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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회 창설자편(1) 베네딕토(하)

538 심재엽 [simjy] 2005-03-19

38】수도회 창설자편(1) - 베네딕토(하)

 

  베네틱토 성인은 양팔을 높이들고 기도   하는 가운데 선채로 선종했다. 자신의   영혼을 하느님께 내어드리는 모습이 아   닐 수 없다.

‘기도하고 일하라’ 정신 강조

순명 침묵 겸손을 기본 덕으로

기도 독서 노동으로 일과 구성

 

유럽 수도원 생활의 규범이 되었던 베네딕토의 규칙서는 성인의 유일한 저서인데 정확한 저술 시기는 알 수 없고 다만 생애 후반기(530∼540)에 마무리 된 것으로 전해진다. 이 규칙서는 수도 생활에 관한 이론 뿐 아니라 비코바로(Vicobaro), 수비아코(Subiaco), 몬테카시노(Monte Casino)에서의 수도 경험과 체험들이 녹아있다는 면에서 이론과 규율이 잘 조화돼 있으며 또한 수도 생활에 요구되는 핵심 사항들이 체계적으로 서술돼 있다는 평을 듣고 있다. 『하느님의 사람 베네딕토는 뛰어난 분별력과 명쾌한 표현으로 규칙서를 저술하였다. 그분의 성품과 생활을 더 자세히 알고자 하는 사람은 그분이 행동으로 가르친 모든 내용을 이 규칙서 안에서 찾아볼 수 있다. 왜냐하면 그분은 자신이 직접 생활하셨던 것과는 다른 어떤 것도 가르칠 수 없는 분이었기 때문이다』

그레고리오 대교황은 「대화집」에서 베네딕토 규칙서에 관한 내용을 이같이 소개하고 있는데 당시 여러 수도 규칙들이 있었던 상황에서 베네딕토 규칙서가 명성을 지니게 될 수 있었던 것은 물론 내용적인 면에서 우월성을 인정받은 것과 함께 그레고리오 대교황이 베네딕토를 서방 교회의 가장 뛰어난 수도승으로 소개한 것도 큰 요인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그같은 배경에 앞서 베네딕토 규칙서가 베네딕토 수도회 담을 넘어 인근 다른 수도원들에 퍼져 가게 된 것은 그만큼 성인의 사상과 영성이 복음의 정신을 따르고 있음을 수도자들이 공감하고 있었다는 뜻이기도 했다.

갈리아 남부 지역에서 프랑스, 영국, 아일랜드 지역으로 퍼져 독일에 전해졌던 규칙서는 카롤링 개혁 이후 중세 모든 수도원들이 베네딕토 수도 규칙을 따를 만큼 광범위하게 퍼져나갔고 수도자가 된다는 것은 곧 베네딕토 회원이 되는 것을 의미할 정도였다.

무엇보다 베네딕토 규칙서는 머리말 부분의 「수도이상」이나 71∼72장의 「형제적 사랑」에 관해 서술한 내용 등을 통해 성인의 영성과 진 면목을 살펴볼 수 있다는 면에서도 가치가 크다고 하겠다.

 

베네딕토는 여기서 윤리적인 영성을 설파하는 것만이 아닌, 초기 수도회 정신을 이어받아 하느님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알려주고 있는데 모든 영적 행위들의 최종 관건은 하느님을 찾는 것, 종교적 그리움을 채우는 것으로 서술하고 있다.

학자들은 성인의 또 다른 영성을 「사람을 좋아하고 사람에게 친절하게 행동하는 것(Menschenfreundlich keit)으로 설명한다. 그것은 규칙서 전면에 깔려있는 사람에 대한 관심 때문이다.

오스트리아 신학자 요셉 봐이스마이어는 『사람이 자신의 올바른 길을 찾아가는 것, 그가 건강하게 살아가는 것, 그가 자신의 고유한 모습을 발견하고 유지해 나가는 것, 자신의 능력의 가능성과 한계를 발견하는 것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것들을 알고 자신과 함께 있는 것 등이 수도 규칙에서 관심을 가지는 부분들이었다』고 밝히고 있다.

성인은 규칙서에서 「수도승」(monacus)은 「하느님을 찾는 사람」이며 수도원은 「주님을 섬기기를 배우는 학원」으로 칭했으며 수도 생활의 기본적인 덕을 순명과 침묵과 겸손으로 제시했다.

예루살렘의 초대 공동체 생활에서 수도 생활의 이상을 찾았던 베네딕토는 수도자의 일과를 기도와 독서, 노동으로 구성하였고 성서 독서를 수도 생활의 중요한 요소로 규정, 공동 기도와 함께 수도자들의 영성 생활을 이루는 기초로 설명했다.

「기도하고 일하라」(ora et labora)의 정신은 기도와 노동의 조화를 꾀했던 성인의 정신을 반영한 표현이라 할 수 있는데 베네딕토회 회원들은 그같은 기도와 노동의 균형 정신을 바탕으로 황무지를 개간하고 학교를 세우며 서방 세계안에서 영적 문화적 종교적 삶의 중심을 이뤄갈 수 있었다.

수도 서원 부분의 「정주」와 「수도승다운 생활」에 대한 개념은 베네딕토가 처음 도입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러한 정주 서원은 실제 수도원 안에 머물러 살아야 한다는 외적인 정주의 의미도 있지만 하느님을 향해 항구히 정진해야 한다는 내적 정주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다.

형제적 공동체와 관련해서는 「공동체 안에서 서로에 대한 사랑은 공기와 같이 중요하고, 형제적 사랑은 구체적인 사랑이어야 하며, 일상 생활에서 일어나는 일들 속에서 표현되어야 할 것」으로 설명한다.

성인은 수도 공동체의 근본적 바탕을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으로 보았다.

형제들간에 나누는 모든 인간적인 감정들 보다 그리스도를 더 높이 세워야 할 것으로 보았으며, 또 그리스도는 지속적으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공동체의 기초로 보았다.

이러한 베네딕토 규칙서는 현대 교회에서도 대표적인 수도 규칙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베네딕토 이후에 생겨난 서방 교회 규칙서 대부분이 영향을 받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성인의 수도 규칙을 따르는 베네딕토 수도회 활동은 세계 역사상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정주하면서 공동체 생활을 통해 하느님을 찾는 삶 자체를 목적으로 하지만 한편 지역 교회의 필요성에 따라 교육, 학문, 선교 등 다양한 활동에 종사한다는 이념은 수도회의 학교 운영이나 신학, 철학, 과학 등 학문 연구를 가능하게 했고 예술 활동을 꽃피게 했기 때문이다.

발터 닉(Walter Nigg)에 따르면 베네딕토 성인은 「건설하는 사람」이었다. 많은 요구 사항들로 사람들을 억누르려 하지 않았고 사람들을 일으켜 세우고 건설하려 했으며 모든 종류의 슬픔과 싸워 나갔다.

성인은 죽음을 맞기 6일전 자신의 무덤 문을 열어놓게 하고 사망 당일에는 성체를 영한 다음 두 수도자 팔에 의지해 양팔을 높이들고 기도하는 가운데 선채로 선종했다.

자신의 영혼을 하느님께 내어드리는 모습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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