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님! 신부님! 우리신부님!
- 생명의 학교인 가정 교회(송천오 안드레아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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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신천동성당 [shinchon] 2009-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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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학교인 가정교회
-송천오(안드레아)|주임신부- 가정은 생명과 사랑의 학교라고 한다. 특별히 신앙인의 가정은 하느님이 맺어주고 축성하신 부부의 인연으로 자녀를 출산하고 양육하는 생명의 전수와 사랑의 배움터이다. 사회적으로 볼 때도 가정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사회의 가장 기초 단위요 세포인 가정의 건강 정도에 따라 그 사회의 건강을 평가받을 수 있게 마련이다. 신앙인의 가정은 종말론적인 가정공동체라 불린다. 가정이 혈연중심으로 맺어졌다고는 하지만 장차 완성될 종말론적 공동체(하느님 나라)라는 깨달음을 갖는 것이 신앙인의 가정관인 것이다. 지금은 혈연중심의 가정을 이루지만 하느님 나라에서는 모두가 한 분 아버지 하느님을 모시는 가정공동체로서 형제요 자매라는 호칭의 사용을 통해 미리 그 표지를 나누며 사는 것이다. 그래서 신앙인의 가정은 이웃에 대해 열려있으며 모든 이들의 구원을 위한 생명과 사랑의 구체적인 표지인 것이다. 주님께서는 구원의 표징으로 신앙인 모두가 이미 이 지상에서 하느님 아버지를 가장으로 모시는 가정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시기 위해 나자렛에서 부모에게 순종하며 생활하셨다. 시메온과 한나라는 예언자를 통해 그분이 구체적으로 가정을 이루셨고 그 가정 안에서 구원을 준비하셨다는 사실을 보여준다(루카 2, 25-38). 우리 가정은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이루셨던 성가정의 모범을 따라 영원한 생명의 의미와 사랑의 계명을 담아내고 있는지 물어야한다. 이것은 신앙인의 가정이 구세사의 맥락 안에서 그 중요성을 얼마나 인식하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다. 즉 가정을 통한 구원의 현실화라는 진단에 대한 질문인 것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 안에서 가정은 급속한 변화를 이뤄왔다. 경제성장만을 고려한 국가의 가정정책은 너무도 빠르게 핵가정을 양산해냈다. 1973년에 입법 실시된‘모자보건법’이 대표적인 정책으로, 사실상 낙태를 허용함으로써 인간생명에 대한 결정적인 해악을 끼쳤던 것이다. “아들 딸 구별 말고 둘 만 낳아 잘 살자”라든가,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라는 구호는 아직도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 있다. 산아제한이라는 것이“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함에 비해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밖에는 증가하지 않는다.”는 공식으로 행해졌다는 데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인간의 생명을 빌미로 경제성장을 도모한다는 것은 그만큼 후유증도 만만치 않다. 현대의 가정이 안고 있는 많은 문제들을 일일이 언급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다분히 경제적인 아버지요 집안 살림지기인 어머니로써만 존재하는 부모는 아닌 것이다. 자녀들 역시 인격적 성장을 위한 교육보다는 입신양명을 위한 교육에 지쳐가고 있다. 사실 우리나라의 가족계획은 경제부흥이라는 과도기적인 정책수립 과정에서 하나의 희생적 버팀목이라는 차원에서 실시되어 왔다. 그러나 인구문제는 경제적 관점에서만 처리할 수 없다. 생명에 대한 침범이나 가정의 본연적인 신장을 억압하면서 경제성장을 이루겠다는 것은 인구조절이라는 방법의 정당성과 인간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근본적인 시각 차이를 드러낸 비정상적인 상황이다. 진정한 가족계획은 하느님의 방법으로 자녀수나 터울을 조절할 수 있어야 한다. 하느님의 뜻을 거슬러 인위적인 방법이나 경제적인 논리만으로 회피하고 죽이는 것(낙태)으로 해결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 사회는 가정적 측면에서 일종의 홍역을 치루고 있다고 보아도 지나치기 않을 것이다. 이혼율의 증가와 낙태의 범람, 인간복제와 대리모를 통한 출산 등은 참으로 우리 가정을 멍들게 하고 가정을 기능화 함으로써 인간의 근본적인 품위를 상실케 한다. 소비문화의 논리 역시 부부간의 신의를 과소평가함으로서 쉽사리 이혼에 이르게 하거나 계약 결혼이나 실험 결혼 등의 역기능을 자행한다. 자식이 있으면서도 상주 없이 장례를 치룬 망자가 있다 하니 이것은 과연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가? 가정은 인간의 품위를 담아야 하고 길러내야 하며 나누어야 하는 생명의 보고이다. 참된 가정을 꾸미고 책임질 십자가의 품위를 생각해야 한다. 특별히 신앙인의 가정은 하느님 나라와 연결되어 있다는 깨달음을 갖고 깊은 신뢰와 대화로 그 첫 단추를 끼워야 함은 당연할 것이다. 대가족제도를 고집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가정의 고유한 역할과 참 모습을 심사숙고해야 할 때가 왔다. 사회적인 노력과 함께 가족 성원들의 협력으로 이 세상에서는 아직 미완성 과정이랄 수 있는 가정을 하느님 나라라는 종말론적 가정에서 완성을 이룰 수 있도록 참된 생명과 사랑의 학교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한 가정 한 자녀 더 낳기’운동을 펼쳐야 하는 시대가 될 줄을 그 누가 알았을까!-본당소식지 5월'생명의 샘'11호 말씀초대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