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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순례 후기 나눔터
[순례후기]팔레스티나 성지 순례(2006. 6. 21.)-05일차

19 가톨릭교리신학원 [cci] 2006-10-24

닷새 : 6월 21일(페트라→마케루스→메드바→느보산→암만)


페트라의 아침. 제법 서늘하다. 일교차가 심하다.


간단히 아침을 먹고 세 개의 달걀 모양 지붕을 가진 모세의 샘에 내려가 본다. 기념품 가게인 듯한 작은 건물 안으로 들어가 보니, 여전히 맑은 물이 솟는 샘이 있다. 그들은 또다시 불평하고, 모세는 주님의 명령대로 지팡이를 내리쳐 물을 솟게 한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이 보는 앞에서 주님의 거룩함을 드러내지 않아 아론과 모세는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한다.

 

 

모세의 우물
(바로 그 므리바의 물이 아직도 솟고 있다.)

 

 

페트라

 

점점 뜨거워지는 햇빛 속에 나바테아 족의 역사가 배어 있는 페트라로 간다. 영화 인디에나 존스의 촬영지로 더 유명한 협곡. 사람들의 감탄사만 없다면 고요히 아주 긴 숨소리도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기원전 1400년 전에는 모압과 에돔의 접경으로 ‘에돔의 셀라’라고 불렸으니, 3500년의 세월이 켜켜이 배어 있는 곳이다. 암벽을 파서 극장과 목욕탕 등의 시설을 만들었던 천연 도시가 이제는 낡은 그림처럼 버티고 있을 뿐, 인간이 자연과 신들의 세계와 보다 가깝던 세월의 흔적들만 곳곳에 새겨져 있다.


붉은 사암 협곡을 따라 두려운 마음으로 걷다보니 헬레니즘 양식 건물이 웅장한 위용을 드러내고 다가온다. 이집트 여신상과 페르시아 왕관 등 여러 문명의 영향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이 건물은 로마에 의해 제라쉬와 다마스쿠스를 잇는 교역의 거점도시였던 페트라의 번성을 짐작하게 한다.

 

 

 

 

페트라

오고가는 길의 작은 서낭당과 위용을 드러낸 협곡. 좁고 깊은 골짜기를 따라 가다 느닷없이 만나게 되는 아름다운 건물은 지붕에 보물이 있다는 전설로 아랍인들이 알카즈네(보물)라고 부르는 장제전이다.

 

잠시 고대로 돌아간 듯한 기분을 떨치며 다시 왕의 대로를 따라 광야를 달린다. 문득 가이드가 모두 눈을 감으란다. 잠시 후에 눈을 뜨니, 끝이 없을 것 같던 광야 저 아래로 엄청난 골짜기가 입을 벌리고 드러누워 있다. 잠시 포효를 멎춘 맹수처럼. 아르논 골짜기. 모압과 아모리인들의 경계였던 땅. 참 무수한 접전이 있었을 골짜기가 고단한 잠을 자고 있었다. 잠시 내려 그 위용을 마음에 담는다. 사방에 펼쳐진 그 광활한 풍경을 도저히 눈으로는 다 담을 수가 없다.


비록 야위고 비틀어진 채로나마 수목이 자라고 있는 요르단의 일상을 지나 헤롯 안티파스의 땅이었던 마케루스로 향한다. 훅훅한 도로 한 켠에 차를 세우고 마른 풀밭에 서서, 멀리 뵈는 마케루스 요새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다.

 

 

아르논 골짜기 주변

 

 

그래도 요르단은 수목이 자란다.

 

굴을 드러내 놓기 힘든 열기다. 그런데도 세례자 요한이 갇혀 있었던 헤로데의 여름 별장까지 올라가 보기로 한다. 참 대단한 일행이다. 한마디 이의도 없이 기어이 가보겠단다. 이분들 아니었으면 평생 발길 돌려 볼 수 없을 땅을 오른다. 해발 700미터, 사해 수면보다는 1100미터나 높은 이 요새는 기원전 유다 임금이 나바테아 왕국을 견제하기 위해 구축했다가 로마에 의해 파괴된 것을 헤로데가 재건한 것이다. 지금은 건물을 지탱하던 기둥들과 주춧돌들만이 그늘 한 점 없는 광활한 대지 위에 남아 있다.

 

 

마케루스 요새

헤로데 안티파스가 세례자 요한을 가두었다고 알려진 천연 요새로 사방을 둘러보아도 푸른 그늘은 없다. 이천 년 전에는 어떤 모습이었을지 자못 궁금해지기도 했다.

 

아마도 요한이 갇혀 있었을 지하 감옥을 본다. 헤로데가 여인으로 인해 범죄하는 인간이 아니라 영원을 지향하는 존재였다면 역사는 어떻게 되었을까. 저만치 사해를 바라보며 서니 문득 향연의 피리소리가 들리는 듯도 하다.


무엇을 먹고 살까 싶은 대지에 드문 인가가 눈에 뵌다. 모압 땅을 지나며 그 여인, 모압의 룻을 기억한다. 신부님은 레비르법을 다시 상기시킨다.


우리는 메드바로 간다. 모자이크로 유명한 이 작은 마을의 성 게오르기오스 성당 바닥에는 6세기 경에 만들어진 팔레스티나 지도가 있었다. 비록 군데군데 지워지기도 했지만 사해와 예루살렘 등의 모습이 확연히 남아 있었다. 모자이크 학교와 기념품들을 파는 작은 가게들을 지나 메드바를 뒤로 하고 우리는 느보 산으로 향한다.

 


6세기 경에 만들어진 모자이크 지도
(사해와 예루살렘과 베들레헴, 그리고 소돔과 고모라에서 살아남은 롯의 수도원도 지도에 그려져 있다.)

 

오늘날도 여전히 광야인 느보 산에 우리는 버스를 타고 오른다. 열려 있는 철문을 들어서니, 입구에 서 있는 기념물이 순례객을 맞이한다. 요한 바오로 2세의 방문을 기념하여 세운 기념비에는 ‘모든 것들의 위에 있는 모든 존재의 아버지인 하느님’이라는 라틴어 문장이 새겨져 있다.


백 년 만에 꽃을 피우고 죽어간다는 용설란 두 그루가 마치 솟대처럼 버티고 선 느보 산 정상에 작은형제회가 세운 모세기념 성당이 있었다. 모세의 무덤 위에 있었다는 비잔틴 시대의 성당 터를 복원하여 지은 것이다.


모세가 올라간 ‘모압 평야에서 예리코 맞은편에 있는 느보 산 피스가 꼭대기’는 아마도 느보 산의 세 번째 봉우리인 시야가일 것이라고 추정된다. 이곳에서 주님은 모세에게 온 땅을 보여 주셨다. 단까지 이르는 길앗, 온 납탈리, 에프라임과 므나쎄의 땅, 서쪽 바다까지 이르는 유다의 온 땅, 네겝, 그리고 초아르까지 이르는 평야 지역, 곧 종려나무 성읍 예리코 골짜기를 보여 주셨다(신명 34,1-3). 그러나 주님은 그에게 온 땅을 보여 주시면서도, 그곳으로 건너가지는 못한다고 못 박으셨다. 결국 스스로 자신의 삶에 마침표를 찍을 수 없었던 모세는 하느님에 의해 마침표를 찍는다.

 

 


느보 산 정상에 있는 모세 기념 성당

(성당 앞에는 구약의 구리뱀과 예수님의 십자가를 복합하여 만든 조반니 판토니의 작품이 세워져 있다.)

 

성당 정원에는 모세가 뱀에 물린 백성들을 살리기 위해 만든 구리뱀과 인류를 구원하신 예수님의 십자가가 오랜 폭염 속에 서 있다. 많이 덥고, 성당 안도 무척 덥다. 구리뱀과 십자가를 결합한 상징물이 구급차의 상징이라고 한 가이드의 설명을 신부님께서 지적하신다. 분명히 그것은 느보 산의 십자가와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의술의 신으로 등장하는 아스클레피오스나 헤르메스의 지팡이와 관계 있을 것이다. 아직도 태양이 쨍쨍 비쳐서 십자가를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한 채 산을 내려온다.


알로이시오 곤자가의 축일, “지금 종말이 온다 해도 난 이대로 공치기를 할 거예요” 라고 했다던 그의 일화는 오늘, 마르틴 부버를 상기시킨다. 다만 지금 이 순간의 의미. 하느님께서 아담에게 “너 어디 있느냐?”고 물으신 것은 결국 실존을 대면하라는 요구이다. 그래야만 삶의 순간들이 생생한 의미를 지니게 된다.


이제 이방의 도시 암몬에 들어선다. 아름다운 왕비 라니아가 사는 곳. 암만의 호텔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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