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중 제23주일(나해-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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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 전창문 [cmjun] 2003-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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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3주일(나해-03)
2003. 09. 07.
오늘은 연중 제23주일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많은 신체적 장애인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신체적 장애의 종류도 여러 가지입니다. 보지 못하는 사람, 듣지 못하는 사람, 말하지 못하는 사람, 걷지 못하는 사람 등 많은 종류의 장애와 장애인들이 있습니다. 이곳에 계신 여러분은 모두가 신체적으로 건강한 분이시기에 신체적 장애인들이 겪는 아픔과 고통을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장애인에 대한 저의 솔직한 생각은 신체적 어느 한 부분의 장애로 인해 좀 불편하겠구나 하는 마음 정도뿐입니다. 신체적 장애인들이 겪는 행동의 불편함과 그로 인해 사회로부터 받는 냉대와 멸시, 똑같은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주어지는 사회적 불이익, 그리고 이런 것 때문에 당하는 아픔과 고통을 실감나게 피부로 느끼지 못하는 것이 저의 솔직한 마음입니다.
그래서인지 건강할 때 건강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 해 본적이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신체 장애인들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공감한다면 나에게 건강을 주신 하느님께 더욱 감사드리고 하느님의 소리를 듣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저는 신체적으로는 멀쩡하지만 또 다른 귀머거리요, 반벙어리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멀쩡한 귀로 하느님의 소리를 듣지 못하고, 입으로 하느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릴 줄 모르는 사람이라면 또 다른 영적 귀머거리요 반벙어리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오늘 복음 말씀을 보면 사람들이 귀먹은 반벙어리를 예수님께 데리고 와 고쳐주기를 청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를 불러내어 손가락을 그의 귀에 넣으셨다가 침을 발라 그의 혀에 대시고 하늘을 우러러 한숨을 내쉰 다음에 "에파타" 즉 "열려라"하는 말씀으로 치유해 주십니다. 그때부터 그는 귀가 열리고 혀가 풀려서 말을 제대로 하게 되었고 하느님을 찬양하였다고 복음성서는 전해주고 있습니다.
귀먹은 반벙어리를 치유해 주신 예수님의 행적을 이렇게 묵상해 봅니다. 세상에는 신체적 장애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영적 장애도 있습니다. 우리도 한때 하느님을 알기 전에는 오늘 복음에 나오는 귀먹은 반벙어리처럼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귀가 닫혀있었고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입이 막힌 영적인 장애인이었습니다. 이런 영적 장애로 인해 하느님의 나라를 차지하지 못하는 불이익과 죄악 속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누군가가 나를 이끌어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고 닫혔던 귀와 막혔던 입을 열게 해주시도록 간청하자 예수님은 우리의 귀와 입을 열어 주셨고 당신의 자녀가 되게 해 주셨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세례성사를 통해 귀가 열려 하느님의 말씀을 듣게 되고 혀가 풀려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아버지이신 하느님을 찬양하고 다른 이들에게 전하게 되었습니다. 세례성사를 받으므로 귀가 열려 하느님의 말씀을 듣게 되고 혀가 풀려 하느님을 전하게 되었다는 것은 하느님 말씀인 성경을 받아들이고, 믿고, 전하고, 생활화하는 한마디로 복음의 정신인 사랑에 살고 실천하는 삶을 의미합니다. 그런데도 세례성사로 하느님의 자녀가 된 우리가 아직도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말하지 않는다면 즉 복음의 정신인 사랑에 살려는 노력이 없다면 귀머거리요, 반벙어리와 다를 바가 없을 것입니다.
사람에게 두 귀와 하나의 입이 있는 것은 많이 듣고, 적게 말하기 위함이라고들 말합니다. 자신에게 달콤한 말뿐이 아니라 쓴말도 잘 들을 수 있는 사람이라야 성숙한 인간인 것입니다. 그래서 예로부터 귀가 큰 사람을 귀골에 티가 나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를 사는 우리는 귀는 점점 작아지고 입만 커지는 것 같습니다. 그런 까닭에 남의 말을 듣는데는 인색하고 자기 말만 하려고 합니다. 남의 말을 잘 들어주기 위해 두 개의 귀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말만을 하기 때문에 입이 커지고 심지어는 수다쟁이로 변하고 더 나아가 교만과 아집에 빠져 자기만이 최고라는 우월과 이기주의의 누를 범하기도 합니다. 세례성사를 받은 우리의 두 귀와 입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전하는 도구가 되어야 하는데 때로는 인간의 말을 듣고 인간의 말만을 하기도 합니다.
들어야 할 것을 듣지 않고 말을 하여야 할 때 하지 않거나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한다면 그런 사람은 자기 소리를 듣고 자기 말을 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더구나 우리의 혀로써 남을 헐뜯고 비방하거나 언짢은 말이나 욕설로 남의 마음을 상해주고 아프게 하여 준다면 그런 사람은 귀머거리나 벙어리보다 못한 사람입니다. 또한 하느님의 자녀라고 자부하는 우리가 하느님 말씀을 듣지 않고 하느님의 말씀을 이웃에게 전하지 못한다면 즉 사랑을 실천할 의지가 없다면 귀머거리요 반벙어리와 다를 바 없습니다.
우리 모두가 교만한 마음에서 벗어나 이런 영적 장애에서 치유를 받아 하느님의 생각을 알아듣고 하느님께서 말씀하시는 말을 가족과 이웃과 교회에서 한다면 우리가 사는 공동체는 더욱 아름다운 공동체요, 사랑과 일치와 나눔이 이루어지는 하느님 나라의 공동체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될 때 내가 속해 있는 공동체 안에서 서로가 서로를 미워하고 시기하고 다투는 분열의 모습은 사라질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가정에서 가족 모두가 자기의 생각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말하려고 한다면 그 가정은 하느님이 원하시는 사랑이 넘치는 가정, 평화와 은총이 충만한 성가정이 될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는 저 자신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말하는데 인색한 귀머거리요 벙어리임을 생각할 때 부끄럽기 이를 데 없습니다. 사제 생활을 하면서 교만과 아집에 빠져 내 말과 생각을 고집한 경우가 너무 많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이들에게 하느님의 겸손을 본받아 하느님 말씀을 듣고 말하는 봉사자로 살겠다고 결심하면서도 저도 모르는 사이 남의 조언을 듣기보다는 달콤한 말을 가려서 듣게 되고 하느님 말씀으로가 아닌 내 말로서 타인의 마음을 상하게 한 일리 비일비재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 말씀을 통해 나 자신을 반성하고 막혔던 귀와 입을 열어주시도록 기도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에게 더욱 봉사하고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여주는 사제가 되고자 노력합니다. 여러분 역시 자기의 생각과 말을 버리고 하느님의 소리와 말로써 듣고 말하는 신앙인으로 살아갈 때 여러분의 가정과 우리 이문동 본당이 일치된 모습으로 하느님 나라 왕국을 건설할 수 있고 이 지역에서 힘차게 복음을 선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반벙어리를 치유해 주신 하느님께 우리 모두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영적인 장애를 치유해 주시도록 간청해야 하겠습니다. 아직도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말하기보다는 교만과 아집으로 내 말만 하고 들으려는 귀머거리와 벙어리로 살고 있음에 대해 이 미사를 통해 내 귀를 열어 주시고 내 입을 풀어 주시도록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하느님은 구하는 자에게 분명히 들어주신다고 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