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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녹) 2024년 11월 23일 (토)연중 제33주간 토요일하느님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하계동 메아리
"새 포도주 담는 새 가죽부대로!" --하계동 메아리 제 699호

24 고창록 [peterkauh] 2006-02-26

 

[연중 제8주일]

 

“새 포도주 담는 새 가죽 부대가 되어!”

마르 2,18-22

 

흔히 성서의 예언자들은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들에게 베풀어 주시는 사랑을 남편의 아내에 대한 사랑에 비유합니다. 그리하여 하느님을 배반한 이스라엘을 간통한 아내에 비유하고 꾸짖으면서 야훼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응분의 벌을 내리실 것이라고 예언합니다(호세 1,4-9; 2,4-15; 3,4).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의 배은망덕에도 불구하고 한결같이 그들을 사랑하여 주신다고 언약하십니다.


호세아 예언자는 하느님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우리에게 상기시켜 주고 있습니다. 우리에 대한 하느님의 이 지극하신 사랑을 진실로 깨닫게 될 때, 우리는 그분께로 향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회개는 바로 하느님 사랑에 대한 참된 깨달음에서 시작됩니다. 그 깨달음이 이루어지도록 돕는 과정이 바로 하느님의 구원사업, 즉 선교가 아닌지요.


오늘 복음(마르 2,18-22)은 '단식논쟁' 과 '새 것과 헌 것'의 비교로 이루어집니다.

바리사이들은 매주 두 번 월요일과 목요일에 단식했습니다(루가 18,12). 또한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도 스승을 따라 자주 단식했는데 예수님의 열두 사도들은 속죄의 날을 제외하고는 단식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예수님께 "어째서 당신 제자들은 단식하지 않습니까?" 하고 묻자 예수께서는 "신랑이 혼인잔치에 함께 있는데 어떻게 손님들이 단식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십니다. 즉, 지금은 구약의 약속이 실현되어 구원이 이룩되는 혼인잔치 시대로서 예수님은 신랑이요 제자들은 손님들이라는 것입니다.


바리사이들과 요한의 제자들은 자신의 구원이 불확실하다는 두려운 마음 때문에 단식했으나, 예수님과 함께 하는 제자들은  이미 예수님을 통해서  구원의 기쁨을 누리고  있으므로 형식적인 단식에 얽매일 필요가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느님  나라를 상징하는 혼인잔치의 주인공인  신랑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죽음을 예고하시며 당신이 죽으면 제자들이 단식하게 될 것을 예언하십니다. 즉, 신랑이신 예수께서 죽으심으로 혼인잔치가 깨지게 되며 손님들인 제자들은 단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마르 2,21-22)의 상징, 즉 '새 것'(생 베 조각과 새 포도주)은 강하고 '헌것'(헌 옷, 헌 가죽부대)은 약해 서 서로 어울리지 않음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새것'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이룩된 '하느님의 나라'로서 유다 교의 테두리(헌 것) 안에서 그리스도교(새 것) 신앙생활을 하는 이들에게 '헌것(유다교 전통)'을 버리고 '새 것(그리스도교 전통)'만을 추구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단식할 때 위선자들처럼 사람들에게 과시하지 말라"(마태 6,16-18)는 말씀은 오히려 사람들 앞에서 단식한다는 것을 숨겨야만 숨은 것을 보시는 하느님께서 갚아주신다는 것입니다. 사람들과 어울릴 때는 먹고 마시고 즐기며 복음을 따라 기쁘게 살고, 홀로 있을 때는 기도와 단식으로써 하느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는 신앙생활이 필요한 것입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합니다.

 

 

 

 

 

 

 

 

 

 

 

 

 

[전례와 교리]

 

사순 시기 : 부활을 준비하며 통회와 보속으로 재를 지키는 40일의 기간

3월 1일(재의 수요일) - 4월 13일(최후 만찬일)

 

 

파스카의 축제를 준비하기 위해 설정된 40일간의 기간을 말한다. 사순 시기가 되면 신자들은 이미 받은 세례를 다시 생각하고 참회행위를 통해서 파스카의 신비체험을 준비한다. 이 시기는 재(灰)의 수요일부터 주님 만찬 미사 전까지 계속되며 사순 시기 시작부터 부활 전야제까지의 미사에서는 ‘알렐루야’를 하지 않는다. 사순 시기가 시작되는 수요일은 온 세계에서 단식일(斷食日)로 지내며 머리에 재를 얹는다. 이 시기의 주일은 사순 제1·2·3·4·5주일이라 부르고, 성주간(聖週間)이 시작되는 제6주일은 '주님 수난 성지 주일'이라고 부른다. 성주간은 메시아로서의 주님의 예루살렘 입성으로 시작해서 주님의 수난을 기념하기 위해 설정되었다. 성주간의 목요일 아침에는 주교가 사제단과 미사를 공동집전 하면서 성유(聖油)를 축성한다.

사순 시기 동안의 전례는 우선 사제의 제의(祭衣)의 빛깔이 보라색으로 바뀌고, '알렐루야'와 '대영광송'을 노래로 부르지 않고 엄숙한 분위기를 유지한다. 또 신자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광야에서 마귀의 유혹을 물리치고 엄격히 단식하던 것을 본받아 자신의 희생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실천하는 데 노력해야 한다. 이것은 자신을 이기는 극기(克己)의 자세를 요구한다. 40일 동안 단식과 금육(禁肉)을 통해 절약한 것을 모아 두었다가 가난한 이웃들에게 나눠주어야 한다. 이 기간 중의 단식은 재의 수요일과 주님 수난 성금요일에, 금육은 재의 수요일과 사순 시기의 모든 금

금육은 만 14세부터 모든 신자들이 지켜야 한다. 규정된 단식이나 금육 이외에도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며 기도, 미사참여, 사랑의 나눔 등을 실천해야 한다.


[재의 수요일 ]

사순절이 시작되는 첫날로 사순 제1주일 전(前) 수요일 을 말한다. 이날 교회가 미사 중에 참회의 상징으로 재 의 축성과 재를 머리에 얹는 예식을 행하는 데서 재의 수요일이라고 부른다. 즉 이날에는 그 전해의 주님 수난 성지 주일에 축성한 종려나무나 다른 나뭇가지를 한곳에 모아 불에 태워 만든 재를 사제가 축성하여 신자들의 머리 위에 십자모양으로 바르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람은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십시오”(창세 3,19), 혹은 “회심하고 복음을 믿으십시오”(마르 1,15).

이는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영원한 삶을 구하라는 장엄한 외침인 것이다. 재의 수요일은 교황 성 그레고리오 (St. Gregorius) 1세(재위 : 590∼604)에 의해 사순절의 첫날로 성립되었고, 바오로(Paulus) 6세(재위 : 1963∼1978)는 이날 전 세계교회가 단식과 금육을 지킬 것을 명하였다. 한국에서도 만21세부터 만 60세까지의 신자들은 하루 한 끼 단식하며 만14세부터의 모든 신자 들이 금육을 지킨다.

 

[구역과 본당 소식 ]


구역미사, 갈수록 적극성 더하고

일체감 속, 건의에 신앙적 열망 담겨!

 

구역미사에 갈수록 자발적 참여 열기가 고조되고 있습니다. 억지로 권유를 받고 참석하는 분위기는 옛 말이고 모든 구역 식구들이 매사에 적극적이며 형제자매들 간에 일체감은 더할 나위 없이 커지고 있습니다.

“양을 치는 목자가 양떼를 돌보듯이 하느님이 당신 백성을 보살피는 일이 사목이며, 교회의 본질적 사명에서 나오는 '인간 구원의 봉사활동이 사목입니다.

이 사목활동에 무슨 인위적 권위와 편견이 작용하여 하나같은 하느님의 아들딸들을 갈라놓을 수 있겠습니까!

양들이 무엇에 목말라 하는지, 고통은 무엇이며 불편은 어디에 있는지, 본당에 무엇을 고치기를 바라는지…. 격의 없이 귀 기울여 듣는 목자에게 성큼 다가서는 양들의 평화로운 모습!

자신의 존재가 주님을 가리거나 주님께 나아가는데 장애가 되지 않도록 하면서,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을 영접하는 진정한 길이 무엇인지를 이해 설득시키는 평화롭고 사랑 가득한 목자! 이것이 지금 우리 하계동 본당의 구역미사 분위기입니다.

“어린이 미사, 교리시 재미있는 성당, 가고싶은 성당, 아이들이 흥미를 느낄수 있는 성당을 만들어 달라.”

“미사시간 이외에는 영적성장을 위해 성당 로비에 성가를 틀어주자“, “성체조배실(경당) 설치해 달라”, “어른들을 위한 성서 모임 기회를 달라”, “고해성사시 사제들과 고해자들이 열린 상태 (얼굴을 마주보면서) 에서 대화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 이런 진솔한 건의 배경에는 구역 형제자매님들의 아름 답고 견실한 신심과 이웃 사랑 실천이 깔려 있습니다.

어려운 이웃과는 음식을 나누고 형제모임 시엔 묵주 기도를 하면서 뒤에 오는 형제를 기다리는(6구역) 등 실행 가능한 작은 일부터 모두가 서로에게 감동을 주는 모습으로 바뀌어 가고 있답니다.

이렇게 20개 전 구역의 미사가 모두 이루어질 즈음엔 본당 전체가 어떻게 변화되어 있을까요?!

                   

                                           "하느님 계신 동네:  하계동",  아멘!

 

 

❍ 침묵 속에서 ❍


만약 당신이 남들을 자신의 출세를 위한 발판으로 간주한다면 결코 리더가 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만인의 구원을 열망한다면 당신은 리더가 될 것이다.

(You will never be a leader if you see others only as stepping stones to get ahead. You will be a leader if you are ambitious for the salvation of all.)


- 성 요세 마리아 에스크리바(St. Josemaria Escriva) -

 

 

 

 

                                      ❍ 봄날의 명상 ❍

 


                            

                           들판이 아름다운 이유


                           들판이 저렇게 아름다운 것은

                           아무데서나 살지만

                           아무렇게나 살지 않는

                           들풀이 있기 때문이다.


                           쑥은 쑥잎을 내고

                           씀바귀는 쓰디쓴 잎을 내고

                           냉이는 냉이 꽃을 피워낸다.

                           작은 꽃일망정 정성껏 피우고서

                           있는 힘을 다하여 향기를 발하며 산다.


                           자기의 이름을 불러주지 않고

                           벌과 나비들이 외면할지라도

                           서러워하지 않고

                           그냥 더불어 있음을 감사하며


                           장미나 백합의 자리를 시기하지 않고

                           들풀은 들풀대로

                           아무데서나 들풀로 살아간다.

                           그러나 아무렇게나 살지는 않는다.


                                      

                                           - 기진호(화가, 시인)

 

 

 

 

[영적 먹거리]

 

                          

                                    ❍ 오늘의 묵상



 

  사랑은

  행동으로 증거합니다.

  우리 주님께서

  당신 수난의 쓴잔을

  끝까지 마시지 않았더라면

  그분의 사랑은 충족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사도의 가장 중요한 사명은

  행동으로 증거하는 사랑,

  즉, 사랑의 실천입니다.

 

 

 

 

❍ 나를 변화시켰더라면 ❍

 


다음 글은  웨스터민스터 민스터 대성당 지하에 있는 한 성공회 주교의 묘비에 새겨진 글이다.

 


“내가 젊고 자유로워서 상상력에 한계가 없을 때, 나는 세상을 변화시키겠다는 꿈을 가졌었다. 좀더 나이가 들고 지혜를 얻었을 때 나는 세상이 변하지 않으리라는 걸 알았다. 그래서 내 시야를 약간 좁혀 내가 살고 있는 나라를 변화시키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나 그것 역시 불가능한 일이었다.

 

황혼의 나이가 되었을 때 나는 마지막 시도로, 나와 가장 가까운 내 가족을 변화시키겠다고 마음을 정했다. 그러나 아무도 달라지지 않았다.

 

이제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누운 자리에서 나는 문득 깨닫는다. 만일 내가 내 자신을 먼저 변화시켰더라면, 그것을 보고 내 가족이 변화되었을 것을. 또한 그것에 용기를 얻어 내 나라를 더 좋은 곳으로 바꿀 수 있었을 것을. 그리고 누가 아는가, 세상도 변화되었을지!”

 

 

 

 (모든 교우 여러분께 새로운 희망과 주님의 은총,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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