스에서 70명이 넘는 분들이 함께했습니다. 우리는 미사로 문을 열었고, 함께 점심을 나누었습니다. 네 번의 강의를 통해서 꾸르실료의 정체성을 다시 확인하였고, 분단발표를 통해서 강의 내용을 다시 한번 마음에 새겼습니다. 강의의 주제는 ‘은총 안의 생활, 꾸르실리스타의 영성, 꾸르실리스타의 신앙생활, 꾸르실료 이후의 삶’이었습니다. 오늘은 그중에서 수녀님께서 하셨던 ‘꾸르실리스타의 신앙생활’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꾸르실리스타는 복음을 전하는 사람입니다. 꾸르실리스타의 신앙생활 역시 복음을 전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은 믿음의 삶, 희망의 삶, 사랑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그런 꾸르실리스타를 보면서 “아, 저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구나!”라고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복음은 많이 아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복음은 삶으로 드러날 때 힘이 있습니다. 신앙은 머리에 머무는 지식이 아니라, 손과 발로 움직이는 실천입니다.
수녀님은 강의 중에 ‘조하리의 창’을 이야기하였습니다. 나도 알고 상대방도 아는 것이 있습니다. 나는 아는데 상대방은 모르는 것이 있습니다. 나는 모르는데 상대방이 아는 것이 있습니다. 나도 모르고 상대방도 모르는 것이 있습니다. 이 네 가지의 창은 우리의 인간관계만이 아니라 신앙생활을 돌아보게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분명히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예수님께서 왜 오셨는지 잘 몰랐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를 비유로 알려 주셨습니다.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 되찾은 아들의 비유를 통해서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을 보여 주셨습니다. 우리에게도 감추고 싶은 창이 있습니다. 나의 잘못된 습관, 나의 부끄러운 모습, 나의 이기적인 마음을 감추고 싶어 합니다. 유다는 자기의 탐욕을 감추고 싶어 했습니다. 베드로는 두려움 때문에 “나는 그 사람을 모른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도 때로 부끄러움 때문에, 두려움 때문에, 체면 때문에 하느님의 뜻을 감추고, 진실을 감추고, 나의 약함을 감추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알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와 율법 학자들의 위선과 교만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그들의 말은 따르되 그들의 행실은 따라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이미 그들의 위선과 잘못을 알고 있는데, 정작 그들은 자신들이 가장 의롭고 가장 똑똑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신앙생활에서 중요한 것은 ‘아는 것’이 아니라 ‘아는 것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기도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용서해야 한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용서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가난한 이웃을 도와야 한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외면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겸손해야 한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인정받고 싶고, 높아지고 싶고, 내 뜻대로 하고 싶을 때가 많습니다. 하느님께 용서받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자비로우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 용서를 청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아픈 현실입니다.
우리는 어렵지만 가치 있는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쉽지만 의미 없는 일을 할 수도 있습니다. 선택은 우리의 몫입니다. 용서하는 것은 어렵지만 가치 있는 일입니다. 미워하는 것은 쉽지만 의미 없는 일입니다. 섬기는 것은 어렵지만 가치 있는 일입니다. 군림하는 것은 쉽지만 의미 없는 일입니다. 진실을 말하는 것은 어렵지만 가치 있는 일입니다. 거짓말로 순간을 모면하는 것은 쉽지만 의미 없는 일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어렵지만 가치 있는 일입니다. 침묵하며 나만 편하게 사는 것은 쉽지만 의미 없는 일입니다. 신앙은 언제나 우리에게 더 어렵지만 더 가치 있는 길을 선택하라고 초대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일꾼은 단순히 일을 많이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마음을 알고, 그 마음을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복음을 알고, 그 복음을 삶으로 보여 주는 사람입니다. 사랑을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희망을 설명하는 사람이 아니라 희망이 되어 주는 사람입니다. 믿음을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오늘 하루, 우리가 알고 있는 신앙을 삶으로 옮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믿음을 알고 있다면 믿음으로 선택하면 좋겠습니다. 희망을 알고 있다면 누군가에게 희망이 되어 주면 좋겠습니다. 사랑을 알고 있다면 오늘 한 사람을 더 사랑하면 좋겠습니다. 그때 세상 사람들은 우리를 보고 말할 것입니다. “아, 저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구나.” 그리고 주님께서도 우리에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잘하였다. 착하고 성실한 종아.”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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