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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백) 2024년 11월 21일 (목)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가리키시며 이르셨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미사
미사에 대한 해설3-5

10 신림동청년협의회 [youngjesus] 2001-01-21

제 5편. 성찬의 전례

 

여러분이 개인적으로 겪는 고통과 죽음, 어두움과 현세 악은 인간에게 있어 가장 중대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것을 누가 해결할 수 있는가.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믿고 있다. 그분의 죽음은 사람의 죄에 대한 보속이요, 희생이며, 속죄였다. 그분은 "많은 사람들을 위하여 목숨을 바쳐 몸값을

치르려 온 것이다(마태 20,28)". 이로써 우리는 용서와 구원의 은혜, 부활의 생명에 참여할 은혜를 받았다. "우리는 세례를 받음으로써 그리스도와 함께 묻혔고

또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습니다(골로 2,12)". 한마디로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신비를 체험하며 살아가고 있다. 즉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

비를 살고 있다. 미사의 첫째 부분을 말씀 전례라 하고, 미사의 둘째 부분이며 핵심 부분을 성찬 전례라고 일컫는다. 그리스도께서는 최후의 만찬 석상에서 파

스카의 제사와 잔치를 설정하시고 교회 안에 십자가상 제사가 계속되도록 하셨다(미사 전례서 총지침 48항).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과월절 양으로서 희생되셨

으므로(1고린 5,7)" 십자가의 제사가 제단에서 거행될 때마다 우리의 구원사업이 이루어지는 것이다(교회헌장 3항). 이 제사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기념

제이고 사랑의 성사이며, 일치의 표징이요, 장레 영광의 보증을 주는 파스카 잔치이다(전례헌장 47항).

성찬의 전례에 관한 기록을 먼저 살펴보면 마태오 복음(26, 26∼28), 마르코 복음(14,22∼24), 루가복음(22,19∼20), 사도 바오로가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11,23∼25)에서 최후 만찬 예식에 관하여 기록하였고, 요한은 성찬의 제정에 관한 기록이 아니고 예수님 자신을 표현한 `하늘에서 내려온 빵의 약속과 의

미’에 대하여 기록하였다(요한 6,48∼58). 마태오와 루가 복음은 80년경애 쓰여졌고, 그보다 앞서 마르코 복음(70년경)과 고린토 전서(55년경)가 완성되었다.

학자들의 의견을 종합해 보면 예수님의 최후의 만찬 사실은 마르코와 고린토 전서에 쓰인 내용이 최후 만찬 사실에 충실한 기본 내용이 되고, 다른 기록들의

내용은 조급씩 가감되고 수정되었다고 본다. 위의 네 가지 성찬 기사의 공통점은 첫째 만찬 음식으로 빵과 포도주를 사용하였다. 둘째는 예수님의 동작이다. `

빵을 들어 축복하시고 또는 감사의 기도를 올리신 다음’ `빵을 떼어 나누어 주셨다’고 하였다. 셋째로 예수님 말씀의 핵심은 무엇인가. `받아 먹어라, 이는 내

몸이다’. `받아 마셔라, 이는 나의 피다’. `새로운 계약의 잔이다’.

초대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예수님께서 수난 전날에 제정하신 이 거룩한 행위를 재현하면서 이를 일반적으로 성찬(Eucharistia)이라 하였다. 성찬의 원어인 `에

우카리스티아’는 그리스어로써 본래 감사의 뜻이며 인간 상호간에 주고받는 감사와 기도의 형태로 하느님께 드리는 감사로 구별할 수 있다(사도 24,3과 1데살

3,9를 비교할 것). 이 감사의 기도는 하느님의 위대한 업적을 찬양하는 축복기도와 연결된다. 또한 자연의 산물인 음식은 하느님께서 베푸신 은혜이므로 이를

기억하고 기념하게 된다. 이렇게 감사와 찬미와 축복은 성찬식에서 뺄 수 없는 예절이다. 예수님은 빵과 포도주를 구원의 표징으로 선택하셨는데, 빵은 주님의

몸이고 포도주는 주님의 피를 대신하는 희생제물이 되었다. 빵과 포도주는 `생명’을 상징하는 재료로서 성찬식을 통하여 생명과 힘과 기쁨의 공동체를 만들어

영적인 변화를 준다. 영성체는 주님과 결합하는 것이고 하나가 된다. 예수의 몸은 `너희를 위하여’내어주는 것이고 그분의 피는 `너희를 위하여’흘리신 것이다.

또한 최후의 만찬은 하느님 나라에서 먹게 될 `완성된 과월절 음식(루가 22,15∼16)’과 `새 포도주(마르 14,25)’의 준비였다. 이 모든 것을 생각한다면 미사 참

여는 큰 감사 행위이다. 성찬 전례는 구원사업을 찬미하는 파스카 신비요, 기념 제사이며, 감사의 제사, 십자가의 제사이다. 우리의 감사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약속까지 미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누릴 것이며 내가 마지막 날에 그를 살릴 것이다(요한 6,54)".

성찬 전례(계속)

주님의 만찬 →주님의 재림까지

신자들의 음식

 

1. 빵과 포도주 -땀과 노동의 결실

예물 준비 예식

원래 빵과 포도주를 준비하는 데는 아무런 예식도 없었다. 초기 호교론자이자 순교자인 유스티노(167년경 사망)는 강론과 보편 지향 기도가 끝난 후, 빵과 포

도주와 물을 가져 왔다고 하였다. 1세기 이후부터 신자들이 예물을 들고 제대를 향하여 행렬하였고 부제나 사제가 그것을 받았는데, 중세기에는 없어졌다가

현행 예식에서는 새로이 실시하고 있다. 미사 전례서 총지침(49항)은 빵과 포도주를 신자들이 바치는 게 좋다고 하였다. 전례용 빵과 포도주의 봉헌 예식을 통

하여 자신의 영신적 의의(봉헌되시는 주님의자기 헌신을 본받아 믿음과 내적 희생으로 주님과 동참하려는 의지)와 효력을 갖게 된다.

예물 준비 기도

†온 누리의 주 하느님, 찬미받으소서.

주님의 너그러우신 은혜로 저희가 땅을 일구어 얻은 이 빵을 주님께 바치오니, 생명 의 양식이 되게 하소서.

⊙하느님, 길이 찬미받으소서.

†이 물과 술이 하나가 되듯이 인성을 취하신 그리스도의 신성에 저희도 참여하게 하소 서.

†온 누리의 주 하느님, 찬미받으소서. 주님의 너그러우신 은혜로 저희가 포도를 가꾸 어 얻은 이 술을 주님께 바치오니, 구원의 음료가 되게 하소서.

⊙하느님, 길이 찬미받으소서.

†주 하느님, 진심으로 뉘우치는 저희를 굽어보시어 오늘 저희가 바치는 이 제사를 너 그러이 받아주소서.

†주님, 제 허물을 말끔히 씻어주시고 제 잘못을 깨끗이 없애주소서.

†형제 여러분, 우리가 바치는 이 제사를 전능하신 하느님 아버지께서 기꺼이 받아 주 시도록 기도합시다.

⊙사제의 손으로 바치는 이 제사가 주님의 이름에는 찬미와 영광이 되고 저희와 온 교 회에는 도움이 되게 하소서.

(이어서 사제는 팔을 펴들고 예물 기도를 드리며, 기도가 끝나면 교우들은 응답한다)

†… 비나이다. 또는 … 다스리시나이다.

⊙아멘.

예물 준비 기도 … 1번, 3번 십자가

예물 봉헌이 끝나고 나서 제대로 돌아온 사제는 신자들이 헌금을 봉헌하는 동안에 예물 준비 기도를 드리게 된다. "온 누리의 주 하느님, 찬미받으소서. 주님의

너그러우신 은혜로 저희가 땅(포도)을 일구어(가꾸어) 얻은 이 빵(술)을 주님께 바치오니, 생명의 양식이(구원의 음료가) 되게 하소서". 이 기도는 예수님 이전

시대부터 있었던 유다인들의 감사 기도 즉 음식 축복 기도(베라카-Beraka)를 약간 변형한 것이다. 빵과 포도주는 곧 하느님의 선물이고 인간 노동의 결실임을

드러낸다.

포도주에 물을 섞음 … 2번 십자가

사제가 성작에 포도주를 따른 다음 약간의 물을 섞는다. 이것은 유다인들의 관습인데 물로 술의 농도를 약화시키려는 것이었다. 이것에 관하여 중세에 몇 가지

해석을 덧붙였는데 첫째는 창으로 찔린 예수님의 옆구리에서 피와 물이 나왔다(요한 19,34)는 성서의 말씀을 인용하여 여기서 교회와 성사의 시작을 상징하고

있다. 둘째는 그리스도의 신성(神性-포도주-Vinum-병에 빨간색으로 표시된다)과 인성(人性-물-Aqua-병에 아무 표시가 없다)을 상징하며 또한 우리 인간이

하느님의 본성(2베드 1,4)에 참여함을 뜻한다. 셋째는 성작 안의 물이 포도주에서 분리될 수 없듯이 우리도 구세주로부터 떨어져 나갈 수 없다는 의미이다.

예물 봉헌 기도 … 7번 십자가

준비된 예물과 신자 공동체를 받아들여 달라는 간청으로 예물 봉헌 기도를 드린다. 이 기도는 예물 준비를 마감하면서 감사 기도로 넘어가기 전에 필요한 은총

을 구하는 기도

이다. 이 기도는 본기도, 영성체 후 기도와 더불어 `주례사제의 기도’ 세 가지 중의 하나이다.

2. 그리스도의 몸과 피

미사가 제사라면 과연 조상제사와 무슨 차이가 있을까. 몇 가지를 비교해 본다면 조상

제사는 조상이 그 대상인데 미사의 대상은 하느님이다.

 

 

제관

제물

예식

목적

중심사상

미 사

사제

빵, 포도주,

예수의 살과 피

기도, 독서,

봉헌, 영성체

기억, 감사,

찬미, 간청

흠숭, 찬미,

성화, 일치

조상제사

가장

밥, 국, 술, 어

물, 나물, 과일

제문낭독, 절,

봉헌, 식사

기억, 감사

효도

 

제사의 3대 요소는 제관, 제물, 제사의 대상이다. 주의 만찬 예식을 보면 대상은 하느님이지만 제관이나 제물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이셨다. 현재의 미사 집전자

는 사제이지만 그리스도를 대신할 뿐이며, 최후 만찬의 파스카 제사와 십자가 제사의 재현이므로 사제의 미사가 아니라 실제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사이다.

특히 제물 변화에서의 제물인 빵과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하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봉헌없이 미사를 생각할 수 없다. 이로써 십자가상 성제가 계속

되는 것이다. 제사에 쓰이는 제물을 `희생’이라 하고 제물을 하느님께 바치는 행위를 `봉헌’이라고 한다. 희생은 남을 위해 자신의 이익을 포기하고 사랑을 실

천한다는 뜻도 있으나 여기서는 성서상의 희생을 이해해야 한다.

구약성서에서 이스라엘은 하느님께 제물을 봉헌하기 전에 양이나 소 같은 짐승을 잡아 피를 흘려 먼저 희생의식을 행하였다. 이처럼 구약의 제사는 희생의식

과 봉헌의식을 구분하여 거행하였다. 신약시대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제물로 삼아 "희생제물(에페 5,2)"이 되셨다. 즉 최후의 만찬 석상에서 봉헌의식

을 행하셨고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심으로써 희생의식을 마치셨다. 유교의 조상 제사 의식에서 음식물을 바치는 것을 봉헌이라 한다면 이것은 자손들이 제

사를 위한 아무런 희생정신도 없이 음식만 차려놓고 자신들이 먹고 난 후, 그것을 제사지냈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따라서 현재 미사 중 `봉헌’을 단지 헌금이

나 빵과 포도주를 바치는 것이라고 한다면 너무나 부족한 생각이다. 즉 봉헌은 그리스도의 희생과 인간의 희생을 다 포함하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성찬례는 첫

째로 흠숭의 봉헌이요, 둘째로 감사의 봉헌이며, 셋째로 화해의 봉헌이다. 그리고 십자가상 봉헌은 어느 시대에나 성사 안에 현존하시고 인류의 머리인 그리스

도의 봉헌이다. 인간의 구원이란 바로 이 봉헌에 참여하는 것이다. 곧 그리스도인은 "자신을 하느님께서 기쁘게 받아주실 거룩한 산 제물로(로마 12,1)"로 바쳐

야 한다.

트리엔트 공의회는 1562년 `미사의 봉헌에 관한 교령’을 발표하였는데, 제 1장에 이런 구절이 있다. "최후의 만찬 때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이 사랑하는 정배인

교회에 인간 본성에 합당한 봉헌(Sacrificium)을 남기셨다. 여기에 십자가상에서 한 번 성취된 유혈 봉헌이 계속되고 그 기억은 세상 마칠 때까지 계속되며…

사제직을 계승할 자들에게 `나를 기념하여 이 예식을 행하여라’고 명하셨다". 또한 공의회는 성찬례가 산 이와 죽은 이를 위하여 봉헌되는 것이 옳은 일이며 풍

성한 열매를 맺는다고 가르쳤다.

성찬례가 봉헌이라면 바치는 자는 누구인가. 그리스도 자신이라고 가르쳤다. 그러나 그리스도만이 성찬례를 봉헌하는 것이 아니고 교회 전체도 봉헌하고 있

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바친다는 말은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현존하시고, 우리 생명의 목적과 모범이며, 우리 구원의 유일한 원천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전례헌장(48항)은 "신자들은 티없는 제물을 사제의 손으로뿐 아니라, 사제와 함께 봉헌하면서 자기 자신을 봉헌하는 것도 배워야 한다"고 하면서 개인의 의식

적이고 능동적인 미사 참여를 권고하고 있다.

3.감사기도의 각부분

감사기도의 구조와 4개의 양식

감사기도의 구조는 미사통상문의 감사기도부분을 보면 "맨 먼저 감사송이 나오고, 거룩하시도다(Sanctus)라고 세 번 환호의 응답을 하고 이어서 연결기도가

있고, 예물을 축성해 주시도록 변화를 기원한다. 그리고 나서 가장 핵심적인 말씀인 성체 제정 서술과 축성이 있고, 기념과 봉헌, 성령 청원(일치 기원), 전구,

마침 영광송"의 순으로 이어진다. 감사기도의 전체 의미는 주님이 만찬을 베풀면서 행하신 말씀과 행위를 중심으로 엮는 감사와 성화의 기도이다. 즉 주님의

수난과 부활 그리고 그분의 구원 업적을 기리며 감사한다. 또한 참석자뿐 아니라 산 이와 죽은 이가 그리스도와 일치하며 구원에 참여하는 기도이다. 미사의

가장 핵심부분으로써 기념, 감사, 찬미, 제사, 봉헌 그리고 그리스도와의 일치가 담겨 있다. 이러한 감사기도에는 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 동방교회를 존중하

는 의미에서 로마 전문(典文) 이외에 동방교회의 전례문에서 세 개의 양식을 덧붙여 네 개의 양식이 되었다.

① 1양식은 로마 전례서의 중심이며, 그레고리오 1세(590∼604년 재위)이후 1500년간 별 변동없이 사용되어 왔다. 성탄, 공현, 부활, 승천, 성령강림, 세례, 성

품, 사도 축 일 등 언제든지 사용한다.

② 2양식은 짧기 때문에 가장 많이 사용한다.

③ 새로운 창조가 중심내용이다. 주일과 축일에 알맞은 기도이며 사목적으로 가장 좋 다.

④ 동방 안티오키아의 전문을 이어 받은 바실리오 전례를 라틴어로 옮긴 내용이며 가 장 길고, 고유 감사송이 없는 날 그리고 시기와 축일의 특성이 없는 연중

주일과 평 일에 사용할 수 있다.

【편집자주 : 여기에 사용하는 감사기도는 제 2양식을 사용하였습니다】

삼중 기도 대화

감사송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또한 사제와 함께.

†마음을 드높이.

⊙주님께 올립니다.

†우리 주 하느님께 감사합시다.

⊙마땅하고 옳은 일입니다.

(사제는 팔을 벌리고 감사송을 바친다)

미사는 깊은 만남이다. 미사 중이기에 하느님의 축복을 서로 나누는데, 감사송에 앞서 삼중의 대화를 나눈다. 그것은 `기도의 대화’이다.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또한 사제와 함께".

무슨 일에나 주님의 도움이 필요하다. 큰 감사를 드릴 때에도 주님의 도움이 필요하다.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요한 15,5)". 그래서 주님을

부르고 그분의 현존을 기원한다.

†"마음을 드높이".

⊙"주님께 올립니다".

일상의 모든 희노애락을 잠시라도 떨쳐버리고 온전히 하느님께 마음을 바칠 수는 없을까. 바오로 사도는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으니 천상의

것들을 추구하십시오(골로 3,1)"라고 하였다. 잠시라도 하느님의 사랑에 귀기울이시기 바랍니다.

†"우리 주 하느님께 감사합시다".

⊙"마땅하고 옳은 일입니다".

나와 너, 형제 자매, 세상 만물, 행복과 영생은 하느님의 창조와 구세주의 구원사업 덕택이다. 그래서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은 감사할 줄 안다. 감사와 찬미는 진

정 마땅하고 옳은 일이 아니겠는가.

감사송(Praefatio)

감사송이란 단어의 뜻은 서문, 서언, 입문이지만 실상은 감사기도의 여덟 부분 중 첫 부분인 감사기도라는 의미이다. 사제는 모든 교우들의 이름으로 하느님

아버지께 영광을 드리며, 구원의 업적에 감사를 드리고, 그날과 그 축일과 시기에 내포된 특수한 이유 때문에 감사드린다. 따라서 현재의 감사송이 성찬기도의

핵심요소가 되었다. 감사송은 세 부분으로 구성되는데, 서문은 삼중기도대화와 감사 내용을 연결하는 연결문이다. 성부께 감사드림은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구원을 준다는 내용이다. 본문에서는 감사의 이유를 제시한다. 하느님의 창조와 구원 업적을 선포하며 감사드리려 한다. 결문은 `거룩하시도다’로 이어주는 연

결문으로 천사와 성인들과 함께 구원을 찬미하는 내용이다.

거룩하시도다(Sanctus)

거룩하시도다

(사제는 감사송 끝에 손을 모으고, 교우들과 함께 `거룩하시도다’를 노래하거나 큰소 리로 외운다)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온 누리의 주 하느님!

하늘과 땅에 가득 찬 그 영광! 높은데서 호산나!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 찬미받으소서. 높은데서 호산나!

예언자 이사야가 부르심을 받기 전 어느 날 야훼 하느님께서 높은 옥좌에 앉아계심을 보았다. 여섯 개의 날개를 가진 천사 `세라핌’이 시중을 들면서 이렇게 외

쳤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만군의 야훼 그 영광이 이 온 땅에 가득하도다(이사 6,3)".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였다. 많은 사람들이

겉옷을 벗어 길에 펴놓는가 하면 나뭇가지를 꺾어 들고 환성을 올렸다. "호산나! 다윗의 후손!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찬미 받으소서. 지극히 높으신 하늘

에서도 호산나!(마태 21,9)". 미사에 참여한 모든 신자가 보이지 않는 천상의 천사들과 성인들과 함께 환호하는 소리가 `거룩하시도다’이다. 이 환호는 성찬기

도의 일부로써 모든 교우가 함께 외치는 기도이다. 앞의 성서의 두 가지 내용을 합친 것이다. 호산나(hosanna-아람어, hosianna-히브리어)는 원래 `도와주십

시오, 구원하소서’란 뜻이지만 교회의 전례에서는 하느님 또는 구원자에 대한 환호 소리이다. `거룩하시도다’란 찬미 노래는 미사 중 비슷한 다른 성가로 대치

될 수 없다.

성령 청원 : 축성기원(에피클레시스)

성령 청원 : 축성기원

†거룩하신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모든 거룩함의 샘이시옵니다. 간구하오니, 성령의 힘으로 이 예물을 거 룩하게 하시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피가 되게 하소서.

빵과 포도주가 살과 피로 된다는 것은 하느님의 창조요, 그리스도의 말씀이요, 성령의 은혜란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미사 전례는 감사송에서 즉시 성체

축성으로 들어가기 전에 간단한 연결기도를 한다. 신자들이 봉헌한 예물을 하느님께서 축성해 주시기를 바라고 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이 되도록 기원하며 그

를 받아 모시는 신자들이 구원을 얻도록 간청한다.

성찬 제정과 축성문

성찬 제정과 축성문

스스로 원하신 수난이 다가오자, 예수께서는 빵을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쪼개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셨나이다.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먹어라.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줄 내 몸이다."

저녁을 잡수시고 같은 모양으로 잔을 들어 다시 감사를 드리신 다음, 제자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셨나이다.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마셔라.

이는 새롭고 영원한 계약을 맺는 내 피의 잔이니,

죄를 사하여 주려고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 흘릴 피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먹어라.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줄 내 몸이다." 이미 네 가지 성서의 최후의 만찬 기사에서 보았듯이 최후 만찬 당시 예수님이 하신

말씀과 동작을 지금도 그대로 실천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빵과 포도주의 형상으로 당신의 살과 피를 성부께 봉헌하시고, 사도들에게 먹고 마시라고 주셨

으며, 동일한 신비를 영구히 계속 거행하라는 명령을 남기셨다.

축성의 기본 요소는 무엇인가. "그리스도께서 최후 만찬 때에 제정하신 제사는 그리스도의 말씀과 행위로써 이루어진다(미사 전례서 총지침 55항)". "받아 먹어

라. 이는 내 몸이다", "받아 마셔라. 이는 내 피다". 이 성찬 음식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는 사도들과 또한 우리와 하나가 되려는 의지를 드러내고 계신다.

예수님은 빵과 포도주 안에 어떤 방식으로 현존하시는가 요한 복음 6장에서 예수님은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다", "내가 줄 빵은 곧 나의 살이다"고 하셨다.

그때 유대인들이 "이 사람이 어떻게 자기 살을 우리에게 먹으라고 내어줄 수 있단 말인가"하며 서로 따졌다. 중세 신학에서는 이를 설명하기를 `실체변화

(transsubstantiatio)’란 말을 사용했는데, 즉 빵과 포도주의 형상은 그대로 남아있고 그 본질인 보이지 않는 실체만 변한다고 하였다. 현재의 신학은 오해의 소

지가 있는 위의 중세 신학의 내용을 `의미변화(transsignificatio)’와 `목적변화(transfinalizatio)’란 단어로 성체 신비를 좀더 분명하게 설명하는데, 즉 빵과 포

도주는 사람을 위한 자연의 식품으로써 그것을 섭취하여 생명을 보존하고 강화한다. 빵은 성체변화로써 그리스도와 신자의 일치를 위한 매개물이 된다. 따라

서 이 자연의 식품은 새로운 의미와 목적을 갖게 되었다. 빵와 포도주의 변화는 단지 육체적 음식일 뿐 아니라 주님의 현존을 구현하는 표징이다(Schneider의

설). 그러나 성체성사는 여전히 인간의 머리로 다 파악할 수 없는 `신앙의 신비’이다. 왜 성체와 성혈을 축성 후 높이 들어 보이고 경배하는가. 축성 후 성체를

들어 보인 것(`성체 거양’이라고 한다)은 13세기경부터이다. 중세 신자들은 축성된 성체를 봄으로써 특별한 축복을 기대하였다. 성작을 들어 보인 것(`성혈 거

양’이라고 한다)은 비오 5세(1570년)때에 일반화되었다. 비오 10세때는(1927년) 보고 경배하라는 뜻으로 "내 주님이시요 내 천주이시로다"라는 말까지 속으로

외웠다. 현재는 이런 동반기도가 없고 큰절로 흠숭을 표하도록 되어 있다.

환호 : 신앙의 신비여

신앙의 신비여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주님의 죽음을 전하며 부활을 선포하나이다.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실 적마다 주님의 죽음을 전하나이다.

⊙십자가와 부활로 저희를 구원하신 주님, 길이 영광받으소서.

`거룩하시도다’에서 `주님의 기도’까지는 1967년 이전까지만 해도 사제가 홀로 읽었다. 그러나 현재는 감사기도를 모국어로 크게 낭독하며 특히 환호의 노래를

부르도록 하였다. 이에 대한 응답 양식은 세 가지가 있고, 약간의 차이가 있으나 성체 축성기도에서 표현한 주의 죽음과 부활을 선포하며 신앙을 고백하는 환

호이다(1고린 11,26). 이 환호는 신앙의 신비가 신자 공동체 전체의 일임을 분명히 가르쳐준다.

기념, 봉헌, 일치, 전구

기념과 봉헌

†아버지, 저희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기념하며, 생명의 빵과 구원의 잔을 봉헌 하나이다. 또한 저희가 아버지 앞에 나아와 봉사하게 하시니 감사하나이

다.

성령 청원 : 일치 기원

†간절히 청하오니, 저희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시어, 성령으로 모두 한 몸을 이루게 하소서.

전구

주님, 온 세상에 널리 퍼져 있는 교회를 생각하시어, 교황( )와 저희 주교( )와 모든 성직자와 더불어 사랑의 교회를 이루게 하소서.

(위령 미사에서는 아래 기도를 덧붙일 수 있다)

(오늘) 이 세상에서 불러가신 교우( )를 생각하소서. 그는 세례를 통하여 성자의 죽음에 동참하였으니, 그 부활도 함께 누리게 하소서.

부활의 희망 속에 고이 잠든 교우들과 세상을 떠난 다른 이들도 모두 생각하시어, 그들이 주님의 빛나는 얼굴을 뵈옵게 하소서.

저희에게도 자비를 베푸시어, 영원으로부터 주님의 사랑을 받는 하느님의 어머니 복되신 동정 마리아와 복된 사도들과 모든 성인과 함께 영원한 삶을 누리며,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소서.

"나를 기념하여 이 예식을 행하여라(루가 22,19)"는 주님의 명령이 계속 실현되고 있다. 교회는 사도시대로부터 실천하여 주의 수난과 부활과 승천을 기념한다.

특히 미사 중에 그리스도를 제물로 성부께 봉헌한다. 신자들은 자기 자신을 봉헌하며 하느님과의 일치, 신자들과의 일치를 도모한다. 교회는 살아있는 신자들

뿐 아니라 연옥 영혼과 성인 성녀들과도 일치를 이루며 미사를 봉헌하고 필요한 은혜를 청한다. 주님은 산 이와 죽은 모든 이를 위한 구원의 제물임을 표현한

다.

마침 영광송과 아멘

마침 영광송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으로 하나되어, 전능하신 천주 성부, 모든 영예와 영광을 영원히 받으시나이다.

⊙아멘.

사제는 성체 성반과 성혈이 담긴 성작을 높이 들어올리고 기도(또는 성가)를 한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부 성자 성령께 영광을 드리는 가장 오래된 영광

송의 하나이다. 수난과 부활로 구원된 인간이 영광을 드림은 지극히 당연하다면 우렁찬 소리로 `예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해야 할 것이다.

4. 영성체 예식과 주님의 기도

주님의 기도

주님의 기도

†하느님의 자녀되어, 구세주의 분부대로 삼가 아뢰오니, (또는)

†주님께서 친히 가르쳐주신 기도를 다 함께 정성 들여 바칩시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 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오늘 저희

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저 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미사의 참뜻과 목표는 무엇인가. 영성체이다. 본래 영성체(communio)란 공동 배려요 공동 소유란 뜻이다. 즉 그리스도와 신자들이 한 공동체를 형성한다는

것이다. 만일 중대한 큰 죄를 지었다면 성체를 받아 모시지 못할 뿐만 아니라 교회 공동체에서 쫓겨남(excommunicatio)을 당하였다. 결과적으로 성찬에서 그

리스도와의 일치가 영성체의 핵심이 됨을 의미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서 살고 나도 그 안에서 산다(요한 6,56)". 다시 한 번 강조한

다면 미사에 참여하는 궁극적인 이유는 영성체하기 위해서이다. 영성체는 그리스도의 몸을 공동 소유하는 것인데, 그리스도의 몸을 공동 소유하는 이유는 그

리스도와 모든 신자들이 일치를 이루기 위해서이다.

그러면 왜 영성체 전에 주님의 기도를 바치는가. 주님의 기도는 예수께서 직접 가르쳐 주신 가장 완전한 기도이다. 그러므로 이 기도는 언제 어디서나 적합하

다. 그러나 영성체 전의 이 기도에는 다른 뜻이 들어 있는데, 우선 일용할 양식을 청함으로써 신자들에게 성체를 암시해 준다. 둘째는 죄의 용서를 청함으로써

거룩한 주님을 모시게 되고 신자들도 거룩해지려는 것이다. 옛 교부(敎父)들은 이런 청원을 미사와 관련지어 생각했던 것이다. 주님의 기도를 바치기 전에 사

제는 하느님께 기도하자고 권고한다.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은 크나큰 영광이요 기쁨이 아닐 수 없다. 내가 그분의 자녀라는 긍지를 가지고 자신있게 기

도해야 한다. 물론 잘못으로 인하여 탕자처럼 은총을 낭비한 점은 용서를 청해야 한다. 그래서 주님이 가르쳐주신 기도를 바치자는 것이다.

주님의 기도는 짧은 양식은 루가 복음(11,2∼4)에, 긴 양식은 마태오 복음(6, 9∼13)에 있는데, 마태오 복음은 루가 복음보다 두 가지(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또한 저희를 악에서 구하소서)를 더 보탰고, 초기 교회에서는 마태오 복음의 기도문이 통상 사용되었다. 그래서 7가지 청원

(`7’이라는 숫자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충만함, 완전함’을 의미한다)이 주님의 기도에 나타나 있는데, `아버지 이름, 아버지 나라, 아버지의 뜻을 먼저 찾고,

그 다음에 일용할 빵, 죄의 용서, 유혹과 악에서 구제되기를 청한다. 영성체 전의 주님의 기도는 예수님 희생의 신비를 완성하고 영성체 준비에 중점을 둔다【

아버지 이름, 아버지 나라, 아버지의 뜻은 하느님께 관한 것이며, 이 세 가지 청원은 영성체에 관한 것이 아니라 성찬 기도와 관련이 깊다】

① 아버지의 이름

신자나 교회 공동체는 기도할 때 주님의 이름으로 시작하고 끝을 맺는다. 특히 미 사 중에 우리는 하느님을 찬미하고 그분이 영광 받으시기를 기원한다. 감사

기도의 핵심은 바로 하느님쎄 영광을 드리는 것이다. "거룩하시도다…하늘과 땅애 가득한 그 영광". 아버지의 거룩한 이름 즉 거룩한 모습이 만천하에 드러나

기를 빌고 있다.

②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이스라엘 백성들은 신의 통치를 원했다. 이것은 고대 동방 종교의 공통된 관념이었 다. 야훼께서 이스라엘을 통치하시고(판관기 참조), 만군의 왕이신 야훼(이

사 6,5)께 서 세상의 발전 과정을 다스리신다고 보았다. 이스라엘 왕정이 붕괴된 후 예언자들 은 종말에 신정(神政)제도가 다시 회복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예수님의 설교와 복 움 선포의 핵심 주제는 하늘 나라와 회개였다. 하늘 나라란 무엇인가. 세상 마칠 때 즉 종말에 하느님 친히 임금님으로써 다스리신다는 뜻

이다(이사 52,7). 예수님은 하 느님 나라에 관해 말씀만이 아니고 행동으로 보여 주셨다(루가 7,22). 신약성서는 기적이란 말 대신 `예수님의 놀라운 행적’이란

표현을 더 많이 사용하였는데, 이 행 적은 하느님 나라를 시사하고 있다. 또한 예수님을 통하여 하느님 나라가 시작되었 고 종말에 완성될 것임을 보여 준다.

"그러나 나는 하느님의 능력으로 마귀를 쫓아 내고 있다. 그렇다면 하느님 나라는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마태 12,28)".

③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④ 일용할 양식

양식은 쌀, 빵, 음식, 음료뿐 아니라 생계 수단인 일자리까지도 포함한다. 그래서 영성체 전 주님의 기도를 바치는 첫째 이유가 빵을 청하는 데 있다. 주님은 일

용할 양식 즉 매일의 생계를 하느님께 청하여 얻도록 가르쳐 주셨다. 네 양식, 내 양식의 구별이 없다. 지구상의 모든 사람인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이 필요하

다. 하루 하루의 빵을 얻고 하느님께 감사하면서 성체를 영한다면 영원한 삶까지 보장된다. "내가 줄 빵은 곧 나의 살이다. 세상은 그것을 생명으로 얻게 될 것

이다(요한 6,51)".

⑤ 죄의 용서

죄를 범한 사람은 할 말이 없다. 오직 용서를 청할 뿐이다. 즉 자신의 잘못을 고치 고 배상하며 선행으로 갚아야 한다. 나쁜 의향 없이도 잘못을 저지르는 수가

많다. 큰 죄가 있다면 영성체 전에 고백 성사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일상생활의 흔한 잘 못도 있다. 가벼운 죄 즉 소죄(小罪)가 많다. 꼭 먼지가 쌓인 것 같은

이런 죄는 주 님의 식탁에 나아가려 할 때 우리의 마음을 무겁게 누른다. 작은 죄의 사함은 기도 를 통하여 이루어진다. 고백의 기도나 주의 기도를 바칠 적에

용서를 청하는 마음 으로 해야 한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영성체 전에 고백 성사로 대죄의 사함을 받는 것은 몸 전체를 씻는 것이고, 주의 기도를 바치는 것은

얼굴을 씻는 것과 같다고 하 였다. "비록 우리가 목욕을 하였어도 얼굴은 늘 일상생활의 먼지가 묻기 때문에 얼 굴을 씻는 것은 불가피하다. 그래서 `깨끗한 얼

굴’로 성체를 모시기 위하여 주님의 기도로 죄의 용서를 빌며 깨끗이 해야 한다". 미운 사람과의 식사는 제대로 소화가 되지 않는다. 성찬의 식탁에서는 모든

사람과 친교가 이루어져야 한다. 정말 용서 못할 사람이 있다면 하느님께 도움을 청하라.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십 시오.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모르고 있습니다(루가 23,34)".

⑥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⑦ 악에서 구하소서

부속기도

†주님, 저희를 모든 악에서 구하시고 한평생 평화롭게 하소서. 주님의 자비로 저희를 언제나 죄에서 구원하시고 모든 시련에서 보호하시어 복된 희망을 품고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게 하소서.

⊙주님께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있나이다.

미사 중에는 주님의 기도 끝에 부속기도가 이어지기 때문에 "아멘"은 생략된다. 부속기도는 주님의 기도 마지막 청원(일곱번째)인 "저희를 악에서 구하소서"를

반복하여 강조하고 있다. 부속기도의 악이란 "모든 악"이다. 현대인들이 살아가면서 만나게 되는 일상의 유혹만이 아니라 종말의 대시련 등 이런 모든 유혹을

이겨낼 수 있어야 진정한 평화를 얻을 수 있으니, 우리 자신이 우리의 믿음에서 이탈하지 않도록, 모든 시련을 이겨낼 수 있도록 하느님의 자비를 간구하는 것

이다. 보잘것없는 작은 믿음이오니 도와달라는 청원이다. 그러니 "서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1고란 10,12)". 마지막 기도 문장

은 종말의 뜻이 담긴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도록 하였다. 이미 시작되었지만 재림까지 아직 완성되지 않은 하느님의 통치가 현실화되기를 간구한다. 이렇

게 주님의 기도는 오늘의 기도인 동시에 종말론적인 기도이다. 따라서 신자들은 이 마지막 날을 깨어 기다려야 한다.

5. 평화예식

평화의 인사는 우선 일치의 표시이다. 영성체의 뜻도 주님과의 일치요 신자들 서로의 일치를 표시한다. 평화는 히브리말로 "샬롬"이지만 육체의 건강과 세속의

평화뿐 아니라 인간과 하느님의 조화 그리고 사람들 상호간의 영원한 안녕 곧 구원의 뜻이 담겨 있다. 하느님의 가장 큰 선물은 파스카 신비의 열매이고 신약

의 완성인 구원이다.

평화의 예식은 첫째 평화를 위한 사제의 기도, 둘째 사제와 신자들간의 인사 교환과 응답, 셋째 모인 신자들의 상호인사와 표시 세 부분으로 나뉜다.

평화예식

†주 예수 그리스도님, 일찍이 사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에게 평화를 두고 가며 내 평화를 주노라"하셨으니, 저희 죄를 헤아리지 마시고 교회의 믿음을 보

시어, 주님 의 뜻대로 교회를 평화롭게 하시고 하나되게 하소서. 주님께서는 영원히 살아 계시며 다스리시나이다

⊙아멘.

†주님의 평화가 항상 여러분과 함께.

⊙또한 사제와 함께

†평화의 인사를 나누십시오.

⊙평화를 빕니다.

피흘려 이룩한 평화

평화 예식의 첫 부분의 사제의 기도는 다시 두 부분으로 나뉜다. "주 예수 그리스도님, 일찍이 사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에게 평화를 두고 가며, 내 평화를

주노라 하셨으니…". 이 기도를 들으면 최후의 만찬 장소를 연상케 된다. 당시(수난 전) 예수께서는 장엄한 고별 설교를 하셨다.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주고 간

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주는 것이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는 다르다. 걱정하거나 두려워하지 말라(요한 14,27)". 예수님이 주고 가신 것은 무

엇인가. 근심이 아니라 평화이다. 십자가의 핏방울로써 예수 성탄 날(베들레헴의 밤)에 시작된 하늘의 평화는 죽음의 순간 골고타 언덕에서 완성되었다. 이 피

흘려 이룩한 평화를, 그분은 `내 평화’를 준다고 하셨다. 평화는 주님의 것이다. 주님이 주시는 평화, 이것이 인간에게는 가장 고귀한 선물일 것이며, 이 선물을

주님을 믿는 모든 이가 진실된 마음으로 서로에게 나누어야 하지 않을까. 여러분은 평화예식때 주님의 선물을 온전히 나누시나요.

교회의 믿음

"저희 죄를 헤아리지 마시고 교회의 믿음을 보시어, 주님의 뜻대로 교회를 평화롭게 하시고 하나되게 하소서". 우리 죄를 보지 말라는 청원은 바로 이 값진 평

화와 일치를 깨뜨릴 수 있는 모든 잘못을 없이하려는 일종의 속죄기도이다. "그러므로 제단에 예물을 드리려 할 때에 너에게 원한을 품고 있는 형제가 생각나

거든 그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그를 찾아가 화해하고 나서 돌아와 예물을 드려라(마태 5,23∼24)". 회개와 믿음이 있어야 평화를 청할 수 있다. 참 평화는

주님만이 주실 수 있다. 실제로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너희에게 평화(샬롬)가 있기를(요한 20,19)"하고 인사하며 제자들에게 당신의 손과 옆구리를 보여주셨

다.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부활이 없고, 주님의 현존 또한 없다.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참 평화가 있을 수 없다.

주님의 평화가 항상 여러분과 함께

"주님의 평화가 항상 여러분과 함께"라는 인사말을 하면서 사제가 팔을 벌린다. 그것은 기도의 자세가 아니라 모든 신자를 한꺼번에 포옹하려는 사랑과 평화의

자세이다. 이 평화의 인사는 권고사항이지 의무사항은 아니다. 다만 교회와 인류 가족의 평화와 일치를 간구하며 성체를 나누기 전에 사랑을 표시하는 것이다.

평화의 인사 방법은 지역의 툭성과 풍습을 고려하여 주교회의에서 결정하는데, 한국 교회는 행동없이 `평화를 빕니다’란 인사만을 하게 하였다.

6. 하느님의 어린양(Agnus Dei)

빵을 나눔

빵 나눔

†여기 하나 되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이를 받아 모시는 저희에게 영원한 생 명이 되게 하소서.

빵을 굽거나 쪄 먹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2000년 이전으로 본다. 이때부터 빵은 피와 숨과 더불어 생명의 3대 요소가 되었다. 그래서 구약성서에서도 빵이 없다

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뜻이었다(아모 4,6). 예수께서도 제자들에게 "일용할 빵"을 얻기 위하여 기도하도록 `주님의 기도’속에 포함시키셨다. 빵을 나눔은 형

제애의 가장 좋은 표현이며(잠언 22,9), 손님 접대를 위한 음식이기도 하다(창세 18,5 : 루가 11,5). 또한 빵은 하느님의 선물이며 인간 노동의 결실이다. 그래서

이스라엘인들은 오순절에 감사의 뜻으로 맏물의 빵을 하느님께 바쳤다. 빵이 교회 예절에서 깊은 의미를 지니게 된 것은 예수님의 최후 만찬 때부터였다. "우

리가 빵을 떼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을 나누어 먹는 것이 아니겠습니까(1고린 10,16)".

미사란 빵을 나눔이다

【편집자주 : 평화의 예식이 끝나면 사제는 바로 빵을 나누는 기도를 하면서 큰 제병(성체 거양 때 이미 둘로 쪼개져 있는)의 반쪽에서 일부를 떼어 내고, 성작

에 있는 성혈에 넣게 된다. 무슨 소리인지 잘 모르시는 분들은 미사때 앞쪽으로 오셔서 보시기 바랍니다】

빵을 나누는 행위는 그리스도께서 최후 만찬 때에 행하신 것으로써 사도들 시대에는 미사 전체를 `빵을 나눔’이라고 불렀다. 이 예절은 우리 모두가 영성체로

써 그리스도 자신이신 같은 한 생명의 빵을 받아 모심으로써 한 몸을 이룬다는 사실을 표시한 것이다(미사 전례서 총지침 56항). 빵은 바로 그리스도이며, 나누

어진 빵을 먹는 이들은 그분의 생명에 동참한다. 9세기경 신자의 증가로 인하여 집에서 빵을 만들어 가져와서 나누던 예식이 생략되고, 제병(祭餠:hostia)을 만

들어 사용하기 시작하면서도 빵을 나누는 예절은 그대로 남았었다. 그렇지만 사제는 큰 제병을 성체 거양 때 둘로 쪼개고, 이 빵을 나누는 예식에서 반쪽의 일

부를 떼어내서 성혈에 넣고, 쪼개진 두 개의 큰 부분을 사제가 영성체 함으로써 초세기의 빵을 나누어 먹던 의미는 사라졌었는데, 바오로 6세 교황은 옛 의미를

살려 사제가 큰 제병을 여러 조각으로 나누어 몇몇 신자들에게 성체를 영해주도록 하였다.

빵을 섞는 예식

사제는 나누어진 빵 조각을 성작에 담긴 포도주에 넣으면서 이렇게 기도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거룩하게 혼합하여 모시오니, 우리에게 영

원한 생명이 되게 하소서" 이 예식에는 여러 해석이 있었으나, 지금은 `성찬식 도중에 성체를 쪼갬으로써 십자가상의 돌아가심을 상징하고, 빵을 포도주에 섞

는 예식에서 성체 성혈이 합쳐져서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을 상징하며 우리 신자들도 이 부활에 참여한다고 보는 것이다.

하느님의 어린양(Agnus Dei)

하느님의 어린양

(사제가 제병을 나누는 동안 아래 기도를 외거나 노래한다)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주님, 평화를 주소서.

빵을 나누어 성작에 담긴 성혈에 섞는 동안, 성가대나 독송자가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주님"을 외우면 교우들이 노래로 혹은 큰소리로 "자비

를 베푸소서"라고 응답한다. 이 노래는 예절이 계속되는 동안 반복되고 마지막에는 "평화를 주소서"로 끝맺는다(미사 전례서 56항). 나누는 빵이 참된 하느님의

어린양임을 드러내기 위하여 세르지오 1세 교황(687∼701년 재위)은 미사 중에 "하느님의 어린양…"을 노래하도록 하였다. 11세기에는 이 노래가 평화의 인사

와 연결되어 마지막 후렴에 "자비를 베푸소서"대신에 "평화를 주소서"라고 응답을 하도록 하였다. 또한 위령미사 때에는 "저들에게 안식을 주소서"라고 하였으

나, 현행 미사 전례서에서는 이를 없애버렸다.

예수께서 오시는 것을 본 세례자 요한은 이렇게 외쳤다. "저기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 저기 오신다(요한 1,29)". 묵시록은 "희생되신 어린양

은 권능과 부귀와 지혜와 힘과 영광과 찬양을 받으실 자격이 있으십니다(묵시 5, 12)"라고 기록하였다. 한편 바오로 사도께서는 이렇게 강조하셨다. "그리스도

께서 우리의 과월절 양으로써 희생되셨으므로 이제 여러분은 누룩없는 반죽이 되었습니다". 오시는 주님을 기쁘게 맞이하고 찬양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므

로 "하느님의 어린양…"은 기쁨의 노래요 찬미의 노래이다.

7. 영성체 예식

영성체(communio)란 이미 언급하였듯이 물건이나 희노애락 등의 공동 소유, 공동 배려, 공동 참여의 뜻이다. 4세기경부터 영성체란 주님의 몸과 피를 받아 모

시는 것 , 즉 성체와 성혈의 배령을 뜻하였다. 하느님의 백성은 성체성사를 통하여 생명을 기른다. 성체의 삶이란 하느님 영의 삶이다. 그러므로 영성체는 미사

의 목표요 일치의 구심점이며, 나눔의 잔치, 하느님과 만나는 현장, 영원한 생명의 원천이다.

영성체 전 사제의 기도

영성체 전 기도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님, 주님께서는 성부의 뜻에 따라 성령의 힘으로 죽음을 통하여 세상에 생명을 주셨나이다. 그러므로 이 지극한 몸

과 피로 모 든 죄와 온갖 악에서 저를 구하소서. 그리고 언제나 계명을 지키며 주님의 곁을 떠나 지 않게 하소서. (또는)

†주 예수 그리스도님, 주님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심이 제게 심판과 책벌이 되지 않게 하시고 제 영혼과 육신을 자비로이 낫게 하시며 지켜 주소서.

이 두 기도는 10세기 갈리아(프랑스)전례에서 나왔다. 사제가 홀로 조용히 기도한다고 하더라도 미사 중의 침묵은 공백이 아니라, 공현의 한 부분이다. 따라서

사제만 기도할 것이 아니라 신자들도 미사 통상문을 보면서 조용히 함께 따라 기도한다면 성체를 영하기 전에 좋은 준비 자세가 될 것이다. 이 기도는 바오로

사도의 경고, 즉 부당한 성체나 성혈의 배령을 연상시킨다. "올바른 마음가짐 없이 그 빵을 먹거나 주님의 잔을 마시는 사람은 주님의 몸과 피를 모독하는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1고린 11,27)".

영성체 전 공동체의 준비 기도

영성체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분이시니, 이 성찬에 초대받은 이는 복되도 다.

⊙주님, 제 안에 주님을 모시기에 합당치 않사오나, 한 말씀만 하소서. 제가 곧 나으리 이다.

사제는 미사 중 깊은 절을 세 번 하는데, `성체와 성혈 축성 때, 그리고 이제 성체를 모시기 직전의 큰절’이다. 그것은 최대의 존경과 흠숭을 표시한다. 사제는

두 쪽으로 나누어진 성체를 약간 높이 들고 세례자 요한이 증언한 말씀(요한 1,29)을 되풀이한다. 이것은 16세기 미사 중에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분이시니, 이 성찬에 초대받은 이는 복되도 다.

⊙주님, 제 안에 주님을 모시기에 합당치 않사오나, 한 말씀만 하소서. 제가 곧 나으리 이다.

이 응답은 10세기에 시작되었고 세 번 반복하며 가슴을 쳤으나 현재는 가슴을 치는 대신 겸손과 신뢰의 정을 드러내며 한 번만 응답기도를 한다. 이것은 어느

백인 대장의 믿음(마태 8,8)에서 따온 것이다.

사제의 영성체

사제의 영성체

†그리스도의 몸은 저를 지켜 주시어,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하소서.

†그리스도의 피는 저를 지켜 주시어,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하소서.

영성체송(오늘 미사의 영성체송 또는 성체 성가)

†그리스도의 몸.

⊙아멘.

(영성체가 끝나면 성합, 성작과 성반을 깨끗이 닦는다. 그 동안 사제는 조용히 아래의 기도를 바친다)

⊙주님, 저희가 모신 성체를 깨끗한 마음으로 받들게 하시고, 현세의 이 선물이 영원한 생명의 약이 되게 하소서.

왜 사제가 맨 먼저 영성체 하는가. 신학적으로 보면 사제의 우선 순위는 특권이나 성직 계급의 교만성이 아니고 공동체의 목자요 "모든 이의 종(마르 9,35)"으

로서 평가되고 있기 때문이다. 영성체의 정신은 하느님 아버지께 스스로 몸바쳐 이룩한 은혜로운 그리스도의 희생에 온전히 참여하고 영성체한 사람도 자기

자신을 바쳐 그리스도와 동참하는 것이다. 손님을 초대한 성찬의 주인은 사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시다. 사제는 예수님이 초청한 제자 즉 먼저 영성

체하고 또한 먼저 자신을 희생하고 바칠 준비가 된 사람이다. 그러므로 일반 사회의 식사 초대와는 다르다. 사제는 성체를 영하면서 "그리스도의 몸은 저를 지

켜 주시어,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하소서", 또한 성혈을 영하면서 "그리스도의 피는 저를 지켜 주시어,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하소서"라고 동반 기도를 외운다.

영성체에 관하여

예수님은 "받아 먹어라. 이것은 내 몸이다(마르 14,22)". "만일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지 않으면 너희 안에 생명을 간직하지 못할 것이다(요

한 6,53)"라고 하시면서 영성체를 강조하셨다. 그런데 교회 역사를 통해 보면 성체에 대한 엄격한공경심이 강조되면서 영성체를 드물게 하는 습관이 생겼고,

또한 `신령성체(神領聖 --- 실제로 성체를 영하지는 않았지만 마음으로 간절히 성체 영할 준비 기도를 하고 성체 안에 예수님이 계심을 굳게 믿고 열렬한 마음

으로 성체를 모시는 것)’라는 관습까지 생겨났다. 그리하여 미사 중에 영성체를 하지 않는 것이 정상인 때도 있었다.

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교회는 신자들이 자주 혹은 매일이라도 미사에 참여하고 영성체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특히 참여한 미사 중에는 축성된 성체를 받아

모시는 것이 좋다고 하였다(미사 전례서 총지침 56항). 모든 신자는 첫 영성체 후 교회의 규정에 따라 적어도 1년에 한 번 부활절에 영성체할 의무가 있다(교회

법 제920조). 또한 성체를 영한 신자라도 같은 날 자신이 참여하는 성찬 거행 중에서만 다시 영성체 할 수 있다. 즉 하루에 두 번 미사에 참여하여 두 번 성체를

모실 수 있다. 영성체는 거룩한 행위이다. 그래서 미사의 목표라고 하였다. 음식은 맛으로 먹듯이 영성체 하는 이도 예수께 맛들여야 한다. 맛이란 무엇인가.

사랑이다. 사랑을 저버림은 죄이다. 그러므로 대죄 중에 성체를 받아 모심은 그리스도께 대한 모독이요 또 하나의 중죄이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체하며 나아가

입맞춤으로 예수님을 팔아버린 가리옷 사람 유다와 비슷한 죄이다. 이것을 바오로 사도는 "자기 자신을 단죄하는 것"이라고 표현하였다. 그래서 통회하고 고백

하라는 것이다. "먼저 자신을 살펴보고 빵을 먹고 잔을 마셔야 합니다(1고린 11,28)". 고백은 영성체를 위해 필요한 증거이다. 부당한 영성체는 언제든지 피해

야 한다.

†그리스도의 몸.

⊙아멘.

아멘은 믿음과 고백의 표시다. 예수님을 모시고 난 후 자리에 돌아와 감사를 드리자. "주님, 저희가 모신 성체를 깨끗한 마음으로 받들게 하시고 현세의 이 선

물이 영원한 생명의 약이 되게 하소서".

영성체는 혀 또는 입으로 자유로이 할 수 있다(사목지침서 2편 39조). 이에 따라 주교회의는 자기 지역 안에서의 영성체 방법을 정하고 교황청의 확인을 받아

야 한다. 혀 또는 손으로 영성체 할 때에 항상 조심해야 할 것은 방법의 문제가 아니라 흠숭의 참뜻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혀나 손이나 남에게 잘못을

저지르기 쉬운 몸의 지체 중의 일부이다. 그렇다면 앞서 언급했듯이 흠숭의 태도는 정신에서 나오는 것이고, 동작은 마음의 한 표현일 뿐이다. 따라서 동작은

변할 수 있어도 정성은 변치 말아야 할 것이다.

성체를 받아 먹고 또 성혈을 받아 마시는 것을 `양형 영성체’라고 한다. 영성체의 전통 중에 13세기 이후에는 점차 성혈 배령이 사라졌는데, 그 이유는 첫째 성

혈을 한 방울이라도 흘리면 대죄를 면치 못한다는 지나친 염려와 두려움 때문이었다. 둘째는 중세 신학이 변화된 빵에 온전하고도 영원한 그리스도께서 피를

포함하여 현존한다고 가르쳤다. 평신도에 대한 성혈 배령의 금지는 1415년 독일 콘스탄스 공의회의 결정이었다. 2차 바티칸 공의회는 전례헌장(55항)을 통하

여 제한하긴 하였지만 다시 성혈을 영할 수 있게 허락하였다.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확정된 교리 신학적 원리를 침해하지 않고 교황청이 규정할 경우, 두 가지

형태, 즉 주님이신 몸과 피의 배령은 주교의 판단에 따라 성직자와 수도자, 평신도에게 허락할 수 있다. 그러나 한 가지 영성체로써도 온전한 그리스도와 참된

성사를 받는다". 미사 전례서 총지침(242항)에서 양형 영성체가 가능한 열네 가지 경우를 제시하고 있는데, 그중 몇 가지만 살펴보면 ① 어른 영세와 미사 때,

견진성사 미사 때, ② 혼인미사의 신랑신부, ③ 성품(부제품과 신품)받는 미사 때의 서품자들, ④ 미사 중 첫 서원, 갱신, 종신서원 미사 때의 서품자들, ⑤ 교회

직무를 부여받은 서품자들, ⑥ 병자를 위한 가정미사에 참여한 이들, ⑦ 사제의 첫미사때 그 부모와 식구, 특별한 은인들, 그밖에도 주교회의 결정이나 주교의

판단에 따라 너무 많지 않은 신자들이 참여한 큰 축일에 양형 영성체를 실시하도록 하고 있다. 그리고 1983년 새 교회법은 제한없이 두 번 영성체 할 수 있게

하였다. 지성한 성찬(성체)를 이미 영한 이라도 같은 날 자기가 참여하는 성찬 거행 중에서만 다시 성체를 영할 수 있다(교회법 제 917조).

마지막으로 "공심재(空心齋) 또는 공복재(空腹齋)"란 교회 규정에 따라 영성체 전 음식물을 먹지 않는 것이다(영성체 전 한시간, 영성체 후 15분). 교회 전통상

여러 가지 방식의 공복재가 있었지만, 1964년부터는 한 시간으로 단축되었다. 현재는 새 교회법에 따라 다음과 같이 공복재의 규정이 완화되었다(교회법 제

919조). ① 건강한 사람은 영성체 전 적어도 한 시간 이상 어떤 음식도 삼가야 한다. 단 물과 약은 언제든지 들 수 있다. ② 고령자, 병자, 간호하는 이는 공복 한

시간 이내에도 음식물을 섭취할 수 있다. ③ 같은 날 두 번 이상 미사 지내는 사제는 한 시간 이내의 미사에 앞서 요기할 수 있다. 규정이 완화되었다고 폐지된

것은 아니다. 성체께 대한 존경과 주님을 깨어 기다리는 준비하는 마음은 변함이 없어야 한다.

8. 감사의 침묵

사람의 목숨은 숨쉬지 않고는 2분, 물먹지 않고는 24시간, 끈질긴 사람이라도 36시간을 넘기지 못한다. 그러면서도 공기나 물에 대하여 걱정도 감사도 한 적이

없다. 더구나 사람이 숨쉬고 물 마시면서 살아가도록 세상을 창조·섭리하시는 하느님께 감사는커녕 까맣게 잊고 살아간다.

찬미와 감사의 침묵 기도

감사 침묵 기도

영성체 후 사제는 자리에 가 앉고, 잠시 침묵 가운데 모두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음식의 형태로 오신다. 그리스도의 몸인 성체는 우리 영혼을 영적으로 먹여 기르고 거룩하게 한다. 시편 98편은 온 세상이 다 하느님을 찬

양하라고 권고한다. "바다도 땅도 그 위에 사는 것들도 모두 환성을 올려라. 물결은 손뼉을 치고 산들은 다같이 환성을 올려라". 하느님이 함께 계시는 세상. 사

람들을 먹고 마시며 즐겁게 살게 하는 한편 영원한 삶을 살도록 초대하시는 주님이 오신다. 그러니 어찌 찬미의 노래가 나오지 않겠는가. 영성채 성가는 그래

서 생겨났다. 최후의 만찬 때 예수님도 사도들과 함께 시편을 노래하셨다. "그들은 찬미의 노래를 부르고 올리브 산으로 올라갔다(마르 14,26)". 4세기 이후 영

성체 행렬이 길어지면서 시편 또는 일반 성가의 노래를 하였는데 이 영성체 노래는 공동의 찬미요 일치의 증거이다. 영성체 행렬은 순번을 기다리는 줄 서기가

아니고 최후 만찬에 동참하며 부활 잔치에 참여하는 것이다. 공동의 축제이기에 기뻐 노래하는 것이다. 영성체가 끝나면 교우들은 잠시 침묵 중에 마음으로 감

사의 기도를 바친다. 개인적인 감사는 성체를 모실 때부터 시작된다. 감사 기도는 본래 미사가 끝난 다음 자발적으로 남아서 하였으나 잘 실천이 되지 않기 때

문에 하나의 예식으로써 침묵의 기도를 삽입하였다. 이때 사제도 자기 자리에 앉아 감사의 침묵 기도를 바친다.

영성체 후 기도

영성체 후 기도(오늘 미사의 기도)

†기도합시다.

(사제와 교우들은 잠깐 묵묵히 기도한다. 이어서 사제가 팔을 벌리고 영성체 후 기도 를 바치면, 교우들은 응답한다)

…비나이다. (또는) …다스리시나이다.

⊙아멘.

사제는 자신의 자리에 서서 또는 제단에서, 교우들을 향하여 "기도합시다"하고 두 손을 펴들고 영성체 후 기도를 바친다. 기도 끝에 교우들은 "아멘"으로 응답

한다(미사 전례서 총지침 122항). 영성체 후 기도의 참뜻은 무엇인가. 미사를 통하여 좋은 결실, 좋은 효과를 거두어들이도록 하려는 것이다. 주님의 성체 즉

복되신 성삼위가 내 안에 현존하신다. 그러니 이제는 하루 하루의 내 활동이 사랑의 업적을 이루도록 하고 그 결과로 천상 은혜까지 재확인하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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