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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백) 2024년 11월 21일 (목)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가리키시며 이르셨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묵상
이웃이 부담스럽습니다. 하지만...

77 성일용 [iyseong] 2007-07-14

어린 시절 성탄절 날 성당에서 산타 선생님으로부터 선물보따리를 받고 신나게 집으로 오는 길에 거지 할아버지를 만난 일이 있었습니다. 지저분하고 무섭기도 해서 저는 피해 가는데, 저의 누나는 그 할아버지에게 자신의 과자를 나누어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날의 그 광경은 어른이 된 지금도 왠지 생생합니다. 그러나 저는 아직도 그런 분들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 같습니다. 성당에 있으면 그런 분들이 정기적으로 자주 찾아오는데 그들이 반갑지 만은 않습니다. 술 드시고 와서 항상 같은 소리를 하시는 그 분들을 보며 ‘돈을 많이 드리는 것이 이 분들을 도와주는 것은 아니야’ 하면서 제 자신을 합리화하기도 합니다. 또 지하철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분들을 보며 의지적으로 무관심하려고 하기도 합니다.

이런 우리들에게 오늘의 복음은 참으로 부담스럽게 다가옵니다. 오늘 복음에 의하면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예리고로 가다가 갑자기 강도를 만납니다. 그리고 강도 맞아 신음하는 사람 곁을 세 사람이 지나가게 되는데, 그 중 첫 번째 사람인 사제와 두 번째 사람인 레위 사람은 그냥 지나가고, 반면 사마리아 사람은 그에게 다가가 그의 치유를 도와줍니다.

왜 사제와 레위 사람은 그냥 지나갔을까요? 사제나 레위 사람은 하느님과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현재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었습니다. 또한 그들은 상처 입은 사람에게 다가가는 것이 귀찮고 두려웠을 것입니다. 반면 사마리아 사람 역시 자신의 할 일 즉 급한 볼일이 있는 여행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자신의 여행길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상처입고 신음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교우 여러분, 과연 우리는 오늘 복음에 나오는 사람 중 누구입니까? 내 갈 길이, 내 살 길이 급하고 중요한 사제나 레위 사람입니까? 아니면 주위의 상처 입은 사람에게 관심을 갖고 있는 사마리아 사람입니까? 더 나아가 우리는 레위 사람도, 사마리아 사람도 아니고, 내 의지하고는 상관없이 상처받고 신음하고 있는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따른 IMF’라는 강도로부터 두들겨 맞고 신음하고 있다면, ‘경기침체에 따른 경제적 어려움’이라는 상처로 고통 받고 있다면, 커 가는 자식들의 교육비와 생활비 때문에 한숨짓고 있다면 바로 우리 자신이 강도 받은 사람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 자신이 바로 치유 받아야 할 이웃일 수 있으며, 우리 자신이 바로 상처입고 신음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다가가야 할 이웃입니다. 우리는 결코 내 갈 길만이 중요한 사람일 수 없으며, 상처입고 신음하는 사람이 나와 무관할 수 없습니다.

교우 여러분, 오늘 우리가 해야 하는, 가야 하는 나만의 길도 중요하지만 우리는 오늘 “신음하고 있는 이웃에게 가서 사랑을 베풀라”는 주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 말씀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의 마음 안으로, 우리 주위 사람들의 상처와 고통 안으로 다가가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우리들과 늘 함께 해 주시는 하느님께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 제 자신의 신음소리를 제 스스로 외면하는 일이 없게 하여 주소서. 제 주위 사람들의 가슴 아파하는 소리를 외면하는 일이 없게 하여 주소서. 또 무엇보다 이런 저희와 늘 함께 하시는 하느님 당신을 외면하는 일이 없게 하소서. 아멘.”
청주교구 민광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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