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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녹) 2024년 11월 23일 (토)연중 제33주간 토요일하느님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신부님강론
주의 공현 대축일 (나해)

203 양권식 [ysimeon] 2009-01-03

주의 공현 대축일 (나해)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주의 공현 대축일입니다. 성탄 때 가난하고 순직한 목동들 앞에 자신을 드러내신 주님은 멀리 동방에서 찾아온 이방현자인 동방박사들 앞에 자신을 드러내심으로써 모든 사람의 왕 이시라는 것을 드러내셨다는 것이 주의 공현의 의미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주의 공현 축일을 공생활의 시작을 의미하는 세례 축일 전에 위치시키고 있습니다. 사실 성서에서 보면, 동방박사 방문 이후에 헤로데의 잔인한 학살이 있었는데, 교회는 주의 공현의 의미를 잘 드러내기 위해 주의 공현을 무죄한 어린이 순교 축일인 12월 28일 이전에 위치시키지 않고 세례 축일 전에 위치시킨 것입니다.
전승에 의하면 멜키올, 발다살, 가스팔이라고 전해지는 이 세 명의 동방박사는 한 나라를 다스리는 왕들이고 또 학문과 점성술에 조예가 깊은 현자들이라고 합니다. 그들은 별을 관찰하면서 하느님의 구원을 알아냈고 구원의 때가 되자 모든 것을 박차고 이 세상에 나실 왕께 경배 드리려 길을 떠났다고 합니다. 동방박사들은 아기 예수님께 왕권을 상징하는 황금과 제사를 상징하는 유향, 영원한 생명을 상징하는 몰약을 드림으로써 태어난 아기가 전능하신 분의 아드님이고 이 세상의 왕임을 드러냅니다.
또 다른 이야기에 의하면 이 세 사람 말고도 또 한 명의 동방박사가 더 있었다고 합니다. 네 사람의 동방박사는 메시아가 태어났다는 별의 표징을 알아내고 같이 출발하려고 했답니다. 오늘은 그 네 번째 동방박사, 네 번째 왕의 이야기를 여러분들께 들려드리고자 합니다. 네 번째 동방박사는 세 사람의 동방박사보다 젊었다고 전해집니다. 그는 여러 나라말에 정통하였고, 학문에도 조예가 깊었습니다. 그는 특히 뛰어난 의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태어나신 왕께 드릴 값비싼 사파이어와 다이아몬드, 커다란 진주를 마련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만 아버지의 병이 위독해져서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뒤 늦게 출발할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서둘러 장례를 마친 그는 앞서 간 사람의 뒤를 쫓았습니다. 그는 시간을 벌기 위해 사막을 횡단했습니다. 사막을 다 지날 무렵 어느 헐벗은 노인이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 자기가 가지고 있던 물을 모두 마시게 하고는 그 노인을 낙타에 싣고 주막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서는 자신의 의술로 그 노인을 치료하느라 며칠의 시간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드디어 그 노인이 정신을 차리게 되고 어느 정도 기운을 차리자 그는 예물 중에서 사파이어 하나를 내어놓고 앞으로 더 누워 있을 기간의 숙박료와 치료비, 그리고 병이 나으면 당분간 먹고 살 비용에 쓰도록 하였습니다. 그 노인은 이스라엘 사람으로서 동방박사의 여행 목적을 알고서는 세상의 왕이 베들레헴에서 날 것이라고 일러주었습니다.
네 번째 왕은 길을 서둘러 베들레헴에 당도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간 베들레헴에 도착하였을 때 이미 예수님의 가족은 베들레헴을 떠나고, 헤로데의 명령에 의해 두 살 이하의 사내아이들이 죽음을 당하고 있는 처참한 학살의 현장이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나서던 곳에 들러 아기 예수가 이집트로 피난한 것을 알고 돌아섰습니다. 그 순간 자지러지는 아기의 울음소리와 찢어질 듯 한 여인의 비명 소리가 들리면서 헤로데의 병사 하나가 피 묻은 칼을 들고 어머니의 품에 안겨 있는 아기를 빼앗으려는 광경을 보게 되었습니다. 아기를 빼앗지 못한 병사는 아기와 여인을 한꺼번에 베려고 칼을 높이 쳐들었습니다. 그는 급히 달려가 병사의 팔을 잡았습니다. 그리고서는 아기 예수님께 드리기 위해 준비한 예물 중에서 다이아몬드를 꺼내 병사 앞에 내밀었습니다. 그 병사는 칼을 거두고 다이아몬드를 받아 넣었고, 동방박사는 아기와 아기 부모를 데리고 그곳을 빠져 나올 수 있었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여행이 길어질 것을 예상한 그는 단 한 명의 하인만 남기고 모든 일행을 고국으로 돌려보내고 아기 예수님을 찾아 이집트로 떠났습니다.
이집트 곳곳을 찾았지만 예수님의 가족은 쉽게 만날 수는 없었습니다. 마침내 예수님의 가족이 살던 곳을 찾았을 때에는 예수님의 가족은 이미 고국으로 떠난 후였습니다. 그 동안 돈은 떨어졌지만 뛰어난 의술 덕분에 의식주의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가족이 갈릴레아로 갔다는 것을 모르는 그는 이스라엘의 수도인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왕을 찾다가 가난하고 병든 사람이 모여 있는 곳을 알게 되었고, 병자를 모른 체 할 수 없었던 그는 또 다시 그들과 함께 기거하였습니다. 언젠가는 입성하실 왕에게 드릴 마지막 예물인 진주를 품속에 간직하면서 세상의 소식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고국을 떠난 지 삼십 년이 되었을 때에 젊었던 박사는 늙어 버렸고, 세상의 왕을 끝내 보지 못할까 하여 초조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던 차에 갈릴래아에서 이상한 소문이 들려오기 시작하였습니다. 한 젊은이가 구원의 소식을 선포한다는 것입니다. 나중에 이 젊은이가 메시아일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들여왔지만 세상의 왕이 예루살렘이 아니라 갈릴레아 지방에서 날 리가 없다고 생각한 그는 처음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여러 가지 기적들의 소식을 들으면서 이 사람이 자기가 찾던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였고 나자렛의 젊은이를 찾아 나서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항상 불쌍한 병자를 만나 그들을 치유하느라 예수님을 바짝 뒤쫓지는 못하였습니다.
그가 나자렛의 젊은이를 볼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처형당했던 장소에서였습니다. 그때까지 간직하였던 진주를 가지고 십자가의 길을 쫓던 그는 길에서 쫓기는 소녀와 우악스럽게 그 소녀를 잡는 어느 남자를 보았습니다. 그 소녀는 박사의 고국의 언어로 살려 달라고 소리를 지르고 있었습니다. 박사는 그들을 잡고 자초지종을 들어보았습니다. 그 소녀는 자신의 고향 친구의 딸이었고, 집안이 몰락하여 양친은 병으로 죽고 자신은 노예로 팔려 왔다는 것입니다. 그 남자는 채권자였고 그 소녀는 도망치다가 잡혔던 것입니다. 박사는 마지막 남은 예물인 진주를 꽉 쥐었습니다. 한참을 망설이다가 진주를 남자에게 주고 소녀를 구해 냈습니다.
그가 골고타 언덕에 도착하였을 때에 십자가에 매달린 젊은이는 왼 편의 죄수에게 죄를 용서하면서 “오늘 너는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 젊은이와 이야기하려고 십자가에 접근하려 했지만 로마 병정들은 사람들을 우악스럽게 밀어 댔습니다. 그때에 그 젊은이는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맡기나이다.”라는 말을 끝으로 숨을 거두었고, 그 순간 세상은 어두워지고 뇌성벽력이 요란하게 울렸습니다.
박사는 쓸쓸히 되돌아섰습니다. ‘나는 헛되게 산 것이 아닌가.’라는 후회가 들면서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그때까지 따라다닌 하인과 자신이 구해 준 아기였던 청년과 소녀의 부축을 받으며 담벼락에 기대앉았습니다. 그는 죽음의 순간이 자신에게 다가왔음을 느꼈습니다. 가쁜 숨을 내쉬는 그의 눈앞이 밝아지면서 말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착하고 충실한 종아,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당신께서는 누구십니까?” “나는 방금 네가 본 세상의 왕이다.” “아, 주님, 이제야 당신을 만나게 되었군요. 그런데 저는 당신께 드릴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원래는 당신께 사파이어와 다이아몬드와 진주를 예물로 드리려고 했는데 지금은 아무 것도 없고 제 육신마저 병들고 시들어 버렸습니다.” “나는 네 예물을 모두 다 받았다. 그뿐만 아니라 너는 내가 목마를 때 마실 것을 주었고, 배고플 때 먹을 것을 주었으며, 병들었을 때 찾아와 돌봐 주었다.” “주님, 저는 오늘 당신을 처음 뵙는데, 제가 언제 그런 것을 해 주었단 말입니까?” “네가 내 형제 중 가장 보잘것없는 자에게 해 준 것, 불쌍한 사람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해 준 것 모두가 바로 내게 해 준 것이다.” “아, 주님, 당신께서는 그런 왕이셨군요. 그래서 십자가에 달리셨군요. 나는 헛되이 산 것이 아니군요.”
주위의 사람들도 빛을 보고 소리는 들었지만 왕의 모습은 보지 못했습니다. 주변에 있던 늙은 하인과 청년과 소녀는 동방박사가 만족한 미소를 띤 채 평온하게 숨을 멈추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는 평생에 걸쳐 세상의 왕을 찾아 다녔지만 그는 이미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 안에서 왕을 항상 만나왔고 최고의 정성을 바쳐 왔던 것입니다. 네 번째 동방박사는 평생 동안 예수님을 찾았지만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만큼 직접 예수님을 체험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교형자매 여러분, 오늘 복음이 전해 주는 것처럼 우리가 직접 주님께 값비싼 예물을 드릴 수는 없지만, 네 번째 동방의 왕처럼 버림받은 사람과 고통 받는 사람들 안에서 우리는 주님을 뵈올 수 있습니다. 경제적 모순과 사회적 불의와 억압에 의해 고통 받는 소수자 들 가운데서 우리는 우리의 주님을 뵈올 수 있습니다. 나의 판단과 행동이 혹여 어려운 이들에게 누가 되지 않도록, 나의 선택이 작게라도 정의로운 사회를 마련하는 데에 보탬이 될 수 있다면 그것이 우리가 마련할 수 있는 예수님께 드릴 예물이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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