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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말씀 및 우리들 묵상 나눔 코너
이야깃거리를 만들어 주시는 분 - 윤경재

110 윤경재 [whatayun] 2010-12-23

 
 

이야깃거리를 만들어 주시는 분 - 윤경재

 

엘리사벳은 해산달이 차서 아들을 낳았다. 이웃과 친척들은 주님께서 엘리사벳에게 큰 자비를 베푸셨다는 것을 듣고, 그와 함께 기뻐하였다. 여드레째 되는 날, 그들은 아기의 할례식에 갔다가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아기를 즈카르야라고 부르려 하였다. 그러나 아기 어머니는 “안 됩니다. 요한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들은 “당신의 친척 가운데에는 그런 이름을 가진 이가 없습니다.” 하며, 그 아버지에게 아기의 이름을 무엇이라 하겠느냐고 손짓으로 물었다. 즈카르야는 글 쓰는 판을 달라고 하여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고 썼다. 그러자 모두 놀라워하였다. 그때에 즈카르야는 즉시 입이 열리고 혀가 풀려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그리하여 이웃이 모두 두려움에 휩싸였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이 유다의 온 산악 지방에서 화제가 되었다. 소문을 들은 이들은 모두 그것을 마음에 새기며, “이 아기가 대체 무엇이 될 것인가?” 하고 말하였다. 정녕 주님의 손길이 그를 보살피고 계셨던 것이다. (루카 1,57-66)

 

 

제가 결혼하고 집사람이 첫 아들을 낳았을 때 그 기쁨을 잊을 수 없습니다. 양가 부모님께서 저보다 더 흥분하시고 눈시울을 적시며 기뻐하셨습니다. 장모님께서는 제 손을 잡고 연신 수고했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속으로 저는 한 일이라고는 아무 일도 없는데 하고 공연히 부끄러웠습니다. 고맙다는 말씀도 제가 들을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무엇이 고맙다는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좀 과한 인사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때 저는 아직 연륜이 모자라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일이 그저 당연한 일처럼 일상적인 느낌으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그 말씀의 뜻을 알아차릴 수 있었습니다. 산 간호를 처가댁에서 하는데 우리 아들이 첫 손자여서 그런지 온통 화젯거리가 되었습니다. 두 처제와 처남뿐만 아니라 조부모님, 가까이에 사는 처가 쪽 친지들이 자주 들락날락하며 아이를 보아 주었습니다. 다 큰 어른만 살던 집에 어린 아기가 들어오니 집안 분위기가 확 달라졌습니다. 할머님께서는 적막강산 같던 집이 모처럼 사람 사는 것 같다며 연방 즐거워하셨습니다. 

방안에서 아이를 씻기다가 장인 얼굴을 향해 오줌을 싸는 장면에 온 집안이 까르르 넘어갔으며, 잠에서 깨어나 자그마한 입을 오물거리는 모습에는 들리지도 않은 옹알이를 했다며 온 식구가 거짓말쟁이가 되었습니다. 

아기의 탄생은 한 집안에 그저 대를 이어주는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대화거리와 화목을 가져와 인생의 참 평화와 행복이 무엇인지 느끼게 하는 귀한 선물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인간은 이야기하려는 본능이 있고 이야기를 통해 사회를 이해한다.’ - 존 닐

인간은 이야기하는 존재라는 말이 있습니다. 인간은 끊임없이 이야깃거리를 만들어 내며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한다는 뜻입니다. 이런 인간의 특성을 호모나란스(Homo narrans,이야기하는 사람)라고 부릅니다. 심지어 철학자 비트겐스타인은 ‘우리가 생각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하려고 생각한다.’라고 말합니다. 이야기가 없는 사람은 살아도 살아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이야기하려고 삽니다. 내가 하는 이야기가 바로 내가 됩니다. 내 존재는 내가 하는 이야기로 확인됩니다. 사회적 지위나 내가 받는 연봉은 내 존재의 본질과는 아무 상관 없습니다. 금세 변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내가 하는 이야기는 내가 살아 있는 한 계속됩니다. 진심을 담은 이야기는 내가 죽어서도 이어집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끊임없이 이야기를 만들어냅니다. 별로 할 이야기가 없는 사람은 불행합니다. 살아도 산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엘리사벳이 아이를 낳자 즈카르야의 입이 스르르 열렸습니다. 전혀 이야깃거리가 없었던 그에게 첫 아들 요한이 이야깃거리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자기 가정뿐만 아니라 이웃에게도 기쁨과 평화를 가져다주는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온 유다 지방이 하느님을 찬미하게 되었습니다. 요즘 말로 스토리텔링 기법이 통하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스토리텔링이 화두인 시대이지만, 있지도 않은 거짓말을 꾸미거나 진실을 왜곡하는 이야기는 자신과 사회를 해롭게 할 뿐입니다. 진리를 담은 이야기라야 온 사회와 인류에 유익합니다. 

벙어리에서 이야기꾼이 된 즈카르야 이야기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깨닫게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에게 찬양할 이야깃거리를 제공해 주시려고 부단히 애쓰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무엇을 이야기하여야 하는지도 가르쳐줍니다. 이야기하려는 우리의 본성을 충실히 따를 때 하느님 나라에 한 발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는 놀라운 사실도 새롭게 깨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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