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부편(17) 아우구스티노(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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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6 심재엽 [simjy] 2005-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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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교부편(17)-아우구스티노(하)
아우구스티노의 저술들은 엄청나다. 그중에서도 방황을 거쳐 하느님 안에서 참 평화를 얻기까지 자신의 신앙을 묘사한 「고백론」이 친근하다.
평생 이단맞서 정통교리 수호
마니교 지도자와 토론, 개종시켜
삼위일체론 고백론 등 저술 왕성
아우구스티노 당시 북아프리카에는 몇 가지 이단 논쟁이 교회를 휩쓸고 있었다.
아우구스티노는 이러한 이단들과의 논쟁에 맞서서 정통 교리를 수호함으로써 당대의 아프리카 교회와 서방교회, 더 나아가 세계교회 안에서 신학 발전에 크게 기여했고, 이는 지금까지도 그리스도교 신학의 가장 중요한 토대가 되고 있다.
그가 히포의 주교로서 생애에 걸쳐 맞선 논쟁은 크게 네 가지이다.
가장 먼저 자신이 몸을 담고 기웃거렸던 마니교 논박은 그가 사제 시절부터 399년까지 주력했던 이단 논쟁이었다. 마니교는 영지주의에서 많은 영향을 받아 극단적인 이원론을 주장했다. 그들은 세상이 선과 악의 원리가 맞서 있으며, 선악의 잔혹한 싸움터가 바로 이 세상이라고 했다. 이는 『과연 악은 어디로부터 오는가?』(Unde Malum)라는 의문에 대한 답을 구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아우구스티노는 이 풀리지 않는 의문에 답하기 위해서 9년 동안이나 마니교도로 지냈다.
그는 자신이 오랫동안 몸담았던 만큼 마니교에 대해 가장 적절하고 효과적으로 논박할 수 있었다. 특히 398년 12월 7일 히포의 성당에서 마니교 지도자인 펠릭스와 벌인 토론에서 그를 승복시키고 개종시킨 이야기는 유명하다.
두 번째 논쟁은 도나투스주의에 대한 것이다. 당시 아우구스티노가 주교로 있던 히포는 이미 도나투스주의자들로 뒤덮여 있었다. 이들은 자신들을 「거룩하고 순결한 교회」, 가톨릭 교회는 「죄인들의 교회」라고 주장했다. 히포에서 도나투스주의자들은 교리적 논쟁에 더해 민족주의적 요소를 가미해 사태는 더욱 심각했다.
아우구스티노는 이들이 정통 교회로 돌아오도록 쉼없이 설득하고 논박했으나 이들의 폭력 행위가 심화되면서 점차 공권력의 개입을 정당시하고 나아가 적극적으로 개입을 호소하기도 했다.
그는 저술과 강연, 공개 토론 등을 통해 도나투스주의의 허구를 지적하고 정통 가톨릭 신앙과 교리를 확인해나갔고 411년 카르타고에서 열린 공개 토론회에서 가톨릭이 승리를 거둠으로써 도나투스주의는 막을 내린다.
세 번째는 펠라지우스주의와 벌어졌다. 펠라지우스는 아일랜드에서 로마로 건너 온 금욕적 수도자로서 느슨해진 신앙생활에 반발, 인간의 자유의지를 강조함으로써 결국 은총의 역할을 최소화시키는 오류를 범했다.
자신의 회심을 하느님의 은총에 대한 깊은 영적 체험으로 여기던 아우구스티노에게 이러한 주장은 충격이었고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다. 20여년 동안 그는 펠라지우스주의자들과의 논쟁의 와중에서 인간의 욕정, 홀로 내버려진 인간의 비참함, 예정과 은총에 대한 교의를 설명하기 위해 수많은 작품을 썼다.
마지막 논쟁은 아리우스주의와의 논쟁이다. 생애 마지막 10여년을 이들과의 논쟁에 개입하면서 보냈던 그는 자신의 신학저서 중에서 최고의 역작으로 평가받고 있는 「삼위일체론」(De Trinitate)을 근 20여년에 걸쳐 저술했다.
아우구스티노의 저술들은 엄청나다. 그의 전기를 쓴 포시디오(Possidius)는 그의 저서명을 모두 1030개나 열거했다. 아우구스티노가 자신의 저서 「재론고」에서 열거한 것은 93개로 이는 강론과 서간들을 모두 제외한 것이다.
그의 저술 중에서 가장 친근한 것은 아마도 「고백록」(Confessiones, 397~401)일 것이다. 오랜 방황을 거쳐 하느님 안에서 참 평화를 얻기까지 자신의 종교적 발전과 신앙을 영혼 깊숙이 묘사한 「고백록」은 자신의 죄에 대한 고백일 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자비에 대한 찬미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는 『고백한다는 것은 바로 하느님을 찬미하고 자신의 죄를 아파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삼위일체론」은 오랜 묵상을 통해 무르익었고, 한때 중단됐다가 다시 작업을 한 저서이다. 「고백록」을 반영하며 신학과 신비주의의 경계에 자리잡은 이 저서는 아우구스티노 자신이 고백하듯 『원기왕성한 나이에 시작해서 늙어서야 그 끝을 보았다』고 할 만큼 오랜 세월, 엄청난 노력과 정성이 깃들인 작품이다.
교의신학 분야에서 최고의 걸작이자 삼위일체에 관한 교부시대의 신학을 총괄하고 완성시킨 작품으로 이후 교회의 삼위일체 신학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이 저서는 삼위일체에 관한 성서적 논거를 제시한 제4권까지에 이어 5권부터 7권까지는 사변 신학적 관점에서 삼위일체론의 정식(定式)을 설명한다. 제8권에서는 하느님에 관한 신비신학을 도입했고 이후 14권까지는 인간 안에 있는 삼위일체의 모상을 찾았으며 제15권에서는 모든 내용을 요약, 보완했다.
모든 역사의 전환점에서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끊임없이 지난 역사를 돌아보게 만드는 것은 「신국론」(De civitate Dei, 413~427)이다. 400여개 이상의 필사본을 만들어낸 신국론은 인간의 역사를 조명하면서 그리스도교를 옹호한 방대한 역사 신학서이자 호교론적 저서로서, 지상의 도시와 천상의 도시를 드러내면서 선과 악, 신앙과 불신앙의 갈등과 싸움으로서 인간 역사와 그 현실을 성찰한다.
그는 지상 도시는 천상 도시의 예형이며, 이는 결국 지상의 순례자들을 위해 현세의 지평선에 걸쳐진 천상 도시의 그림자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 『여러분 고향의 사랑 노래를 부르시오. 새로운 발걸음, 새로운 나그네, 새로운 노래!』를 부르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