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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백) 2024년 11월 21일 (목)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가리키시며 이르셨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하계동 메아리
"광야의 그대"--하계동 메아리 제 700호

26 고창록 [peterkauh] 2006-03-05

   

 

 

[사순 제1주일]


              “광야에 서 있는 그대; 유혹은 그대 마음에!”

                                                                  마르 1,12-15

 


 

  「예수님이 40일간 광야에서 지내셨다」는 것은 세상 구원을 위한 충분한 준비를 하셨음을 의미합니다. '40'이라는 숫자는 성서에서는 주로 부족하지 않고 꽉 찼다는 의미의 숫자로서 특히 어떤 시련이나 희생의 기간 을 다 채웠다는 것을 말합니다. 모세가 십계명을 받기 전 40일간 재를 지켰고, 그리고 엘리야는 천사가 주는 음식을 먹으며 40일을 걸어 호렙산으로 갔고,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탈출하여 가나안 복지로 가는 기간도 40년입니다. 그러기에 이 40일은 「어떤 중요한 일(구원)을 준비하는 기간」으로서 의미를 지닙니다. 특히 오늘 말씀의 주제가 되는 "광야에서의 유혹" 사건은 사탄과 동일시 되는 뱀의 유혹에 굴복한 에덴동산의 아담의 이야기에 비유됩니다. '사탄의 유혹에 넘어간 아담; 광야에서의 유혹을 물리친 신약의 아담, 예수님'을 새로운 구원의 시대를 펼쳐 나가실 메시아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런 신학적 의미 위에서 우리는 광야의 유혹이 오늘 우리 삶에 주는 교훈을 되새겨 봐야 하겠습니다. 그 핵심은 삶의 목표일 것입니다. 아담과 달리 예수님은 광야의 유혹을 물리치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사명, 즉 인류 구원이라는 삶의 목표를 분명히 설정하고 모든 역량을 하늘나라의 선포에 쏟아 부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유혹 사건 직후 본격적으로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였고, 비로소 메시아로서 자신의 활동을 시작하셨던 점이 그것을 뒷받침합니다.


 바로 오늘 복음의 주제인 "광야의 유혹"에서 얻는 교훈은 우리도 예수님처럼 자신의 삶의 목표를 굳건히 함으로써 사탄의 온갖 유혹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복음적인 삶에 정진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령의 인도로 광야로 나가셨던 예수님을 본받아 성령을 통해 들려오는 하느님의 소리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주님께서 마련해주신 이 은혜로운 시기, 우리는 성령의 인도로 광야에 서 있습니다. 적당히 타협하고 거짓부리면 쉽고 편안하고 감미로와 보이는 삶의 방법들이 우리에게 손짓합니다. 아니

얼마간은 이미 그 속에 빠져 있는 죄인 아닌가요? 주님의 말씀에 귀 기울입시다.


“하느님 나라가 다가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인간의 역사가 마감되어 하느님의 통치가 시작되었음을 자각하고 스스로 변화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가슴 한 구석 인간적 탐욕의 유혹에 굴복하여 이루어지는 일은 없습니다. 그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는 우리는 하느님 앞에서 모두 죄인입니다. 그분 앞에 떳떳하게 나설 수 있는 인생은 아무도 없습니다. 위선과 가식을 벗고 회개합시다. 변화합시다. 그래야 이 사순 시기가 은혜로운 시기가 됩니다.

예수님 부활을 아무리 외치고 기뻐한들 자기 자신이 부활하지 못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회개하고 변화할 때 사순절은 은혜로운 시기입니다.

제1독서에서 하느님께서 썩어빠진 세상을 홍수로 벌하신 다음에 노아를 통해서 새 세상을 열어 주셨다는 말씀과 다시는 '물'로 심판 하지 않으시리라는 그분의 약속이 나옵니다. 그 약속의 표가 바로 무지개입니다. 따라서 인간은 그 약속의 말씀을 믿고 새 삶의 길을 걸어야 합니다. 변화된 생활 안에서만 축복의 무지개가 뜨게 되어 있으니까요.



[전례와 교리]


사순절; 단식과 금육; 카니발


사순 : 3월 1일(재의 수요일) - 4월 13일(최후 만찬일)

: 부활을 준비하며 통회와 보속으로 재를 지키는 40일의 기간

 

   [사순 세는 법]
 
동방교회는 600년경부터 7주간을 지켰습니다. 토요일과 주일을 제외하고 성지주일을 포함하여        36일간으로 정했으며, 서방교회는 6주간, 주일을 제외하고 36일을 지켰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4세기 때처럼 40일을 지켰으며, 8주간 중 5일만 단식하였습니다.


 [단식과 금육]
사순절 기간 동안의 단식과 금욕은 초기 교회 때부터 전통적으로 장려되었으며, 그 규정은   나라마다 조금씩 다릅니다.


[단식]
우리나라에서는 만 21세부터 59세까지의 신자들이 사순절의 시작인 재의 수요일과 그리스도가 돌아가신 성금요일에 지키는데, 한 끼 식사(점심)는 정식으로 하고 나머지 두 끼는 아주 적게 먹는 것을 말합니다.


 [금육]
 
만 14세부터 모든 신자들이 지켜야 합니다. 재의 수요일과 40일 동안의 매 주 금요일이면 고기를 먹지 않도록 금하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단식재와 금육재는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외식을 할 경우와 환자, 운동선수, 여행자 등 단식을 할 수 없는 사유가 생기면 면제되기도 합니다.
보다 중요한 것은 단식과 금육의 의미는 그 정신 자세에 있습니다.
첫째는 재를 지키는 예수님의 뜻과 자세를 본받는 것이며 극기하는 마음가짐을 본받는 것입니다.
둘째는 단식과 금욕으로 절약한 것을 서로 모아서 이웃과 나누는 봉사와 희생, 나눔으로써 사랑을 실천할 것을 다짐하는 것입니다.


 [카니발(Carnival / 謝肉祭)]
부활 전 40일 광야에서 기도하신 예수님을 생각하며 금육과 참회로 정신자세를 가다듬는 일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중세에 와서 속화정신으로 흐른 것입니다.

40여일의 금욕기간에 못먹고 못 마실 것에 대비하여 사순절 전에 3~7일쯤 실컷 먹고 흥겹게 마시며 사순절을 준비한다는 것입니다.

 카니발의 기원은 로마시대 동지제(12월 17일)로서 이교적인 제사에서 연유하였고 초기의 카니발은 공현축일(1월 6일)로부터 사순절 전날까지였으나 역대 교황들은 재의 수요일 6~7일로 국한시켰습니다.
매년 남미의 다혈질적인 국민들이 대대적인 축제를 벌이고 이를 구경하거나 함께 즐기기 위해 많은 관광관객이 몰려드는 것은 바로 이로부터 유래한 것이며, 우리나라의 일부 대학들이 봄철에 면학에 힘쓰기 위한 준비기간의 의미로 축제(carnival)를 벌이는 것도 바로 사순절에서 유래합니다.”
일부에선 이 축제를 위해 1년을 산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세속화된 경향에는 숙고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사순절은 희망]


“사순절은 희망입니다.

참회와 죄인임을 고백하는 일은

그것이 바로 바로 희망을 생성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지혜가 있어도

그것을 사용할 용기가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듯이

아무리 믿음이 돈독해도

희망이 없으면 아무런 가치도 없습니다.

희망은 언제나 사람과 함께 있으면서

악과 불행을 극복합니다.”


- 마틴 루터 킹


 

예수님 따라 영적 광야로

세례를 받은 예수님은 광야로 나가서
40일 동안 단식하신 후 악마의 유혹을 받으셨
습니다. 세 가지 큰 유혹을 이겨내신 예수님의
이야기는 우리 자신의 신앙을 지키는 방패가
됩니다. 사순절은 일생에 걸친 정화와 준비를
더욱 집중적으로 체험하도록 '영적 광야'로 부
르시는 그분의 초대입니다. 
주님! 저를 비추시어 진리와 인정을 따라
살도록 도와주시고 정당치 못한 일들을 과감
하게 거절할 수 있는 용기를 주십시오.
. 아멘

 



[영적 먹거리]



                ❍ 오늘의 묵상


               “의로운 사람에게 말하여라
                그들에게 복이 있고,
               그들이 한 일에 보답을 받고,
               기쁨을 누릴 것이라고 말하여라.
               악한 자에게는 화가 미칠 것이다.
               재난이 그들을 뒤덮을 것이다.
               그들이 저지른 그대로 보복을 받을 것이다.
               아이들이 내 백성을 억누르며,
               여인들이 백성을 다스린다.
               내 백성아,
               네 지도자들이 길을 잘못 들게 하며,
               가야 할 길에서 벗어나게 하는구나.’”

         - 이사야 3,10-12

 

 ❍ 의인은 상을 받으리니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듯,

     재난이 닥쳐도 살아날 사람이 있습니다.

     이사야가 말하는 주님의 날,

     그 날이 와도 의인들은 복을 받습니다.


     망하는 세상 가운데서 살아나는 것도 복이요,

     살아나지 못하더라도 주님 안에서는 복입니다.

     악인에게는 살아도, 죽어도 지옥이지만

     의인에게는 살아도, 죽어도 천국입니다.


     나라를 망하게 하는 책임은 어디에 있습니까?

     이사야는 지도자들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주님께서 징벌하시는 그 날이 올 때에,

     지도자들이 더 큰 벌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 길 위의 명상
 

 

   굽이 돌아가는 길

 

 


 

 

 올곧게 뻗은 나무들보다는
      휘어 자란 소나무가 더 멋있습니다.

      바로 흘러가는 물줄기보다는
      휘청 굽이친 강줄기가 더 정답습니다.

      일직선으로 뚫린 빠른 길보다는
      산 따라 물 따라 가는 길이 더 아름답습니다.

      곧은길이 끊어져 길이 없다고
      주저앉지 마십시오.
      돌아서지 마십시오.

      삶은 가는 것입니다.
      그래도 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있다는 것은
      아직도 가야 할 길이 있다는 것

      곧은 길만이 길이 아닙니다.
      빛나는 길만이 길이 아닙니다.

      굽이돌아 가는 길이 멀고 쓰라릴지라도
      그래서 더 깊고 환해져 오는 길

      서둘지 말고 가는 것입니다.
      서로가 길이 되어 가는 것입니다.
      생을 두고 끝까지 가는 것입니다.


- 박노해(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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