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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순례 후기 나눔터
[순례후기]팔레스티나 성지 순례(2006. 6. 25.)-09일차

23 가톨릭교리신학원 [cci] 2006-10-24

아흐레 : 6월 25일
예루살렘(올리브산 예수님의 눈물성당)→소금산→마사다→엔게디→쿰란→예리코→예루살렘


예루살렘의 아침. 대단한 햇살이다. 66만 인구의 도시.


1967년 6일 전쟁 동안 이스라엘이 요르단으로부터 앗은 지역인 올드시티를 지나 올리브 산으로 간다. 어미 닭이 병아리를 품듯이 아름다운 제단이 있는 예수님의 눈물 성당, 도미누스 플래빗. 제단 너머로 바위돔 황금빛 지붕이 태양에 빛나는 시온산이 보인다.

 

 

 

 

도미누스 플래빗, 주님의 눈물 성당

눈물을 형상화 했다는 지붕과 시온 산이 환히 내려다 보이는 제단, 그리고 암탉이 제 날개 밑으로 병아리들을 모으고 있는 아름다운 제단화

 

예수님은, 여전히 회개하지 않는 예루살렘을 위해, 예루살렘 때문에 “눈물을 흘리셨다.” 이 성당 역시 작은형제회에서 관리하고 있다. 예루살렘, 평화의 도시. 평화의 사도인 프란치스코의 자취가 예루살렘과 잘 어울리면서도, 예루살렘이 결코 평화의 도시이지만은 않은 현실이 아프다.

 

 

 

도미누스 플래빗에서 바라본 시온 산

(황금빛으로 빛나는 바위돔과 멀리 성모영면성당이 보인다.)


미사가 끝난 후 잠시 시온 산을 바라본다. 멀리 성모영면 성당부터 황금빛으로 빛나는 바위돔까지, 그리고 예언자들을 위시하여 많은 히브리인들이 묻혀있을 묘지들과 바알과 아세라 목상의 재가 뿌려졌던 키드론 골짜기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가르는 콘크리트벽을 지난다.


하느님이, 이 땅을 걸었다. 하느님이, 이 땅에 계셨다. 목마르고 배고프고 분노하고 눈물 흘리고 마음 아파하고 기도하며 이 땅에 사셨다. 유비쿼터스 하느님이 형체를 가진 존재로 우리와 같은 모습으로 이 땅에 육화하셨다.


사해 쪽으로 간다. 유목민들의 정착촌을 지난다. 이제 그들은 자신들의 문화와 생활 습관, 즉 식사나 손님 접대 같은 일상을 관광 상품화한다. 시대의 흐름이 그들도 변화시킨다. 둔덕들이 펼쳐진다. 누런 흙. 또 다시 시레벨 아래로 들어선다. 해저 150미터다. 멀리 느보 산이 보이고 예리코가 보인다. 아름답다. 황량한 언덕들. 달궈진 살처럼, 철처럼 버티고 선 언덕들.


엔게디가 거기 있었다. 오아시스가 있어서 풍요롭고 아름다운 곳으로 다윗이 사울을 피하여 이곳의 동굴로 숨어들었다. 대추야자 나무 울창한 엔게디의 키부츠가 펼쳐진다. 햇빛이 좋아서 수십 년만 지나도 나무가 울창하게 자란단다.


뜨거운 황야의 한복판에 있는 마사다를 지나 한참을 가다 보니 사해가 끊어진 곳에 수심이 깊지 않았던 뭍이 드러났다. 해변이 너무도 아름다운 엔보케그를 지난다. 해변이 아름다울 뿐더러 50여 가지 광물이 함유된 사해 물이 치료 효과도 있어서 사람들은 이곳에 즐비한 ‘해변 호텔’에서 장기 투숙하며 지병을 치유하고자 한다.


해발 600미터에서 흘러내리는 빗물들이 만드는 협곡을 지나니 소금산이 드러난다. 소돔과 고모라가 끝나던 날, 롯의 아내가 돌아봤다는 바로 그곳에 먼 곳을 바라보는 듯한 여인의 형상으로 바위 하나가 서 있다.


다시 길을 거슬러 마사다로 간다. 작은 계곡들을 품고 있는 누런 협곡들. 대단한 지형의 파노라마다. 금세라도 굴러내릴 듯한 돌산들.


마사다. 무너진 보루. 기원전 100년 경에 구축된 천연 요새로서 헤로데가 궁전으로도 사용했던 이곳에는 당시의 번영을 엿볼 수 있는 모자이크 등이 아직도 남아 있다. 그후 66년 유다 독립전쟁 때에는 기지로 사용됐는데, 2년이나 저항하던 960여명의 유다인이 포로가 되기보다 자결하는 쪽을 택해 항쟁의 종지부를 찍었다.


절벽 높이가 사해 해면에서 400미터 정도 되는 이 요새를 우리는 케이블카를 타고 오른다. 정상에서 내려다보니 참 아득하다. 가파른 벼랑 아래로 사해가 보이고 황량한 땅뿐이다. 그늘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다. 곡식저장소와 회당과 장군들의 막사와 공중 목욕탕, 그리고 비잔틴 시대의 교회터.


해외에 사는 유다인들도 성인식을 즈음하여 마사다에 와서 밤을 새우며 조상들을 뜨겁게 기억한다. 기억의 현재화. 그 예배를 통해 그들의 시오니즘은 확대 재생산된다. 그 역사, 안타까운 일이지만, 결국 오늘날 불행한 분쟁의 뿌리가 된 역사. 물리적인 ‘땅’에 대한 집착이 유다교의 편협을 고착시켰다.


잠시 엔게디에 들른다. ‘들염소의 샘’이라는 엔게디에 들염소 몇 마리가 노닐고 있다. 쥐엄나무 곁에서 멀리 다윗이 숨어 들었다는 동굴을 바라다보고 내려온다. 다시 버스에 올라 우리는 쿰란으로 간다. 1947년 한 베두인 사람이 사해 두루마리를 발견했다. 에세네파 사람들이 살았으리라고 추정되는 쿰란에서는 이사야 예언서 전편을 비롯하여 총 600여 개의 고사본이 발견되었다.

 

그들이 정결한 영육으로 성서를 필사했을 필경실에서는 멀리 사해가 부연 빛으로 내려다보인다.

 

 

 

쿰란

(1947년 최초의 발견 이후 발굴된 11개의 동굴 가운데 제4동굴이 보인다.)

 

예리코에 들어가려 한다. 아주 위험한 일인 모양이다. 아랍 지역인 예리코는 순례자들에게 안전한 지역이 아니다. 아주 낡고 가난한 마을로 들어선다. 오랜 세월의 풍상이 느껴진다. 가득 찬 긴장감을 애써 털어내며 황급히 내려, 예수님이 유혹을 받으셨다는 산을 뒤로 하고 사진을 찍는다.

 


예리코

(저 멀리 보이는 산이 예수님이 악마에게 유혹을 받으셨다는 유혹의 산이다.)


자캐오의 집과 키 작은 그가 예수님을 보기 위해 올라갔던 나무를 보고, 아랍인 버스기사의 친구네 과일가게에서 팔레스타인의 과일을 사다 먹는다.


다시 검문소를 지나 예루살렘으로 향한다. 모세의 무덤이라고 전해지는 곳의 하얀 모스크를 지나고, 다시 시레벨 표지를 지나 유다 광야에 접어든다.


예루살렘에 들어서 유다 정통 종교인들의 동네를 지난다. 안식일이면 전혀 차가 움직이지 않는 동네. 아예 한계선을 그어놓은 동네. 잠시 그들의 안식일을 그려본다.


텔레비전 시청과 인터넷 접속이 금지되어 있지만 그들은 열심히 지킨다. 이슬람과 유다교. 그들의 경건함과 엄격한 규율 준수 등이 시대의 흐름과는 융화될 수 없는 것일까? 한편으로는 그들의 삶의 양태가 부럽기도 하다. 삶의 자리에 실재하는 신의 존재. 삶과 신앙의 괴리가 보다 적은 그 삶. 유다인들의 삶의 언저리에서, 그들의 관습에 신경쓰고 존중하며 샬롬을 보낸다.


예루살렘의 해가 진다. 대단한 폭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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