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군산 개복동 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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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3 김은희 [ehkim] 2002-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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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춘…감금…참사 2년 전 사건 ‘판박이’
군산 개복동 화재는 ‘인재’…윤락 여성들 ‘노예 생활’
12명의 생명을 앗아간 군산시 개복동 화재 현장. 파출소가 불과 50m 거리에 있다.
지난 1월31일 밤 10시, ‘감뚝’이라 불리는 전라북도 군산시 대명동 홍등가는 암흑가로 변해 있었다. 평소 윤락녀 2백40여 명과 취객들로 흥청대던 홍등가는 불빛 한점 없는 어둠 속에 파묻혔다. 100m 길 양편으로 늘어선 40여 윤락업소는 커튼을 드리우고 문을 굳게 닫았다. 간혹 어둠 속에서 나타난 호객꾼이 “아가씨 찾으세요?”라고 묻기만 했다. 대명동의 한 업주는 “대부분 업체가 일단 아가씨들을 피신시켰다. 경찰이 단속할 것이 뻔한데 당분간 쉴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1년 내내 하루도 쉬지 않고 불을 밝히던 대명동 윤락가에 어둠이 찾아든 것은 꼭 1년 4개월 만이었다.
2000년 9월19일 오전 9시15분, 군산시 대명동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화재 장소가 시내 버스가 다니는 도로 옆이어서 출동한 소방관들은 5분 만에 화재를 진압했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에 5명이 질식사했다. 다른 상가와 달리 유독 이 건물 2층·3층 창문에만 쇠창살이 달려 있었기 때문이다. 임 아무개씨(20) 등 여성 5명은 쇠창살 때문에 탈출하지 못하고 ‘살려달라’고 외쳤을 뿐이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주택처럼 보였지만 안은 쪽방으로 개조된 불법 매춘업소였다. 쇠창살이 달린 쪽방은 윤락녀들에게 감옥이나 마찬가지였다.
‘나! 나 좀 도와주세요. 제대로 인간답게 사람 사는 것처럼 살고 싶어요. 이 정도면 옛날에 죄값은 다 치른 것 같은데 제 생각만 그런가요.’(2000년 9월17일 임 아무개양의 일기 중에서).
대명동 화재 사건을 계기로 여성단체가 들고 일어났다. 불법 매춘을 단속해야 할 경찰이 매춘업주와 유착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여성단체는 법정 소송에 들어갔다. ‘성매매 방지 특별법 제정’을 위해서도 팔을 걷어붙였다. 여성·시민단체의 반발이 거세지면서 군산경찰서와 군산시는 매춘업소 일제 단속을 강화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눈 가리고 아옹하는 처방이었다.
창문은 합판으로 막고 문에는 특수잠금장치
지난 1월29일 오전 11시45분쯤, 군산시 개복동 유흥업소 ‘아방궁’에서 카드 단말기 누전으로 불이 났다. 곧장 소방관이 도착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진화가 빨랐는데도 현장에서 11명이 숨지고 말았다(병원에 후송된 4명 가운데 1명이 추가로 사망했다). 대형 사고의 원인은 역시 감금이었다. 2층으로 통하는 철문은 밖에서 잠겨 있었고, 현관문 역시 특수잠금장치가 달려 있어 피해자들은 밖으로 빠져 나오지 못한 채 질식사했다. 더구나 화재가 난 유흥업소 ‘아방궁’과 ‘대가’는 개복파출소에서 50m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곳이었다. 개복파출소 관계자는 “관할 파출소지만, 우리보다 군산경찰서가 맡아 단속한다. 그쪽에 물어보라”고 말했다. 이 날 화재는 2000년에 일어난 대명동 화재의 복사판이자 예고된 인재(人災)였다.
대명동에서 1km 떨어진 개복동 유흥가도 대명동 화재 당시에 쇠창살이 있었다. 경찰이 단속하자 업주들은 쇠창살을 제거하고 대신 창문을 없애버렸다. 밖에서 보기에는 창문이지만, 합판으로 막아 안에서는 창문이 없는 벽이었다. 게다가 출입문에는 특수잠금장치를 설치했다. 특수 열쇠를 취급하는 열쇠업자가 때아닌 호황을 맞았다. 특수잠금장치는 치매 환자나 심신장애자들이 밖으로 뛰쳐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사용하는 것으로, 밖에서 잠그면 안에서 열 수 없다. 이같은 열쇠 장치를 유흥업소에 설치하는 것은 불법인데도 개복동·대명동 일대 유흥업소 대부분이 설치했고, 경찰은 적발하지 못했다. 1년4개월이 지났지만, 쇠창살이 합판으로 바뀌었을 뿐이었다. ‘힘든 하루였다. 부모가 보고 싶다. 희망 없는 미래, 무엇에 의지하고 무엇을 바라보며 살아갈까’(개복동 화재 현장에서 발견된 메모장에서).
한국유흥업중앙회 전북지회 군산지부 관계자는 “합판은 추우니까 보온용으로 설치했다. 감금은 하지 않았다”라고 주장했다. 관계 기관은 이 말만 믿고 개복동 화재 사건이 대명동 화재와 다르다며 감금은 없었다고 강변했다
군산장례식장에 마련된 분향소에서 유가족은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며 장례를 거부하고 있다. 제주도 남제주시 표선면 하천리에 사는 유인경씨(75)도 몸이 불편하지만 막내딸을 보내기 위해 장례식장을 지키고 있다. 2남1녀를 둔 유씨는 가난이 죄라며 눈물을 흘렸다. 평생 농사만 지은 그는 쉰셋에 늦둥이로 유 아무개씨(22)를 보았다. 아들밖에 없던 유씨에게 막내딸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귀여웠다. 돈이 없어서 고등학교까지만 보냈던 것이 마음에 걸렸는데, 딸은 결국 일을 저질렀다. 돈 벌러 가겠다며 3년 전 집을 떠난 것이다. “이번 설에는 꼭 올 줄 알았는데…”라며 그는 지갑 속에서 막내딸 사진을 꺼냈다. 혹시나 짙은 화장 때문에 얼굴을 못 알아볼까 봐 일부러 가져온 사진 속의 막내딸은 환하게 웃고 있었다. 유씨는 며칠째 술로 마음을 달랬다.
1월31일 오전 10시 유가족은 화재 현장을 찾았다. 2층으로 올라가던 유가족은 화재 당시 닫혔던 철제문을 보고 통곡했다. “이 문만 잠그지 않았어도…”라며 말 끝을 흐린 유가족은 한결같이 노예 매춘에 대한 진상 규명이 이루어지기를 바랐다. 고제규 기자 unjusa@e-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