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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녹) 2024년 10월 5일 (토)연중 제26주간 토요일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여라.
성지순례 후기 나눔터
[순례후기]팔레스티나 성지 순례(2006. 6. 27.)-11일차

25 가톨릭교리신학원 [cci] 2006-10-24

열하루 : 6월 27일
예루살렘(비아 돌로로사, 예수님무덤성당, 벳파게, 주님의 기도성당, 예수님승천경당, 베타니아, 겟세마니)→아인카렘(요한탄생성당, 성모님 방문기념성당)→엠마오


아마도 그 길, 우리도 걷는다. 닭이 홰치고 새들의 날카로운 소리가 범벅이 된다. 예루살렘의 새벽, 서늘한 공기 속에 비아 돌로로사를. 광인인지 경건한 사람인지 한 유다인이 경전을 암송하며 지나간다. 진한 향신료 냄새가 나고 신문배달원이 지나가고 사람들은 쓰레기를 버리러 나온다. 곳곳의 쓰레기 더미들. 크고 작은 혼돈 속에 있다. 거룩한 도성, 거룩한 성막, 사방에 갇혔다!! 십자가에, 혼돈, 그 사랑에. 그 고통. 산도 없고 십자가도 없고 성당들이 세워졌다. 인간의 정성으로 만들어놓은 것들은 때로 이질적이다. 진한 향 냄새에 문득 숨이 막힐 것 같다.

 

 

 

비아 돌로로사, 그리고 십자가에서 내려지셨다.

 

십자가의 길을 묵상하며 마침내 예수님 무덤에 닿는다. 예수님은 이 무덤에서 부활하셨다. 그리스도교 여섯 종파가 관할하고 있는 이곳은 형언할 수 없는 기운을 자아낸다. 그야말로 많은 민족들이 “자, 주님의 산으로, 야곱의 하느님 집으로 올라가자”(미카 4,2)고 모여들었다. 민족들은 저마다 자신들의 언어와 자신들의 관습과 자신들의 역사 안에서 그분의 길을 걷고 있다.


예수님의 무덤에서 그분을 기억하고 예배한다. 은총이다. 감사 드린다.


미사가 끝나고 잠시 묵상하며 성전을 돌아본다. 수많은 제대들과 성상들, 경당들, 오래토록 타고 있는 촛불들. 이천 년의 냄새, 그리고 낯선 냄새가 영혼에 스민다. 불에 탄 시리아 정교회의 경당에 들어가서 옛날 동굴 무덤을 본다.


장엄미사가 시작되었다. 거대한 파이프오르간. 마치 함성처럼 울린다.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경당들 가운데 예수님의 십자가를 찾았다는 헬레나 경당에 내려가 본다. 그 바로 위에는 아르메니아 정교회의 헬레나 경당이 있다.

 

 


예수님 부활 성당 입구


호텔에 들어와 밥을 먹고 로비에서 잠시 쉰다. 이제 예루살렘에서의 반나절이 남았을 뿐이다. 어때? 내게 묻는다. 변화? 혼돈이 남는다. 뒤섞이고, 뜨겁고 혹은 서늘한. 하느님. 하늘과 땅이 만나고, 당신이 기어이 죽어서 차가운 돌에 눕혀졌다. 그리고 부활했다. 그 모든 행위의 까닭은 인간의 죄 때문?


그럼에도 인간은 여전히 죄를 짓는다. 범죄하지 않을 수 있을까, 어떤 형태로도? 회개는 정신의 문제 아닌가, 감정의 영역이 아니라. 감정은 본연의 것이며 동시에 인간의 보편적인 한계다. 한순간이라도 감정을 멈추거나 오롯이 정결하게 할 수 있을까? 할 수 있는 건 지력과 의지로써 정신을 제어하고 정신의 지향을 바로 하는 것. 내게도 회개는 올바른 방향으로 가는 것이다. 올바른 방향, 그것이 숙제다.

 

 


벳파게

수많은 군중이 자기들의 겉옷을 길에 깔았다. 또 어떤 이들은 나뭇가지를 꺾어다가 길에 깔았다(마태 21,8).


벳파게,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시기 전에 머물렀던 곳으로 간다. 군중은 “다윗의 자손께 호산나!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은 복되시어라. 지극히 높은 곳에 호산나!” 라고 외치며 그를 맞았다.


주님의 기도 성당 지하에는 예수님이 종종 머무시기도 하고, 제자들에게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 주었다는 동굴 경당이 있다. 다함께 주님의 기도를 드리고, 세계 80여 개 국어로 쓰인 주님의 기도가 걸린 회랑에 오른다. 한글 기도문도 있다. 카르멜 수녀님들이 운영하는 성물방에 들렀다가 주님의 승천 기념 경당으로 간다. 아주 작은 경당이다. 비잔틴 시대에도 십자군 시대에도 승천을 상징하여 지붕 없는 경당을 지었다. 그후 무슬림들이 돔을 만들어 올려 현재는 모스크가 되었다. 경당 안에는 예수님이 승천하실 때 남겨졌다는 발자국이 찍힌 바윗돌이 있다. 그 발자국은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사인일 뿐이다.

 

 


주님의 기도 성당
성당 정원의 벽과 아름다운 회랑에 각 나라의 언어로 씌어진 주님의 기도가 걸려 있다.


베타니아. 라자로와 마르타와 마리아가 살던 동네에 간다. 현재의 지명은 아랍어로 엘 아자리야인데 ‘하느님 친구의 집’이라는 뜻이란다. 분리 장벽 때문에 빙 둘러가느라 다시 시레벨을 지난다. 소박하지만 촌스런 분수가 있는 마을로 들어선다. 버스에서 내려 아름다운 정원을 지나 라자로네 집 성당에 들어간다. 제대 정면의 아름다운 그림 속에서 예수님은 “Ego Sum Resurrectio Et Vita(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라고 선언한다. 성당을 나가 좁은 골목으로 몇 걸음 오른 곳에 라자로의 무덤이 있다. 무수한 발자취 때문에 미끄러운 돌계단을 한참 내려간 곳에 예수님의 친구 라자로가 묻혔던 동굴 무덤이 있었다. 예수님이 눈물을 흘리신 사랑하는 친구.

 

 


베타니아 라자로의 집 성당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요한 11,25-26)

 

다시 다마스쿠스 문을 지나 구세주의 성당, 예루살렘 주교좌 성당을 바라보며 달린다. 예루살렘의 가장 번화가를 지난다. 차가 좀 밀린다. 그러나 참 한가롭다. 사람들은 많지 않고 급하지도 않다.


점심을 먹고 겟세마니로 간다. 그 밤, 근심과 번민에 휩싸여 예수님은 얼굴을 땅에 대고 기도하셨다. “아버지, 하실 수만 있으시면 이 잔이 저를 비켜 가게 해 주십시오. 그러나 제가 원하는 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십시오”(마태 26,39). 그리고는 붙잡히셨다. 그 장소에 세워진 겟세마니 대성당은 16개 나라의 보조로 완성이 되어서 여러 나라 민족의 대성당이라고도 불린다. 성당 마당에는 아름답게 가꿔진 정원이 있는데 그 가운데에는 수령이 3천 년인 올리브나무 여덟 그루도 있다. 죽은 줄 알았던 나무에서 다시 새순이 돋고 있는 올리브!


예수님이 종종 기도하셨다는 겟세마니 동굴을 보러 갔지만 문이 닫혀서, 바로 곁에 있는 동방정교회의 성모님 무덤교회에 내려가 본다. 교회 밖에서 어린 아이들이 올리브나무 가지를 팔고 있다.


나뭇잎들이 바람에 물결처럼 반짝이며 흔들린다. 발코니에 제라늄을 잘 키우기로 유명한 호텔을 지난다. 고약한 제라늄 꽃 냄새가 파리 등을 쫓는단다. 주택가. 하얗고 작다. 그러나 소박한 정원들에 풍성하게 나무가 자라서 아늑하고 평화롭다. 문득 이집트 생각이 난다. 정통 복장을 한 그들의 행색을 생각하니 유다인들의 하얀 셔츠와 잘 다린 바지는 귀족의 모습이다. 이스라엘 박물관을 지난다. 잦은 전쟁으로 온전하게 남아 있는 것이 드물어서 그 조각들을 모아 전시를 하고 있다.


유다의 산골 지방 아인카렘으로 가고 있다. 포도원밭의 샘이라는 예쁜 이름의 마을에서, 세례자 요한의 어머니 엘리사벳이 마리아를 맞았다. 즈카르야의 집, 요한이 태어난 곳에 지어진 세례자 요한 성당의 마당에는 노란 아카시 나무가 큰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그 그늘 속 벽에는 여러 나라 말로 쓰인 즈카르야의 노래가 걸려 있다. “아기야, 너 지존하신 이의 예언자 되리니 주님의 선구자로 주님의 길을 닦아 죄 사함의 구원을 주님의 백성에게 알리리라.” 그 아기, 제 길을 올곧게 간 사람. 요한의 길을 생각한다.


작은 마을의 오르막길을 따라 성모님이 엘리사벳을 방문한 기념 성당에 간다. 고요한 마을에 아름답게 지어진 성당이다. 여기서 두 여인, 하느님을 믿은 신실한 두 여인이 만났다. 성당 마당의 벽에 여러 나라 말로 쓰여진 성모 마리아의 찬가를 우리도 함께 바친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돌보셨기 때문입니다…….”


 

 

성모님 방문 기념 성당에 가득한 아름다운 성화들

 

 

 

성모님 방문 기념 성당
성당 밖 벽에는 아름다운 타일 위에 쓴 마니피캇이 걸려 있다.

 

엘리사벳이 머물렀던 곳으로 여겨지는 1층과 성모님에 관한 아름다운 성화들이 그득한 2층 성당. 성당 밖 곳곳에도 정성스런 사람의 손길이 느껴지는 곳이었다.


아쉽지만 아인카렘을 떠나 엠마오로 간다. 엠마오라고 추정되는 세 군데 가운데 가장 근접한 곳이다. 형형색색의 꽃들이 만발한 정원을 지나 본당에 들어가니 수사님이 파이프오르간 연습을 하고 있다. 낡은 성당 안, 어둡고 닳았다. 잠시 오래된 고요 속에 앉는다. “그러자 그들의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보았다”(루카 24,32).

 

 

 

엠마오 성당에는 빛바랜 성화 속으로 파이프오르간이 흐르고 있었다.

 

 

아름다운 정원에서 마지막 기념 사진을 찍고 신부님은 말씀하신다. “우리는 거룩한 땅을 찾아 서쪽으로 왔다. 제자들이 주님을 알아뵙고 머물기를 청한 것처럼, 이제 기회가 주어질 때 우리도 주님을 알아뵈어야 한다.” 서쪽을 향해 걷는 사람에게 하느님께서 은총을 허락하신다.


이스라엘에서의 여정이 끝났다. 남는 마음이 이미 없다. 가볍다. 기쁘다.


저녁을 먹을 때 호텔 식당에서 레어버드의 심퍼시가 흐른다. 그 마음, 예수님이 가지셨던 마음. 


...... And sympathy is what we need, my friend,
...... now half the world hates the other half
       and half the world has all the food
       and half the world lies down and quietly starves
       cause there's not enough love to go round ......

 

여전히 사랑은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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