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은 봄과 함께 오고,
영원한 생명은 예수님의 부활과 함께 왔습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말씀하신 대로 그분께서는 되살아나셨다.”
(마태 28,5-6)
사랑하는 교형자매 여러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죽음의 굴레를 깨뜨려주시고, 새 생명을 선물해 주십니다. 새로운 희망을 선사해 주십니다. 주님 부활의 은총과 생명 그리고 새 희망이 온 누리에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전 세계가 코로나 감염증의 긴 터널을 힘겹게 통과하는 동안, 지구 곳곳에서는 많은 사건, 사고들이 일어났습니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고, 지난 2월에는 수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튀르키예와 시리아 대지진까지 있었습니다. 더하여 점증하는 기후 위기는 지구 어느 편 이야기가 아니라 전 지구적, 세계 공통의 압도적인 위기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런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 세상살이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한겨울의 두꺼운 얼음 밑에서 동토를 뚫고 생명의 새싹이 돋아나듯, 죽음의 굴레를 깨뜨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생명의 빛, 희망의 빛을 새롭게 우리에게 비추어 주십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는 다양성의 시대입니다. MZ세대라고 불리는 젊은 세대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에 개별화와 개인화의 추세가 대세를 이루는 듯한 느낌마저 듭니다. 한편으로 볼 때, 한 사람 한 사람 개인이 우주의 중심이고, 자기 삶의 주인공이라는 인식은 맞습니다. 세계사의 흐름도 큰 틀에서는 절대왕정같이 소수의 권력자에게 집중되어 있던 ‘주인공으로서의 삶’이 모든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공정하고 평등하게 나눠지는 과정을 향하여 역사는 흘러왔고, 또 그런 방향으로 흘러갈 것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 각자가 주인공인 이 세상 삶에서 서로 다른 각자를 상호 존중하기보다는 분자화, 고립화로 가는 듯해서 안타깝습니다. 이렇게 분자화된 개인들을 묶어주는 연결점은, 불행히도, ‘죽음’이라는 공통점뿐인 듯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라는 ‘죽음의 끈’이 모든 인간을 하나의 공통점으로 연결하는 유일한 끈인 듯합니다.
여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개별화된 인간 – 죽음만이 우리 개개인을 묶어주는 유일한 공통점이었던 개별화된 인간을 넘어, 예수님의 부활 사건이 우리 인간에게 죽음 대신 영원한 생명이라는 새로운 연결점을 주신 것입니다. ‘죽음’이라는 끈으로 묶인 채 저마다 제 잘났다고 아우성치며 ‘밟고 올라서서 높은 곳을 향하겠다.’는 우리 각자에게 죽음의 끈을 끊어 주시고, 우리 모두의 시원(始原)인 생명, 영원한 생명을 향한 존재로 만들어 주신 사건이 예수님의 부활 사건인 것입니다. 이 어찌 놀라운 사건이 아니겠습니까 이 어찌 놀라운 신비가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예수님의 부활 사건은 이천 년 전에 박제된 고고학이 아니라, 긴 어둠의 터널을 힘들게 걸으며 죽음이라는 공통점만 갖고 있던 개별화된 우리 인간을 ‘새 생명’으로 엮어주신 ‘지금, 여기서’ ‘나를 위한 사건, 우리 모두를 위한 사건, 우리 모두를 하나로 연대하게 해 주는 사건, 대(大)생명 사건’인 것입니다. 우리 인간의 삶은 재물의 많고 적음을 넘어서, 정치적 당파를 넘어서, 국경을 넘어서, 언어를 넘어서, 문화를 넘어서, 종교를 넘어서, 인류 모두가 하느님의 피조물로서 영원한 생명을 향해, 참진리를 향해, 참사랑을 향해 나아가는 전(全) 인류적 시노드(‘함께 가는 길’)인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빈 무덤을 찾아온 여인들에게 천사가 말합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말씀하신 대로 그분께서는 되살아나셨다.”(마태 28,5-6) 코로나 감염증은 끝나가지만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이 펼쳐지고 있는 우리네 살림살이에 새로운 희망을 길어냅시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남으로써!
성당의 제대 위에서 거행되는 미사성제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는 자리입니다. 인류에게 드리워진 ‘죽음의 끈’을 끊어주시고, ‘생명’으로 묶어주신 부활하신 예수님을 새롭게 만나는 자리입니다. 특별히 미사성제 안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깊이 만나고, 그분께서 주시는 생명의 힘으로 두려움을 떨치고 새롭게 나아갑시다. 우리 주변에 나보다 더 힘든 이웃이 있음에 눈뜨고 따뜻한 손길을 나누며 다 함께 걸어갈 수 있는 작은 무언가를 시작해 봅시다. 생명은 봄과 함께 오고, 영원한 생명은 예수님의 부활과 함께 왔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부활의 새 생명과 새 빛이 어려움 중에 계신 모든 분들, 특별히 북녘 동포들에게도 널리 비추고,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의 모든 피해자들과 튀르키예와 시리아 지진 피해자들에게도 따뜻이 비치기를 기도합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장•평양교구장 서리
정순택 베드로 대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