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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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권유리 [kyuri] 2003-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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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신부님~~~
신부님의 정말로 좋은 강론말씀 감사드립니다.
(참고로 저는 7시 미사를 봉헌하는 청년이기에
주임신부님의 강론말씀을 듣지 못하는 것이 아쉽습니다. ^^)
사실은 제가 차디찬 냉소로 주님을 믿고 따른다는 사실을 외면하고자 2년 이상을 냉담자로
지내왔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너무나도 약한 인간이기에 절대자인 신을 믿어야 겠다는 생각은 계속 하고 있었지요. 그러나 단지 생각뿐이었고 마음은 그렇게 쉽게 신께로 향하도록 변하지 않았답니다. 신 앞에 무릎 꿇고 눈물 흘리는 등의 진실함은 쉽지가 않았습니다.
그래도 노력은 하고 있었어요. 마음이 점차 변화되기를 기다리면서 말입니다.
그러다가 새 신부님들을 맞이하게 되었고, 새 신부님들 강론을 들으면서
저 정말로 커다란 마음의 변화를 하게 되었습니다.
오랜 기간 수양을 쌓고, 노력하다보면 한 순간에 깨닫는 때가 있다는 (이 단어는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제가 어떤 의미를 지칭하는지 아시겠죠?) 말처럼...
저는 정말로 한 순간, 갑작스럽게 마음이 자연스럽게 주님께로 향하게 되었답니다. 저, 정말로 주님을 따르겠습니다. 이렇게요.
물론 그 전부터 주님께 오려고 노력은 계속 하던 상태였으니까 가능한 일이었다고 저는 믿습니다. 저에게 있어 신앙은 기적 같은 일을 체험하고 나서 신이 있음을 알고 두려워 벌벌 떨면서 믿게 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거든요.
루까신부님의 장미색 제의에 대한 설명 때문이었을 겁니다. 사실 저는 그때 정신적으로 많이 황폐해 있었거든요. 설명을 들었을 때 대림3주나 사순 3주 기간은 곧 다가올 기쁨의 날을 위해 어두운 색(?)에서 밝은 색을 입는 의미를 갖고 있다고 하셨어요. 그때 전 사람의 삶이랑 어쩜 이렇게도 많이 닮아 있는가...이렇게 힘든 기간에도 곧 다가올 기쁨과 시기가 있다는 희망을 이야기해주는 메세지. 그래서 전 종교만큼 사람을 위해주는 것은 없구나... 하면서 종교에 귀의하기로 마음이 알아서 변했던 건가 봅니다. ^^
(제 설명이 좀 어설퍼서 무슨 말인지 이해하실 수 있으려나 걱정이 좀 됩니다. 그러나 신앙의 힘으로 극복되기를 바라며.. ^^)
그러고 나서 파스칼의 <팡세>를 부분 읽기를 하는데,
"종교는 인간을 잘 알고 있으므로 존중해야 하며, 참된 선(善)을 약속해주므로 사랑해야 한다." -팡세- 파스칼
이 부분을 읽고서 종교에 귀의하려는 마음을 확고히 다지게 되었어요.
이쯤되면 아니, 이 청년은 순수한 신앙인이라기보다는 종교가 사람을 위해주고, 사람을 잘 알고 있고, ... 이런 좋은 점이 있다는 판단을 해서 주님을 믿겠다는 거 아닌가? 하실지도 모르겠네요. 제가 신부님들과 신앙이나 종교에 대해 진지한 대화를 해본적이 없어서 신앙관이나 종교관은 잘 모르겠습니다.
어쨌거나 신을 찾으려했고, 그 결과로 진실된 마음으로 신을 믿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게 된 것이면 제 종교관이 그렇게 이상하지는 않은 듯 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노래 중 하나가 바로 ’내발을 씻기신 예수’입니다. 대학 동아리 활동을 예수회 평신도 단체인 CLC에서 해서 그런지, 실천을 중요시 하는 신앙인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 살았거든요. (물론 이 역시 생각만 있을 뿐, 그리 실천하는 신앙인으로는 살지 못했었습니다. -.-) ’주여 나를 보내주소서, 당신 손길 필요한 곳에...’ 이러한 노랫말이 저를 더더욱 그런 신앙인이 되어야 겠다는 의지를 갖게 했지요.
그런 중에 들었던 알렉산델 신부님의 ’우리는 그리스도를 닮은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란 강론은 저에게 또 한번 확고한 삶의 길을 느끼게 해주셨습니다. 우리를 통해서 예수님께서 그 모습을 드러내실 수 있다고 말씀하셨던 부분, 잊지 못합니다.
마더 데레사 수녀님께서 좋아하시는 기도 중에 ’존 헨리 뉴먼’의 기도에는
"저를 통하여 제 안에서 빛나는 당신으로 하여 제가 만나는 모든 영혼이 당신의 현존을 느끼게 해주십시오. 주님, 그들이 저를 통해 당신만을 보게 해주십시오." 라는 부분이 있어요. 알렉산델 신부님 말씀을 듣고나서 다시한번 살펴본 이 기도는 어떤 것인지 구체적으로 다가와 제 마음을 주님으로 온통 채울 수 있었습니다.
생활 속의 신앙인, 생활 속에서 예수님이 되어 살아야겠다는 생각 이 모든 것이 저를 정말 뜨거운 마음으로 만들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다 루까신부님과 알렉산델 신부님의 덕분입니다.
그렇다고 제가 갑작스럽게 바뀌지는 못했습니다. 당장 봉사활동을 늘리고, 사람들을 대할 때 웃으며 대하는 등의 이런 모습 말입니다. 그러나 저는 천천히 바뀌어갈 것을 결심하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신부님들.
이렇게 멋진 신부님들의 강론말씀 듣는 것은 제게 더할 수 없는 기쁨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마음이 조금 불편합니다. 어쩌면 제가 잠실성당을 꺼리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알렉산델 신부님에게는 지겨운 논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바로 미사보에 관한 것이지요. 신부님 저는 미사보를 쓰고 싶지 않습니다. 오히려 미사보를 쓰는 것이 더 신경쓰이는 것이거든요.
신부님이 주관하시는 미사이기에 신자들에게 바라는 바를 따르라고 하시면, 그것이 도그마적인 문제라고 하신다면 어쩔 수 없겠지요. 그것을 따르지 않는 사람에게 미사봉헌의 결정체인 영성체를 걸고 넘어지시는 것이 불편해집니다. 강론말씀으로 제 차가웠던 마음을 주님께 온전히 돌아올 수 있게 해주셨던 것처럼 미사보 문제도 그렇게 해주셨다면 저는 진실된 마음으로 불편함을 돌아보지 않고 미사보를 썼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사소한 문제로 신앙이 흔들린다거나 하면 그것은 참다운 신앙이 아니라고들 제 주변 사람들이 충고해줍니다. 물론 신앙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다만 저는 신부님들을 통해서 사람을 위해주고, 사람을 위해 오셨던 예수님의 모습을 언제까지고 볼 수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의 고집이란 웃긴 것이어서, 제 이 고집스런 마음이 쉽게 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는 고집불통, 독선적인 사고를 하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또 신부님들을 만나게 해주신 것도 너무나도 감사드립니다.
쓰고보니, 이런 글을 왜 썼는지 결론은 애매하게 되었네요. 제가 드리고 싶은 말은 멋지고도 좋은 신부님들께서 보다 나은 정책(이런 말이 어울리지는 않지만, 적당한 말을 모르겠네요.)을 펼쳐주셨으면 하는 것입니다.
그럼 여기서 지루하고도 긴 글을 마칠까합니다. 안녕히계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