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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6월 19일 오늘의 묵상 (옮김)

124 정순옥 [mqwert] 2014-06-19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매일 미사책  오늘의 묵상  옮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주님의 기도’를 여는 이 구절을 거듭 되뇌며 이로 말미암아 어떠한 새로운 세상이 우리에게 다가왔는지를 생각해 봅니다. 우리는 ‘주님의 기도’를 바치며 냉혹한 이 세상의 한복판에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것을 믿습니다. 갈라지고 황폐해진 우리의 마음이지만 이제 주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은총의 세계에 눈을 뜹니다.


그러나 이 은총의 세계와 질서는 우리의 실존을 망각하라거나 현실에서 도피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허황된 욕심과 자만을 버리고 겸손하게 ‘오늘의 빵’을 하느님 아버지께 매일 청합니다. 이것이 하늘의 아버지를 올바로 맞이하는 태도입니다. 다른 이를 용서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나 아버지께서 우리를 용서하시는 은총을 알고 믿기에 그리하도록 애씁니다. 이처럼 주님의 기도를 바치면서, 우리는 하늘과 은총의 질서를 통하여 이 세상을 새롭게 대합니다.


20세기 프랑스의 전설적 여인 ‘베유’라는 철학자가 있습니다. 그녀가 현대의 『팡세』라 불릴 만한 자신의 책 『중력과 은총』에서 ‘중력’과 ‘은총’이라는 서로 다른 질서의 충돌에 대하여 통찰한 것은, 주님의 기도를 통하여 우리가 들어선 새로운 세계를 더욱 깊이 생각하게 도와줍니다.


베유에 따르면, 중력은 맹목적이고 ‘저급한’ 자기애가 ‘우리가 아는’ 세상을 지배하는 힘이라는 것을 드러내는 상징입니다. 우리가 그러한 힘에 굴복하는 것은 물질세계가 중력에 영향을 받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합니다. “두통에 시달리다가 발작이 심해질 때면 나는 다른 사람의 이마에 같은 곳을 때려서 아프게 하고 싶은 강렬한 욕망에 사로잡힌다. 이와 유사한 욕망은 인간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다. 그런 상태에서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남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해 버린 적이 있다. 중력에 복종한 것이리라.”


그래서 밑으로 끌어 내리는 중력을 경멸하고 이에 저항하는 사람은 상승의 움직임을 갈구하며 날개를 달고자 할 것입니다. 이 날개는 고고한 탈속의 삶을 상징합니다. 그러나 베유는 다른 가능성을 생각합니다. ‘중력과 관계없는 움직임을 통한 하강’입니다. 이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에 매혹된 그녀에게는 필연적인 귀결이었고, 또한 그분의 은총은 중력에서 자유로운 ‘하강 활동의 유일한 법칙’이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기도에서 철학자 베유가 필사적으로 모색했던 진정한 초월의 길을 발견합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자녀인 우리는 아버지께 세상‘에서’ 우리를 구원해 주십사고 기도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녀다운 사랑의 순종을 통해 이 세상을 착취와 대결의 장이 아니라 서로 용서하며 평화와 선을 이루는 자리로 만날 수 있기를 청합니다. 주님의 은총으로 우리가 이 세상에서 더 깊이 낮아지도록 하며, 이 세상 ‘안’에서 우리를 구원해 주시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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