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리51] 연옥(煉獄) 교리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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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오규철 [kcoh] 2005-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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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옥(煉獄) 교리에 대하여
"예수 믿으면 천국, 믿지 않으면 지옥" 이러한 외침을 거리에서나 지하철 전동차 안에서 자주 듣습니다. 대부분 개신교인들이 이런 구호가 적힌 팻말을 들고 전단지를 뿌려 가며 열성적으로 선교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사람이 죽은 이후의 세계는 과연 있을까? 누가 가는 것일까? 그리고 그곳은 어떤 곳일까? 사람이 죽음으로써 인생이라는 '시험 기간'은 끝이 납니다. 그리고 심판과 더불어 응보의 '영원'이 시작됩니다. 심판의 결과에 따라서 "정화를 거치거나[연옥(煉獄)], 곧바로 하늘의 행복으로 들어가거나[천국(天國)], 곧바로 영원한 벌[지옥(地獄)]을 받게 된다"고 가톨릭 교회는 믿습니다. 바로 연옥, 지옥, 천국행이 결정된다는 것이 우리의 신앙입니다. 연옥이 있다는 것이 천국과 지옥만 있다는 개신교와 다른 것입니다.
가톨릭 교회의 연옥에 대한 가르침은 구약의 마카베오 후서 12장 43절에서 45절에 "죽은 사람들을 위해 속죄의 제물을 바치고 기도하는 것은 죽은 사람들이 죄에서 해방될 수 있게 하려는 것이다"라는 성구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유다 마카베오는 이방인과의 전투에서 전사한 유다인들의 시체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그들이 '우상의 부적'을 지니고 있음을 확인합니다. 그들이 성전(聖戰)에 참전하여 전사한 사실은 의로우나, 우상을 섬기는 일은 율법에 어긋나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유다는 죽은 자들이 범한 죄를 용서해 달라고 애원하면서 기도를 드렸던 것입니다. 만일 '천국'과 '지옥'밖에 없었다면 유다인들은 죽은 이들을 위해 기도해 줄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이미 의인 아니면 악인, 곧 천국 아니면 지옥으로 판가름이 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죽은 전사자들은 안타깝게도 '반쪽 의인'들이었습니다. 교회는 '반쪽 의인'인 사람들이 천국에 가기 전에 거치는 정화(淨化)의 단계를 연옥이라고 보았습니다.
문제는 개신교에서는 마카베오서를 성경의 정경(正經)으로 인정하지 않는 데 있습니다. 천주교의 구약 경전은 46권인 데 반해, 개신교는 39권입니다. 구약에서 죽은 이를 위해 베푸는 선행을 강조하여 연옥의 존재를 시사하는 대목이 또 있습니다. "산 사람 모두에게 은덕을 베풀 것이며 죽은 사람에게까지도 은덕을 베풀어라"(집회 7,33). 신약의 베드로 1서의 말씀도 '연옥'을 시사합니다. "이리하여 그리스께서는 갇혀 있는 영혼들에게도 가셔서 기쁜 소식을 선포하셨습니다"(1베드 3,19). 분명한 것은 여기서 '갇혀 있는 영혼들'이 지옥의 처지에 있는 영혼들이 아니고, 그렇다고 천국의 천지에 있는 영혼들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도 저것도 아닌 연옥의 상태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는 것입니다. 요컨대 가톨릭 교회의 오랜 전통은 연옥이 실재한다는 것을 다음과 같이 가르칩니다.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 안에서 죽었으나 완전히 정화(淨化)되지 않은 사람들은 영원한 구원이 보장되기는 하지만, 하늘나라의 기쁨으로 들어가는 데 필요한 거룩함을 얻기 위해 죽은 후에 정화를 거쳐야 한다"
예언자 이사야는 환시를 통하여 천상에서 옥좌에 앉아 계신 하느님의 모습을 보고 즉각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보았습니다. "큰일 났구나, 이제 나는 죽었다"(이사 6,5). 이사야는 사실 죄인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이 의인도 '절대 거룩'과 '순수 사랑' 앞에 자신의 허물과 부족을 발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절대와 순수 앞에서는 그 누구도 쓰레기 같은 존재로 드러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곧 천사의 도움으로 정화의 은총을 누렸습니다. 이 정화를 우리는 연옥(煉獄)이라고 합니다.
연옥에 대한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은 매우 신중합니다. 보통 신앙인들은 연옥이란 하느님이 아주 악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선하지도 않은 인간을 벌하기 위해 만드신 일종의 반지옥(半地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보다는 반천국(半天國)으로 보는 것이 옳습니다. 부족한 인간에게 보속과 정화의 기회를 준 자비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죄스런 인간이 거룩하고 무한하며 사랑이신 하느님을 만나는 과정에서 치르는 정화(淨化) 자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연옥은 순수 사랑과 거룩함 앞에, 불순한 자신을 심히 부끄럽고 고통스럽게 느끼는 만남, 그래서 정화되는 만남인 것입니다. 넓게 봤을 때, 연옥은 천국의 일부입니다. 그러므로 개신교에서 천국과 지옥만 있다고 믿는 것과 가톨릭의 교리는 완전히 다른 것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개신교에서도 개인에 따른 상급의 차이를 얘기하고 천국의 다채로운 차원을 얘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사로운 교리의 차이 때문에 등지고 살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 오용호 신부 | 인천교구 관리국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