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형자매 여러분 한 주간 동안 안녕하셨습니까?
찬미예수 알렐루야!
여러분 잘 아시는 바와 같이 오늘은 삼위일체 대축일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 삼위께서 각각 위는 다르시지만 한 본체, 같은 본성으로서
한 하느님이시라는 신비를 오늘 기리는 날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수리적으로 잘 이해가 되진 않지만
믿음으로서 받아들이고 기도할 때마다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영광을 돌려 드리며 찬양 드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부 성자 성령이 따로 따로 계신데 어떻게 본성으로 한 하느님,
동일한 하느님이시고 영원한 한 하느님이신지 수리적으로는 생각할 수 없지만
우리 마음속에 바로 세 위가 한 하느님이시란 것을 믿음으로 기억하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공생활 시작하기 전에 요르단 강에서
물로 세례를 받으실 때 성령께서 비둘기 모양으로 내려오시고 하늘에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라는 삼위일체 현존의
일치를 본적이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창조주이신 성부께서 당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당신을 드러내시고 이 거룩한 진리를 영원히 되풀이하신
성령께서 그분들의 관계와 양식을 통해서 영원히 지속된다는 것을 믿고 있으며
그 믿음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알아들을 수 있는 것입니다.
아우구스 성인도 이 삼위일체교리의 신비에 대해서 잘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일화가 있지 않습니까? 아우구스 성인이 삼위일체 교리를 이해하기 위해서
에집트의 알랙산드리아 해변을 걷고 있을 때 어떤 아이가 해변에서 지중해 바닷물을
큰 조개껍질로 퍼서 계속해서 작은 구멍에 넣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삼위일체 교리를 이해하기 위해서 계속 해변을 왔다 갔다 하던 아우구스 성인은
하도 이상해서 그 소년에게 “얘야, 너는 무엇 때문에 이 넓은 바닷물을 그
큰 조개껍질로 퍼서 이 모래구멍에 넣는 것이냐?” 라고 물었을 때 그 소년의 말이
“당신이 생각하는 삼위일체 교리는 내가 이 지중해 바닷물을 이 조개껍질로
다 퍼서 넣어도 당신은 깨달을 수 없을 것입니다. “ 하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 말의 뜻은 아오스딩 성인이 생각하고 있는 수리적인 생각으로는 삼위일체교리의
신비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삼위일체 교리의 신비를 어떤 수리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당신의 관계 안에서, 존재양식 안에서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무에는 뿌리와 줄기와 가지가 있습니다. 뿌리 없는 줄기는 있을 수 없고
줄기 없는 가지는 있을 수 없습니다. 제대위의 촛불을 보면 촛불에는 몸체가 있고
심지가 있고 불꽃이 함께 있습니다. 우리는 사회적인 관계 안에서 촛불을 설명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부모님과 우리와 우리의 자식들이 서로 관계 안에서 인간 세대가 이어가듯이
하느님의 놀라운 신비는 성부님이신 하느님의 모든 모습과 성부의 말씀을 그대로
보여주시는 성자이신 예수그리스도와 성부와 성자의 모든 창조주의 신비를 영원히
지속하시는 성령이 함께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삼위일체 교리를 내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창조주이신 하느님을 믿고 창조주 하느님을 드러내시고
영원한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며 영원하신 성부와 성자의 영원한 말씀을
사랑으로 영원히 드러내시는 진리의 영을 믿습니다. 예수님은 공생활 중에
신비 안에서 늘 성령과 함께 하셨고 성령과 함께 하신 하느님께 그 영광을
돌려드렸습니다. 바로 관계적인 당신의 삼위일체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우리도 매일 매일 살아가면서 기도할 때마다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신비를
고백하고 그분의 영광을 드러내며 영원하시고 전능하신 하느님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이름으로 그분을 통해서 기도할 때,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받을 때, 주님으로부터 치유를 받을 때, 주님의 놀라운 기적이 우리 안에서
이루어지고 권능이 드러날 때 입니다.
다시한번 믿음을 통해서 삼위일체신비를 우리 마음속에 깊이 받아드리고
그분의 영광을 통해서 기도 하시는 주님의 제자들이 되시고 자녀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이재을 사도요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