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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김윤선 [qhfkRhc] 2000-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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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자: 정혜란(yoanna) 박신부님을 기억하는 분들에게(많이읽어주세요)
게시일: 2000-03-02 14:08:32
본문크기: 14 K bytes 번호: 8963 조회/추천: 145/12
주제어:
♠박은종 신부님을 "기억하는" 분들께
저는 박은종 신부님을 존경하고 기억하는 이들 중의 하나입니다.
제가 신부님을 알게 된 것은 그 분이 수유동 성당 신학생이었을 때였죠.
그 시절, 저희 성당에는 세 명의 신학생이 계셨는 데, 훤칠하고 잘 생긴 두 신학생사이에 낀 꼬맹이 신학생이 박은종 신부님 그러니까 요왕 학사님이셨습니다.
오히려 첫 눈에 띄이지 않는 점이 눈에 띄이는 역설적 현상이 존재하듯, 그렇듯, 뿔테안경을 쓴 자그마한 그 분의 외양은 무심한 시선에는 포착되지 않지만, 좀 더 세심한 눈길에는 이내 그 두꺼운 안경 너머의 예쁘고 맑은 눈이, 좀 더 주의깊은 귓가엔, 뭔가 수줍은 것 같고 소탈한 음성과 말투의 독특함을 포착할 수 있을 겁니다.
고등학생이였던 저와 제 친구는 사촌오빠한테 성문종합영어를 배우고 있었고, 그 때 오빠는 신부님과도 함께 우리보다 더 수준높은(?) 영어를 함께 공부하는 중이어서 저희와도 잘 알게 되었지요. 지금도 우이동 어느 분식집에서 신부님이 떡복기를 사주셔서 함께 먹었던 기억이 아련하게 떠올라 저도 모르게 빙그레 웃습니다.
신부님만큼이나 키가 큰 저희들을 항상 "꼬마들","짱구"라고 부르시던 그 분은 어려운 이들에 대한 인정이 남달랐고, 늘 세상일을 생각했으며 생각이 깊으셨습니다. 그리고 어린 저희의 눈에도 그 분은 참으로 고독한 분으로 보였습니다. 그 고독한 일면이 여전히 제게 심상하게 지나쳐지지 않는 것은, 그 분은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결단조차 의연히 고독하게 단행했을 거라고 짐작하면서도 그 가슴 깊은 곳에는 남에게 들킬까 숨겨둔 설움이 깊겠지 싶어 생각하면 너무 불쌍하고 자책어린 서글픔이 느껴져서 그런가 봅니다.
결국, 고독한 신부님은 이제 우리들의 무심함 가운데 죽어 그리고도 한 달이나 지나 싸늘한 주검이 되어 돌아오셨습니다. 그 분은 우리들 가운데서 잠시동안 살면서 얼마간 희망을 불러일으켜 주었었는데, 그리고 그 분을 알고 있는 우리들은 그분을 존경했었는데, 그 분은 고독하게 죽었습니다. 그리하여 그 분을 알 던 수 많은 사람들이 애도를 표하기 위해 와서 그 분의 영정 앞에 무릎을 꿇고 연도를 바치고 기도를 드리고 미사를 참례했습니다. 그리고 장례미사 때는 그 분이 죽는 그 순간과는 너무도 판이하게 수 백명의 사람들이 떼지어 모여들었습니다. 그 중의 하나였던 저는 그 때 이상스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사람들이 다 신부님의 친구들이란 말인가? 그들의 굳은 표정들, 눈물, 소리죽인 흐느낌, 충혈된 엄숙한 수많은 눈들. 그리고 성체를 모시기 위해 나가는 사람들의 행렬을 내려다 보며 저는 무언가 허전한 느낌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나와 이들은 무엇 때문에 이 곳에 나온 것일까? 단지 신부님과 아는 사이라서? 아니면 젊은 한 사제의 죽음이 너무나도 안타까워서? 신부님의 마지막이라도 외롭지 않게 보내드리기 위해서? 이것이 하느님 안에서의 공동체적 사랑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러나 저는 이 모두가 허망하게 느껴지면서 울컥 분노가 치밀어올랐습니다. 이 분을 위해 수 백명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니! 교회의 높은 어르신들, 선배, 동기, 후배 신부님들, 다들 무엇 때문에 뭘 바라고 왔을까? 그리고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왜 여기 모인 우리들은 이 모든 것을 막을 수 있었을 때 나타나지 않았던가? 이 모든 것들이 일어나지 않게 애쓰지 않았을까? 그리곤 자꾸만 가정법 과거완료형으로 생각이 치달았습니다. 신부님이 이 사람들을 한시간씩만 만나서 위로의 말을 나눌 수 만 있었더라도, 이렇게 그 분의 존재가 이 세상으로부터 증발해버리지 않았을텐데. . . . . .
신부님을 기억하는 우리는 신부님의 짧고도 쓰라린 생애의 흔적이 들어있는 깜깜하고 비좁은 관을 깊고 어두운 땅 속에 안치하는 것도 보았습니다. 어느 순간이 지나자 순식간에 구덩이는 메워졌고 우리는 그 곳을 떠나왔습니다. 신부님을 땅 속에 남겨둔 채. 아마 지금쯤이면 신부님의 육체는 땅 속에서 싸늘한 뼈가 되어있을 겁니다.
이제 그 뿐인가. 언젠가 죽을 목숨, 그것은 이미 날 때부터 예정되어 있는 종말, 두 번은 없을 일, 그 분을 위해 애도하며 기도했고, 사제묘지에 안치했고, 49제도 치렀고, 이제 그 분을 기억하는 우리가 해야 할 숙제는 다 끝났는가? 아마 그 분은 우리의 진심어린 기도로 하늘나라에서 편안히 계실테니까, 이제는 그분에 관한 생각을 모두 다 잊고, 그렇지 않아도 만만치 않은 세상, 차디찬 겨울, 따근한 차나 마시며, 얼큰한 찌개와 함께 소주나 들이키며, 재미있는 우스갯소리를 들으며, 기분전환겸 미장원에서 파마나 하며 박신부님만 생각하면 느껴지는 깝깝함과 우울함을 털어버리고 저마다의 밝은 미래를 향해 딴전 피우지 말고 질주해야 하는가?
사실, 저의 마음은 또한 여러분의 마음도 어둡고 무거울 겁니다. 존경하는 한 고결한 사제를 잃었다는 고통과 상실감을 넘어서 우리에게는 그 분의 죽음으로 인해 생각해야 할 일들이 잔뜩 쌓여 있습니다. 올곧게 예수님을 누구보다 성실하게 따르려했던 한 젊은 사제가 이 세상의 교회에서 사제로서의 직을 거부하고 누구보다 소중했을 자신의 삶을 작은 항변조차 남기지 않고 끝장을 냈습니다. 우리는 그 분을 알았다고 하지만 명민하지 못해서인지 어느 누구도 그 분이 왜 그런 선택을 하셨는지 그 깊은 갈등의 진폭을 공유할 수 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것도 그 분의 팔자라고,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사람이 있고 여러 유형의 삶이 있으니 세상이 그 분에게 던져 버린 힘겨움과 멍에는 그 분만의 것으로 돌려버리고 우리는 "삶이 우리를 속일지라도" 세상이 그 분에게 지워버린 삶의 무게보다는 가벼운 우리 삶의 무게를 그래도 이 정도라서 다행이라고 자위하면서 지금까지의 우리의 안일한 삶의 궤도를 이탈하지 않고 묵묵히 살아야 하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특히 그 분의 자살을 마치 금단의 패악을 저지른 것처럼 마땅찮은 시선으로 삐딱하게 보면서 그 분의 상처를 그냥 덮어버리는 것은 그 분의 시신을 어두운 땅 속에 묻어버린 것과 함께 우리의 양심도, 정의도, 공동체적 사랑도 모두 모두 저 깊숙히 묻어버리고 덮어버리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그건 지금까지 우리가 신부님을 안다고 하면서도 그 분의 받은 상처의 깊이를 알 수 없었던 것처럼 "눈 뜬 장님"이 되는 것입니다.
신부님의 죽음이후, 저는 절대로 전 같지 않을 것이고 전처럼 생각하지도 않을 것 같습니다.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이전의 나로 눈뜬 장님의 나로 되돌아올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이제 신부님의 죽음과 함께 저의 환상과 거품으로 안일했던 삶의 일부도 아울러 죽어 버렸으면 합니다. 신부님을 기억하는 우리는 신부님을 위해서 단지 슬픔어린 눈물만을 흘려선 안됩니다. 그 눈물은 우리의 상실감을 메꾸지 못한 채, 진실에 대한 우리의 눈을 더 흐리게 할 뿐입니다. 그 분을 기억하는 우리의 가슴 속엔 "분노에 찬 슬픔"이 자리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우리가 존경했던 신부님처럼 정의와 사랑의 투사로 다시 살아날 수 있습니다. 저도 투사로서 잔다르크 요안나로 다시 태어나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무슨 까닭으로 신부님이 지금의 교회에서의 사제로서의 길을 접고 이 세상에서의 삶도 끝장냈는지 그 분의 사제적 실존의 근원에 뚫린 그 깊숙한 구멍을 헤집어 봐야 겠습니다. 그 구멍밖을 막고 있는 구구한 변명과 허위의 각질을 헤치고 들어가 그 속에 있을 그 분의 상처의 속살의 진위를 담대하고 끈기있게 알아내야 겠습니다. 따라서 신부님을 기억하는 우리는 그 분의 명예를 회복하는 차원에서라도 우리 어린양을 이끄시는 목자이신 교회의 책임을 진 어른분들게 다음과 같은 요구를 강력하게 촉구해야 합니다.
첫째, 저 어둠에 묻혀 있는 삼각지 성당에서 일어났 던 일에 대한 진상규명.
그리고 알아 낸 사실에 대해 하나하나 시시비비를 가려야 합니다.
그래야 삼각지라는 뭉뚱거린 이름하에 괜시리 죄인인양 상처받는 교우들도
생기지 않을 겁니다.
둘째, 신부님의 죽음의 진실을 공적으로 공개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 아픔을 우리 모두가 함께 나누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교회가 진정 쇄신할 수 있습니다. 더 이상 우리는 우리의 삶이 몸답고 있는 그 공간을 바로 보지 못하고 눈뜬 장님으로 살게 해서는 안됩니다.
셋째, 존경하는 목자를 잃어버린 상심감으로 아파하는 이들에 대한 위로의 작업이 있어야 합니다.
특히 소중한 자식을 봉헌하신 칠십이 넘으신 부모님들의 상실감, 교회에 대한 마음에 풀리지 않는 서운함은 얼마나 깊으실까를 배려해야 합니다.
넷째, 신부님을 기억하는 다른 작업들도 함께 이루어져야 합니다.
예를 들어, 유고집 출간, 100일 탈상, 기일 기억하는 일 등
저는 지금의 상황에 대해 대들고 투정하며 불평하는 것이 아닙니다. 간절한 마음에서 간청하는 것입니다. 시련에 처한 사람은 하느님께 더욱 가까이 갈 수 있고 또는 멀리 떠날 수도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신앙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하느님께 향하는 길, 순례의 길을 나아가는 것일 겁니다. 그 길은 미완성인 우리 자신을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구원의 길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무엇인가 되어가는 과정 속에 있는 존재입니다. 아직 완성되지는 않았지만 더 나은 상태를 향해. 그리고 그 구원은 현재 지금 우리가 몸담고 있는 이 현실에서 의미가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그 길을 간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신앙의 핵심은 실천에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의 실천이 우리 신앙의 표현입니다. 하느님의 정의와 사랑을 위한 우리 모두의 올곧은 실천이 우리가 이루어가는 교회를 "하늘과 땅이 맟닿은"세계로 이끌 수 있습니다. 그래야 교회는 우리에게 하느님이 주신 선한 의지와 지성, 그리고 우리의 심장에서 울리는 그 소리를 "담아내어 되비추는 하늘이자 우리의 때묻은 신발을 벗게 하는 거룩한 땅"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겁니다.
신부님을 알던 우리들의 기억 속에서 그 분은 점점 희미해져 버리고 말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분이 살았을 때 우리들에게 남긴 얼룩은 지워버리지 말고 다른 천으로 덮어버리지 말고 조촐히 간직하며 살아가야 겠습니다.
우리 함께 이렇게 기도드리죠.
" 우리에게 새로움을 주십시오. 하느님, 우리의 죽은 나무에서 여린 새순을 밀어 올리십시오. 죽은 자와 말하게 하십시오."
부족한 소자의 글을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저와 뜻을 같이 하신 분들은 추천해주시고 답장 주세요.
"박은종신부님을 기억하는 모임"을 만들고자 합니다.
함께 하시고 싶으신 분들은 제게 간단한 자기 소개와 연락처를 보내주십시오.
그리고 박은종 신부님을 기억하시는 분들, 저희와 함께 하시고 싶으신 분들은
오늘부터 54일 묵주기도를 함께 시작합시다.
이 기간동안 하느님의 자비하심을 빌며, 저희의 간구가 교회의 사랑 안에서 현실화될 수 있기를 청합시다. 그래서, 신부님의 100일 탈상 때에는 진정 기쁜 마음으로 그분을 기억하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기를 그 기도의 지향으로 함께 합시다.
정혜란 yoanna@catholic.or.kr
김윤선 qhfkrhc@catholic.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