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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떠나야 교회가 산다|(퍼옴)

180 김동호 [dh58k] 2011-07-16

 
반(反) 뉴에이지 운동의 함정
[교회를 떠나야 교회가 산다-18]
 
2011년 07월 12일 (화) 13:41:01 한상봉 isu@catholicnews.co.kr
 

예전에 부산에 갔다가 어느 수녀님에게 이런 이야길 들었다. 한동안 차동엽 신부님이 인기라던데 요즘은 좀 시들한 것 같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수도장상연합회에서도 그분을 모셔다가 강연을 들었고, 다른 수도회나 교구, 본당에서도 신부님 초청강연이 잦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그분이 설파하시는 '무지개원리'가 상업주의 냄새가 물씬하고, 때아닌 성공주의를 전도하는 바람에 특히 수도자들이 기피하는 인물 중 하나가 되었다는 것이다.  

차동엽 신부님은 처음에는 '신영성운동'에 대한 탄핵운동을 벌이다가, 성공주의 유명강사로 뛰다가, 최근에 성령세미나 강사로도 인기를 올리고 있다. 한때 서울에서 열린 전국성령대회에서 박홍신부, 오웅진 신부와 더불어 삼대 강사로 나서 '인기몰이'를 한 적이 있다. 무지개 원리와 성령운동을 절묘하게 결합시킨 탓이다. '성령충만하면 만사형통한다'는 것이겠다. 예수는 성령충만해도 십자가에서 못박혀 돌아가실 수밖에 없었음을 기억하는 나로선 참 역설적이란 느낌이 들었다.

차동엽 신부님은 '신영성운동'이라는 말이 자칫 ‘새로운’ 영성운동이라는 느낌을 줄 수 있으므로, 그 운동이 건강한 게 아니라는 느낌을 주기 위해서라도 ‘신흥영성운동’이라고 불러야 옳다고 말한 바 있다. 신흥종교는 사이비종교라는 도식이 은연중에 자리잡고 있는 분위기 속에서 상당히 사목적-정치적 의미를 지닌 발언임에 틀림없다.

신부님이 신흥영성운동이라고 딱지를 붙인 것은 다름 아닌 ‘뉴에이지운동’이라는 흐름인데, 뉴에이지 운동이 사회적으로 확산되면서, 교회 안에서도 유행이 되는 것은 교회의 골간을 흔드는 심각한 도전이라는 위기의식이 바탕에 깔려 있다. 그런데 뉴에이지 운동에 대한 일방적이고 무리한 공격은, 마치 대야 속의 물이 더러워졌다고 그 안에 있는 아이까지 내다 버리는 꼴이 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신부님은 여러 잡지를 통해서, 또는 여러가지 책을 출간함으로써 이런 반(反) 뉴에이지 운동의 설교자로 나선지 오래되었다. 이단적 사상에 대하여 그리스도교 사상을 적극 옹호하는 것은 신자로서, 사목자로서 당연한 일이라고 여기더라도, 가끔 그분의 행보가 지나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러나 그분이 뉴에이지로 분류하고 있는 사상/종교/철학/문화에는 우리 민족의 고유한 종교적 정서와 탁월한 현자들의 지혜마저 포함하고 있기에 그저 박수만 치고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가톨릭에 입교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느 소설가의 집에 갔더니, 그분이 쓰신 예비자 교리서 같은 책이 있기에 잠시 읽어보았는데, 그 분의 입장에 선다면 불교랑 아예 인연을 끊어야겠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분은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참 자기를 찾으려는 명상에 대하여 비판적으로 보고 있는데, 그렇게 쓸데없이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성서만 열심히 읽으면 충분하다는 논조였다. 진리는 우리 안에 있는 게 아니라 밖에 있다는 것이다. 우리 밖에 엄연히 존재하는 길이며 진리이며 생명이신 예수님만 제대로 읽으면 족하다는 것이다.

그분의 논지대로라면, 신자들에게도 인기를 얻고 있는 달라이 라마와 틱낫한 스님 같은 분의 생각을 듣는 것마저 불경스럽다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 그러나 문제는 교리적 차원이나 신학적 차원에 머물지 않는다. 당장에 타종교와 관계를 맺고 대화를 꾀하려는 모든 시도가 위축될 위험이 있다.

어느 수녀님은 평소 스님들과 친분을 갖고 자주 절에 찾아가 방담을 나누곤 했는데, 신부님 강의를 들었던 다른 수녀님들에게서 공박을 당한 적이 있다고 전해주었다. “그것 봐. 쓸데없이 스님들이나 만나고 다니지 말고 수녀 생활이나 열심히 해!”하는 식이다. 예전에는 사순절이 끝나고 엠마오 휴가를 갈 때 수녀님들이 산사(山寺)를 찾아가 차도 한 잔 얻어마시곤 했는데, 이젠 마음 편히 절에도 가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아마 이런 분위기가 더 확산되면 가톨릭계 학교에서는 산으로 소풍을 가도 절에는 들르지 못하게 될 공산이 높다. 지역 내 모든 절간이 무너지라고 빌고, 부처상에 십자로 페인트칠을 하곤 해서 문제를 일으키던 개신교 근본주의자들처럼 가톨릭교회도 그렇게 호교론적 근본주의로 가는 것일까, 걱정들이 많다.

예전엔 불교와 가톨릭이 비교적 친근하다고 해서 호평을 받았는데, 이젠 그 말이 불명예가 되는 것일까? 차동엽 신부님의 말마따나 한국사회에서 김수환 추기경보다 법정 스님의 인기가 더 높아지는 게 가장 큰 문제라면, 그건 우리의 영성을 되짚어볼 문제이지 불교를 공박한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마치 봐줬더니 대든다는 식으로 불교를 바라보아서는 안 된다.

우리 교회가 먼저 고민해야 되는 것은 천성산과 4대강을 목숨 걸고 지키려 했던 지율 스님처럼 순수한 열정이다. 몇 년 째 생명평화탁발순례를 떠났던 도법 스님과 같이 초록빛 행성 지구의 미물들에게까지 성심으로 마음쓰는 자비행이다. 시대의 징표를 읽어내고 응답하는 예언자적인 진지한 신앙이다. 일례로 4대강을 살리자고 삼보일배를 행했던 문규현 신부님이 수경스님과 맺은 각별한 관계는 세간이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진리는 종파를 넘어 일치하는 힘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종파와 이념을 넘어 '인간'과 '세상' 안에서 그분의 현존을 느껴야 하는 그리스도인이다. 

한상봉/가톨릭뉴스 지금여기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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