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어머니가 본 리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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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이지연 [annasee] 2001-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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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브가와 다말은 처음 만났을 때 그 적극성 때문에 가까이 가기엔 너무먼 여인들이었다. 사실은 지금도 그렇다. 그 후로 많은 정보들이 내게 입력되고 그 속에서 하느님의 뜻을 이해하려고 노력해내고 나서야 좀 이해할 수 있었다.
성서 읽기가 "하나하나의 사실들에 집착하기보다는 그 속에 닮긴 진실"을 퍼내는 일이기에..
분명 리브가는 흔히들 여성하면 연상되는 대표적인 편견, 즉 "비이성적이고 지나치게 감정적이라는"을 뒤엎어버린 여성이라는 점에서는 멋진 여성이다.
처음엔 장자권을 야곱에게 가게하는데서 보여준 구체적이며 적극적인 그 모습이 그렇게까지 해야했을까 고개를 갸우뚱하게했다. 더구나 비록 지 맘대로 행동한 에사오가 좀 부족하기로서니(물론 하느님의 말씀- "형이 동생을 섬기게 될 것이다(창세 25,23)"-을 이은 거라면 더 이상 할 말은 없지만)... 더구나 에사오가 자기에게는 빌어줄 복이 하나도 남지 않았느냐며 애원하며 목 놓아 울 때는 리브가의 적극적 행동이 가져온, 에사오에게는 너무 냉정한 그 처사가 맘에 걸였다. 꼭 그렇게 물 흐르는 순리를 거슬러야 했는가 하면서…
그러나 어찌보면 자식들에 대한 "제대로 보기"를 통해 어머니가 갖기 힘든 "객관성"을 찾을 수 있었던 점은 같은 어머니로서 배울 점이다. 나는 자식에 대한 시선이 좀 객관적일 필요가 있다. 내 감정을 덮어 씌우는 적이 얼마나 많은가? 가끔은 자식에 대해 좀 냉정해질 필요도 있다. 그것이 길게는 그야말로 "서로를 살리는 길"이 될 것이기에.
한편 "야곱아, 네가 받을 저주는 내가 받으마(창세 27,13)"라는 리브가의 말을 통해 다행히 같은 어머니로써 공통 분모를 찾아낼 수 있었다.
어머니로서 나는 어떠한 가? 반쪽이 공부를 하느라 미국에서 잠시 생활한 적이 있었다. 그곳은 겨울에 엄청 추운데다 바람이 무지 불었고(그 도시의 별명이 windy city였다), 갑자기 바뀐 식생활과, 환경(내가 과욕을 부려서 우리말도 잘 못하는 아이를 한국아이들 없는 곳을 골라 유치원 가기전에 가는 유아원 같은 곳엘 보냈다.욕심에 눈이 먼 어리석은 엄마였다.)탓인지 아들 녀석이 심하지 않던 아토피성 피부증세가 악화되었었다. 밤만 되면 피가 나도록 긁어대는 통에 잠을 못 자기가 일쑤였다. 낮에는 그런대로 괜찮다가 밤만되면 긁어대다 잠시잠시 눈을 붙이는 아들을 보는 그 때 내 심정이 바로 그랬다. 내가 다 달게 받게 해달라고... 그 때 드렸던 기도를 통해 귀국 후 성당을 찾아가서 영세를 받았다.
초등학교 때 아들도 영세를 받게 했었어야 했는데… 지금 몹시 후회하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래도 녀석이 학교 특별활동부서에 카톨릭반을 신청해서 끈을 잇고 있다는 것인데.. 내게는 에사오와 야곱이 따로 없다. 에사오이기도하고 야곱이기도하다. 아들을 믿는다. 녀석을 보내주신 그 분을 믿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