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이웃, 누구의 이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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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하계동성당 [hagye] 2007-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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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웃, 누구의 이웃
꿈인 양 속절없는 짓일까, 바람인 양 흔적조차 없는 짓일까. 결핍의 충족을 갈망하는 것이 사랑의 속된 열정이기에 사랑은 늘 꿈같고 바람 같다. 그래서 사랑의 이 갈증, 사랑의 이 안타까움은 끝내 충족되지 못한 결핍의 또 다른 이름이다.
그렇다면 ‘영원한 생명’을 얻는 사랑은 어떤 것일까? 내 영혼 깊은 곳, 저 심연에서 님 향한 사랑의 격정이 폭포 되어 아우성치면서 쏟아지는 심정으로, 그렇게 내 바로 곁의 너를, 그리고 이웃부터 사랑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나는 1980년부터 뜻이 통하는 분들과 함께 이웃을 위한 의료봉사활동을 시작했다. 능력도 재력도 없는 상태였다. 그래서 “아무것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어떠한 경우에든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간구하며 여러분의 소원을 하느님께 아뢰십시오”(필리 4,6)라는 성구를 좌우명으로 삼고 활동하였다. 그러기를 12년 만에 단체의 명칭을 ‘동의난달’이라고 하였고, 다시 12년이 지나 이 단체를 법인으로 만들어 ‘모두가 하나에게, 하나가 모두에게’라는 표어를 내걸고 오늘도 활동하고 있다.
이 표어는 모두가 하나를 사랑하면 그 하나는 존귀해지고, 하나가 모두를 사랑하면 그 모두는 커진다는 뜻이며, 아울러 모두는 하나하나의 존엄성을 지켜 주고 하나하나는 모두와 조화를 이루며, 모두는 하나에게, 그리고 하나는 모두에게 감사하자는 뜻이다.
나는 이 단체를 통해 의료봉사를 하면서 때때로 ‘사랑과 영혼’이라는 영화를 생각한다. 죽은 자의 영혼과 산 자가 소통할 수 없는 안타까움에 눈물 나게 하는 영화다. 물론 교회의 가르침에는 맞지 않지만, 나는 이 영화를 통해 ‘통즉불통, 불통즉통(通卽不痛, 不通卽痛)’이라는 말을 마음에 새긴다. 통하면 아프지 않은데 안 통하면 영육이 온통 아프다는 말이다.
그래서 이웃의 고통을 덜어 주려면 의술에 앞서 소통이 필요하다. 그리고 원활한 소통을 위해서는 이웃을 나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채워도 언제까지나 다 채워지지 않는 결핍의 속성을 지닌 사랑의 갈망에 연연하지 말고, 내가 사랑과 위로를 받고 싶어 하듯이 이웃 또한 사랑과 위로가 절실할 터이니, 나로 하여 이웃이 사랑받고 위로받게 해야 한다.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라고 묻기 전에 내가 누구의 이웃이 되어야 하는가에 관심을 두어야 한다.
님이시여, 님께서는 나에게 “옳게 대답하였다” 하실 겁니다. 말이야 잘 하니까요. 그러니 한 말씀만 하시어 나를 다잡아 주소서.
“그렇게 하여라. 그러면 네가 살 것이다”라고.
● 신재용 프란치스코·해성한의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