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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강론
연중 31 주일(가해)

200 양권식 [ysimeon] 2008-11-01

 

연중 31 주일(가해)
11월은 죽은 영혼들을 위해 특별히 기도하는 위령성월이면서, 오늘(11월 2일)은 연옥에서 고통 받는 영혼들이 하느님 나라로 빨리 들어가도록 기도하며 미사를 봉헌하는 위령의 날입니다. 사실은 어제 ‘모든 성인의 날’이 그리스도 신앙의 초기부터 죽은 모든 이들을 기억하는 날이었습니다. 12세기 연옥에 대한 사상이 보급되면서 11월 1일은 모든 성인의 날이 되고, 2일은 연옥에 있는 모든 영혼들을 위해 기도하는 날로 분리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제는 영광스럽게 된 모든 이들을 기억하고, 오늘은 아직 하느님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한 분들을 기억하는 날로 남았습니다.
그리스도 신앙의 초기부터 살아 있는 사람들은 돌아가신 분들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4세기,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어머니 모니카 성녀는 임종을 맞이하여 아들에게 “주님의 제대에서” 자기를 항상 기억해 달라고 부탁한 기록이 있습니다. 지금도 유럽의 옛날 성당들 안에는 군주들과 주교들, 소위 그 시대 실세들의 유해가 보존되어 있습니다. 죽음 후에 그들을 위해 기도해 달라는 그들의 유지가 함께 담겨 있는 그들의 석관(石棺), 곧 무덤들입니다.
오늘 모든 사제는 3대의 위령 미사를 봉헌할 수 있습니다. 이 특전은 15세기 ‘도미니코 수도회’에서 시작되었고, 제1차 세계 대전 중에는 전사자들을 기억하기 위해 모든 사제에게 주어졌습니다. 그리고 3대의 미사 중 한 대는 예물을 받을 수 있고, 두 번째 미사는 모든 연옥 영혼들을 위하여, 셋째 미사는 교황의 지향에 따라 봉헌합니다. 교회는 11월 1일부터 8일까지 묘지를 방문하고, 세상을 떠난 이들을 위해 기도할 것을 권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렇게 특별히 기도하는 것은, 성인품에는 오르지 못했지만 그리스도를 믿고 살아온 평범한 백성에게도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승리로 인한 몫이 부여되기를 바라는 희망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와 유명(幽明)을 달리하신 우리의 부모님, 조부모님, 그리고 친척 친지 모두를 위해 기도합니다. 그분들은 이 세상에서 우리와 잠시 혹은 길게 인연을 맺고 사셨습니다. 돌아가신 모든 분을 위해 기도하는 오늘, 우리가 그분들을 기억하는 것은 하느님 안에 우리 모두가 함께 살아있다는 사실을 새삼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떠난 분들도 하느님 안에 살아 계시다는 우리의 믿음입니다.
우리가 죽은 이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또 이미 돌아가신 성인들께 기도를 부탁드릴 수 있는 것은 “성인들의 통공”을 믿고 고백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인 의미에서 성인(聖人)은 은총의 상태에 있는 모든 사람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성인들의 통공”은 세례 받은 모든 이를 삼위일체의 신비 안에 하나로 결합시키는 신앙과 사랑의 통교를 의미합니다. 그러니 지상에 있는 신도들과 천상에 있는 복자들과 연옥 영혼들이 모두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며 영적인 것들을 서로 나누는 것이 가능한 것입니다.
이렇게 죽은 이를 기억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날인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의 행복선언이 담겨있는 진복팔단을 들려주고 있습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행복하여라, 온유한 사람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
행복하여라,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그들은 흡족해질 것이다.
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예수님은 당신의 첫 대중설교를 산 위에서 행하십니다. 그래서 산상수훈이라고 합니다. 그 설교의 내용이 진정한 행복 여덟 가지를 말씀하고 계시기에 진복팔단이라고 불립니다. 이 설교를 듣고 있는 사람들은 갈릴레아 호숫가에서 살아가던 아주 평범한 사람들이었고, 이 평범한 소시민이었던 청중들을 향하여 당신들은 행복한 사람들이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들은 큰 욕심 없이 사는 마음이 가난한 이들이었고, 살면서 마음 한곳 크고 작은 슬픔을 지니고 사는 이들이었으며, 그저 남에게 싫은 소리도 못하고 사는 온유한 이들이며, 세상이 의로워 지기를 비는 작은 소망을 지니고 사는 사람들이었고, 이웃의 아픔을 지나치지 못하는 자비로운 이들이며, 작은 불찰과 죄에도 힘들어 하는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이며, 남들과 싸우고 나서는 오래 토라지지도 못하고 금세 화해를 청하고 사는 평화로운 사람들이며, 세상의 불공평과 가진 자들의 횡포에 무방비 상태로 당할 수밖에 없는 힘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바로 당신의 무릎 앞에서 당신의 설교를 듣고 있던 이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당신들이 행복하다 시는 것입니다. 그저 내세울게 없는 평범한 사람이 행복하다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곱씹어 봅니다. 왜 가난하고, 슬픈 이들, 온유한 사람이 힘겨운 삶을 살아가고 있음을 다 알고 계시는 분께서 이런 말씀을 하시는 걸까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욕심 없이 사는 삶이 욕심 속에 사는 것 보단 행복합니다. 모든 것이 원하는 대로 다 되어서 교만해 지는 것 보단 내 힘으로 어쩔 수 없는 것을 마음으로 간직한 채 슬프지만 소박하게 살아가는 삶이 행복하겠지요. 내 것을 철저히 챙기기 위해 악다구니를 쓰고 사느니 보단 남에게 싫은 소리 못하고 사는 온유한 삶이 훨씬 더 행복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고 보니 예수님의 진복팔단의 말씀은 인생의 지혜의 진수를 꾀 뚫고 있음이 너무나 자명합니다. 저는 일러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 중계동 교우들을 잘 알고 있습니다.
“행복하여라, 중계동 신자들처럼 살아가는 사람들, 당신들은 하느님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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