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과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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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하계동성당 [hagye] 2007-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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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평화
오늘날처럼 평화에 대한 갈망이 강한 때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그 불이 이미 타올랐으면 얼마나 좋으랴?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루카 12,49.51)고 말씀하신다. 이라크, 중동, 아프가니스탄과 같이 세계 도처에서 빚어지는 비극적인 상황을 고려할 때에 예수님의 이런 말씀들은 우리의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종교가 세상에 증오와 파괴와 전쟁을 부추기고 있다는 비난을 떠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우리가 상상하듯이 언제나 ‘부드러운 남자’는 아니셨음이 분명하다. 이스라엘 지도자들의 위선과 계략에 굴하거나 불의와 타협하지 않으셨던 예수님은 자신의 운명을 예고하듯 “내가 받아야 할 세례가 있다”(루카 12,50)고 말씀하신다. 여기서 “세례”라는 말은 “불”이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 이 불은 모든 것을 파괴하는 증오의 불이 아니라, 거짓과 위선을 제거하여 올바르고 참된 것을 순수하게 구현하는 성령의 불이다. 사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지르고자 하는 불은 다른 무엇이 아니라, 당신 자신이시다. 우리는 이 불 앞에서 결단을 내려야 한다. “내 편에 서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다”(루카 11,23)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는가! “네가 이렇게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않고 차지도 않으니, 나는 너를 입에서 뱉어 버리겠다”(묵시 3,16)고도 하셨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에게 맞는 ‘적당한 온도’에 안주하는 사람이 아니라, 예수님처럼 성령의 불로 뜨겁게 타올라야 하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이 불은 아무런 식별 없이 무엇이나 받아들이지 않는다. 진리와 정의가 아닌 것은 이 불로 정화되어야 한다.
참된 평화는 결코 값싸게 얻어지지 않는다. 때로는 갈등을 치러야만 얻을 수 있는 가치이다. 그래서 피를 나눈 가족들 안에서도 갈등이 빚어질 수 있다고 복음은 말하고 있다(루카 12,52-53). 진리와 자유가 없는 평화, 정의와 인권이 무시되는 평화는 참된 평화가 아니다. 진정한 평화를 원하는 사람은 이를 위해 싸워야 하고 경우에 따라서 고통을 겪기도 한다. 예레미야 예언자라고 예루살렘의 파멸을 예언하고 싶었겠는가! 그는 주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전한 대가로 저수 동굴에 갇혀 죽음의 위험에 처하게 된다(예레 38,4-6.8-10).
적당히 얻어낸 평화는 묘지의 고요함에 불과하다. 참된 평화를 추구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올바른 가치들이 무시되는 곳에서 결코 갈등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이 당신의 십자가를 통해서 보여 주신 대로 하느님의 정의와 진리를 주장하면서도 견해를 달리하는 이들에게 폭력을 휘두르지 않는다. 참으로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은 그 사랑 때문에 고통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과 함께 사랑할 줄 알고 그리고 그 사랑 때문에 용서할 줄 알고 그에 따르는 고통을 감수할 수 있는 사람들만이 이 세상에 참된 평화를 줄 수 있다.
● 김영국 요셉 신부·서울대교구 청소년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