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별 수 없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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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 세검정 [skj01] 2002-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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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여년 전 제가 머물던 사제관이 불이 나서 모든 것이 다 타버렸다. 나중에 연락을 받고 나서 사제관에 가보니 차라리 안 보는게 좋겠다 하는 마음이 들었다. 어느 분은 농담삼아서 "신부들이 회개할 것이 많아서 불이 난게지" 하는 말씀을 하셨다. 성탄을 얼마 앞 둔 시기라서 그런 지적에도 마음이 쓰였다. 아무것도 남지 않거나, 불에 검게 그을린 물건들을 보면서 이런 것들은 죽으면 다 두고 갈텐데 하면 위안을 삼았다.
그런 생각 중에 눈에 띠는 것이 있었다. 옛날에 많이 유행 했던 일명 007가방! 겉은 많이 상했지만 안은 괜찮아 보였다. 그래서 열어 보았다. 안에 성무활동비로 받은 돈이 그대로 있었다. 속으로 "와우, 이게 왼 떡이냐?" 하면 쾌재를 불렀다.기분이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모든 것이 다타버렸는데... 나중에 성찰해보니 "사제인 나도 별 수 없구먼! 돈이 그렇게 위로를 주니 말이야..."
"하늘 나라는 밭에 묻혀 있는 보물에 비길 수 있다. 그 보물을 찾아 낸 사람은 그것을 다시 묻어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있는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마태13,44)
하늘 나라가 보물이라! 도대체 무엇이 보물이란 말인가? 흔히 나에게 있어서 가장 귀한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해 보면 여러 가지 답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동안 저축해논 적금이나 보험들..., 부동산, 사회적인 지위나 명예, 부모님이나 자식들, 사랑하는 배우자...
하느님을 창조주이시며 아버지로 믿는 우리에게 있어서 우리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현실적인 것보다 더 하느님은 보물이어야 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매 주 미사때마다 사도신경을 외우면 영원한 생명을 믿는다고 고백한다. 하느님께서 바로 아무것도 아닌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에 세속적인 무엇보다 더 소중하고 귀한 것이다. 한 번 곰곰히 따져보자! 내가 생각하고 있는 보물 같은 것을 과연 죽으면 그것이 어떻게 되겠는가? 아무 소용도 없고, 나와는 관계가 없어진다. 그런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그 분과 그 분이 섭리하시는 길을 보물처럼 여겨야 한다. 이런 생각 속에 질문을 해본다.
"나는 과연 하느님을 보물처럼 생각하고 가장 소중하게 받아드리고 있는가?"
그런 질문에 제대로 된 답을 하기 위해서는 이어지는 말씀에 눈길이 간다.
"보물을 찾아낸 사람은 있는 것을 다팔아 그 밭을 산다."(마태13,44)
'있는 것을 다 팔아...' 자신의 전부를 걸고 하느님께 가는 자세를 보게된다.하느님은 우리에게 대충대충 혹은 적당히를 바라시지 않는다.창조주이시며 우리의 생명을 주관하시는 그 분과 적당히 거래하려고 해서는 안된다. 아무것도 아닌 내 기준에 하느님을 뜯어 맞추려고 해서는 안된다.우리는 흔히 내가 열심히 기도했는데, 내가 열심히 봉사했는데 하느님께서 아무 응답도 없으시고, 이 정도인가? 하는 질문을 하게 된다. 내가 보기에 시원치 않은 열매를 보면서 실망하거나 포기해 버리는 경우가 있다. 바로 하느님을 내 기준에 뜯어 맞추는 결과이다. '있는 것을 다 팔아..'라는 말씀을 계속해서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검정마을에서 까망사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