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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백) 2024년 11월 21일 (목)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가리키시며 이르셨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사순 제5주일(다해-04)

169 전창문 [cmjun] 2004-03-28

사순 제5주일(다해-04)

                                                  2004. 03. 28

 

   오늘은 사순 제5주일입니다. 사순절을 마무리하는 이 시기에 무엇보다 해야 할 일은 나의 삶을 끊임없이 쇄신하고자 하는 참회와 회개입니다. 때문에 오늘 복음도 지난주의 탕자의 비유에 이어 주님의 사랑과 자비의 모습인 용서로 새 삶을 시작한 간음한 여인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율법학자와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간음한 여인을 예수께 데리고 와서 "선생님 이 여자가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혔습니다. 우리의 모세 법에 의하면 이런 여자는 돌로 쳐죽이라고 했는데 선생님 생각은 어떻습니까?" 하고 질문합니다. 예수님은 땅바닥에 무엇인가를 쓰신 후 대답을 재촉하는 이들에게, "누구든지 죄 없는 사람이 먼저 저 여자를 돌로 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나이 많은 이들부터 하나 둘씩 가버리고 여인만 남게 됩니다. 예수님은 여인에게 "너를 죄인으로 판단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도 네 죄를 묻지 않겠다. 어서 돌아가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말라."하시므로, 간음한 여인이 새 삶을 시작하게 됐다는 내용입니다.

 

   한 때 법무부는 간통죄 폐지를 검토한 바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 각계의 반응은 폐지와 존속을 주장하는 두 의견으로 팽배했습니다. 폐지하자는 이들은 간통죄는 봉건적인 법률로, 부부간의 성실 의무 위반은 이혼 등의 방법으로 스스로 해결해야지, 형법이 개입해야 할 여지가 없다는 뜻에서 폐지를 주장하고 있고, 존속하자는 이들은 전통적인 윤리관이 무너지고, 성 윤리를 더욱 타락시키는 결과를 낳기 때문에 폐지는 부당하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헌법 재판소의 판결은 간통죄를 처벌하는 것은 혼인제도 유지 등을 위해 불가피한 것이긴 하지만 앞으로 간통죄 폐지 여부에 대한 진지한 접근이 요구된다고 결정한 바 있습니다. 간통죄 존속이나 폐지를 논하기보다는 성(性)의 문란으로 인해, 윤리 도덕의 붕괴나 가정 파괴가 없도록 부부간의 신의를 지키는 책임의식이 우선되어야 하겠습니다. 성은 쾌락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창조 사업의 참여에 그 참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간음은 고대에서부터 성행해 왔습니다. 예수님 이전에도 간음죄는 우상 숭배, 살인과 함께 3대 범죄 중 하나로, 이런 죄를 범했을 때는 즉시 죽여야 한다고 유대 율법은 규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레위기 20;10절은 "이웃집 아내와 간통한 사람이 있으면, 그 간통한 남자와 여자는 반드시 함께 사형을 당해야 한다."고 규정했고, 신명기 22;42절에서는 "둘 다 돌로 쳐죽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바리사이나 율법학자의 견해는 극히 율법적인 생각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이들이 간음한 여인을 예수께 데려 온 것은 예수님을 자기 모순에 빠지게 하거나 율법을 거스르는 자로 만들므로, 고소할 수 있는 구실을 잡기 위한 올가미를 씌우려는 악의적인 의도 때문이었습니다.

 

   그 올가미란 예수님이 돌로 쳐죽이라고 한다면, 기회 있을 때마다 이웃을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은 말짱 거짓말이 될 것입니다. 동시에 점령국인 로마법에는 유대인은 누구를 막론하고 사형 선고를 하거나 사형을 집행할 권한이 없기 때문에 로마법을 거스르는 범죄자가 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만일 그 여자를 용서해야 한다는 결정을 내린다면, 예수님은 율법을 어길 뿐 아니라 간음죄를 조장하는 자라고 몰아칠 판이었습니다. 이런 진퇴 양난의 궁지에 몰린 예수님은 땅바닥에 무엇인가를 쓰신 후에,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 없는 사람이 먼저 저 여인을 돌로 쳐라."고 말씀하심으로, 이들의 간교함을 지혜롭게 물리치십니다. 예수님이 땅바닥에 무엇인가를 쓰셨다고 했는데 무엇을 쓰셨는지 확실히 알 수 없지만, 왜경에 의하면 예수님께서 거기에 있던 자들의 죄상을 쓰심으로 그들 자신이 죄인임을 자각하게 하셨다고 말합니다. 죄 없는 자 먼저 돌로 치라는 말씀에, 나이 많은 이들로부터 하나 둘씩 가 버리고 그 자리에는 여인만이 남게 됩니다. 죄 없는 사람이 돌을 던지라는 말씀에 아무도 여인을 죄인으로 단죄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자리에 있던 사람뿐 아니라 우리 모두가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모두 물러간 뒤 간음한 여인은 예수님으로부터 기쁜 소식을 듣게 됩니다. "나도 네 죄를 묻지 않겠다. 어서 돌아가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말라."고 하심으로 여인에게 희망을 주었고 간음한 여인은 과거의 죄를 모두 탕감 받고 새 삶을 시작 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몇 가지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첫째로 우리는 남의 죄를 판단 할 수도 판단해서도 안된 다는 것입니다. 흔히 우리는 바리사이나 율법학자들이 간음한 여인을 죄인으로 단죄하려고 한 것처럼 남을 쉽게 판단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너희도 잘못하고 있고 잘못 할 수 있기 때문에 남의 잘못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십니다. 더욱이 마태오 7장 1절에서 "남을 판단하지 말아라. 그러면 너희도 판단 받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셨고, 7장 3-5절에서는 "어찌하여 너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제 눈 속에 들어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하신 말씀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사람을 함부로 판단할 수 없습니다. 판단할 자격 그것은 선행의 완성인데 그것을 갖춘 사람은 아무도 없고, 어떠한 인간도 남을 판단하고 심판 할 만큼 선량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우리 모두는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 없는 사람이 저 여자를 돌로 쳐라"고 했을 때, 아무도 돌을 던지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자기 과거를 돌이켜 보니 너무나 많은 죄를 지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기에 나이 많은 이들로부터 하나 하나씩 떠나갔습니다. 이 표현은 이 세상에 오래 살아 갈수록 더 많은 죄를 짓는 것이 나약한 인간이라는 의미일 것입니다. 셋째로 예수님은 어떠한 죄인에게도, 심지어 간음 같은 즉시 사형을 당할 큰 죄인까지도 죄인으로 단죄하지 않고 용서와 자비를 베푸시며 새 삶을 살게 해주시는 사랑의 주님이십니다. "나도 네 죄를 묻지 않겠다. 어서 돌아가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말라."는 말씀은 간음한 여인에게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도 희망을 주는 기쁜 소식입니다.

 

   제1독서에서 이사야 예언자가, "지나간 일을 생각하지 말라. 흘러간 일에 마음을 두지 말라"고 하셨듯이 하느님은 과거의 우리 죄를 묻지 않으시고 계속해서 용서와 자비로 사랑을 베풀어주시는 분이십니다. 따라서 우리가 새 삶을 살기 위해서는 하느님을 신뢰하고 화해하는 길뿐입니다. 오늘 복음의 간음한 여인은 곧 나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구약의 예언자들은 하느님을 등지고 다른 것을 숭배하는 것을 간음이라고 했기 때문에 모든 죄악은 간음죄와 다를 바 없습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 모두는 하느님보다는 돈과 명예와 권력과 쾌락에 더 큰 애착을 가지므로 죄를 지어 간음을 범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남의 조그마한 허물을 용서하지 못하고 남의 판단하고 심판하는 습성에 빠져 있습니다.

 

   결론으로 오늘 복음은 우리도 간음한 여인처럼 잘못을 저지를 수 있는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남을 함부로 판단하거나 심판하지 말고 잘못한 이들을 관용과 사랑으로 용서할 때 우리도 하느님의 용서와 자비를 받을 수 있다는 가르침입니다. 이 미사를 통해 남을 함부로 판단하거나 비판하는 그릇된 습성을 버리고, 나의 잘못을 진정으로 뉘우치고 하느님의 용서를 받아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고 막바지에 이른 사순절을 잘 마무리하도록 하느님의 도우심을 청해야 하겠습니다.

 

   "누구든지 죄 없는 사람이 먼저 저 여자를 돌로 쳐라."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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