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중 제 22 주일 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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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 류달현 [dalbong6] 2002-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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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우 여러분, 한 주일 동안 안녕하셨습니까? 가을이 오는 가 싶었더니 요즘의 날씨와 태풍으로 인해 여름으로 다시 돌아가는 기분입니다. 요즘 감기와 눈병이 유행이라고 하니 건강에 조심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사실 저는 그동안 안녕하지 못 했습니다. 왜냐 아버지같으신 주임신부님께서 계시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신부님이 계시지 않으시니 왠지 밥맛도 없고 일도 잘 되지 않아서 참으로 견디기 힘든 나날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저도 안녕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드디어 그렇게 보고 싶었던 주임신부님께서 오십니다. 교우 여러분, 제가 신부님 없는 동안 무지 열심히 일했고 주인신부님 많이 그리워했다고 살짝 전해주십시오. 제가 이 말하라고 했다는 이야기는 빼고 말입니다.
미국의 흑인 인권을 위해 평생을 애써온 마틴 루터 킹 목사는 미국 몽고메리에서 인종 차별을 하는 버스의 승차 거부 운동을 하다가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는 그 때 28세밖에 안 청년 목사였습니다. 그는 투옥되어 있으면서 '네 원수를 사랑하는'는 제목으로 설교를 한 편 썼는 데 그 설교문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그대가 나를 투옥해도 그대를 사랑합니다. 우리 집에 폭탄을 던지고 우리 아이들을 위협해도 그대를 사랑합니다. 한밤중에 우리 마을을 습격하여 우리를 때리고 반쯤 죽여 놓아도 그대를 사랑합니다. 우리의 대장은 예수님이시고 우리의 깃발은 하느님이시니 결국 어느 날인가 사랑이 승리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승리는 우리 흑인만의 승리가 아니라 전세계에서 차별받고 사는 모든 민중의 승리이므로 우리는 이중의 승리를 거둘 것입니다." 그의 인내와 사랑, 투지와 용기는 예수님을 믿음에서 나왔습니다. 그는 원수를 사랑할 수 있는 비결에 대해 말하기를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생각하기 전에는 원수사랑은 불가능한 일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로 하여금 이처럼 불가능할 것 같은, 있을 수 없을 것만 같은 사랑을 가능하게 합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이 십자가를 지셔야 할 것임을 예고하신 것은 필립보의 가이사리아에서 돌아오시던 때였습니다. 그 곳에서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위대한 고백을 들으셨고 (당신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라는 고백) 오시면서 자신이 예루살렘에 올라가 원로들과 대사제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한 후 3일 후에 살아나야 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에게 있어서 이 수난 예고야말로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모두 그럴 수 없다고 막았는 데 특별히 베드로는 "주님, 안 됩니다. 결코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라며 강력하게 만류했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는 "사탄아, 물러가라. 너는 하느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을 생각하는구나"라고 하셨습니다. 베드로의 만류는 주님에 대한 인간적인 염려는 되었지만 하느님의 구원 계획을 가로막는 것이었습니다. 베드로를 비롯한 모든 제자들이 처음에 예수님을 따르게 된 동기는 순수한 신앙적 차원에서가 아니라 어쩌면 로마의 압제 하에 있는 이스라엘의 해방을 위한 길을 예수님에게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 정치적 차원이었습니다. 또 그렇게 될 때 자신들도 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는 기대감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기대감과 생각은 예수님께서 병든 자를 고쳐주시고,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시고, 또 많은 이적을 행하셔서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었고, 그의 가르침이 권위가 있었기 때문에 흩어지고 부서진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로 묶어내자 더욱 크게 자랐습니다.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측면에서 예수님을 본다면 그는 분명 이스라엘에 해방을 가져다 줄 희망이었습니다. 이러한 희망에 베드로와 모든 제자들은 자신들의 전 존재를 걸었습니다. 그러므로 베드로나 제자들에게 이스라엘의 희망인 예수님이 유대의 집권자들에게 죽임을 당한다고 하는 것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충성심과 의협심으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막아보겠다고 나섰던 것입니다. 이 베드로의 말을 들으신 예수님께서는 기뻐하시기는 커녕 오히려 그를 사탄이라고 하시면서 크게 꾸짖으셨습니다. 이 제자들이 예수님을 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십자가 상 죽음과 부활이 있어야 했습니다. 제자들은 부활이라는 전대미문의 사건을 겪고서야 스승인 예수님을 비로서 제대로 이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큰 뜻을 지금 제자들이 이해하기에는 무리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일과 사람이 일이 다르다고 주장하십니다. 사람에게 좋은 것이라고 모두 하느님께 좋은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명령에 절대 순종하여 하느님 백성인 우리 인간들의 구원을 위하여 세상에 오셨습니다. 눈 앞에 보이는 당장의 고통을 피하는 것이 스승을 위하는 것인 줄 알았던 순진한 신앙을 가진 것처럼 보이는 베드로의 '신앙'을 사탄으로 꾸짖으신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의 나라를 이 땅에 건설하는 길은 청년 예수가 보여주신 절대 자기 부인의 십자가를 지는 삶이라고 말입니다. 그 십자가를 피하는 것이 아니라 용기를 가지고 지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나의, 우리 가족의 안위만을 생각하고 편하고 쉬운 길만을 가는 것이 아니라 좀 더 커다란 이익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할 줄 아는 남들이 다 가는 편안하고 넓은 문이 아니라 좁은 문으로 달려갈 줄 아는 '신앙인'으로 거듭나라고 당부하고 계십니다.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