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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짐을 읽자 - 윤경재

106 윤경재 [whatayun] 2010-11-26

 

 

조짐을 읽자 - 윤경재

 

무화과나무와 다른 모든 나무를 보아라. 잎이 돋자마자, 너희는 그것을 보고 여름이 이미 가까이 온 줄을 저절로 알게 된다. 이와 같이 너희도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 알아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가 지나기 전에 모든 일이 일어날 것이다. 하늘과 땅은 사라질지라도 내 말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루카 21,29-33)

 

사무엘 상권 4장에 계약 궤를 둘러싸고 벌어진 큰 소동이 실려 있습니다. 대사제 엘리 시절에 이스라엘이 침략전쟁을 일으킨 필리스티아인에게 대패합니다. 그러자 이스라엘 원로들은 실로에 사람들을 보내어 만군의 주님의 계약 궤를 모셔오기로 결의하고 행동에 옮깁니다. 계약의 궤가 자기들과 같이 있지 않아서 전쟁에 대패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계약 궤의 위력을 잘 알았던 필리스티아인들이 처음에는 공포에 떨었지만, 곧 전의를 가다듬고 싸움에 임했습니다. 이스라엘은 계약 궤를 모시고 왔어도 전투에서 또다시 패하여 대 살육이 벌어집니다. 심지어 하느님의 궤도 빼앗기고 대사제 엘리의 두 아들 호프니와 피느하스도 죽었습니다. 

이런 불행한 사건이 벌어진 이유는 엘리의 두 아들이 평소에 주님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행실이 고약하고 사제임에도 주님의 제물을 업신여기고 주님의 제단을 더럽혔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막상 첫 전쟁에서 패하자 계약 궤를 주술적인 힘을 지닌 무슨 부적이나 되는 양 취급했습니다. 전쟁터에 들고 나가면 저절로 위력을 발휘하여 승리를 가져다 줄로 착각했습니다. 하느님의 뜻과는 상관없이 함부로 실로에 모신 계약 궤를 옮겨왔던 것입니다. 

계약 궤를 필리스티아인에게 빼앗겼다는 비보를 들은 엘리는 놀라서 목이 꺾여 죽고 말았습니다. 임신 중이던 며느리도 갑작스러운 진통에 애를 낳다가 죽었습니다. 한 가문이 풍비박산 났습니다. 

두려운 존재였던 계약의 궤로 무장한 이스라엘을 이겨서 승리에 도취한 필리스티아인들은 계약 궤를 업신여기고 전리품으로 자기들 다곤 신전에 바쳤습니다. 그러자 다곤 신상이 무너지는 변고가 생겼습니다. 또 계약 궤의 위력에 놀라 이리저리 다른 성읍으로 옮겨 보았으나 가는 곳마다 사람이 죽고 종기가 생기는 재앙이 닥쳤습니다. 결국 이 현상을 징벌과 고난이라 생각하고 더 이상 참지 못한 필리스티아인들은 일곱 달 만에 계약 궤를 이스라엘에 돌려주었습니다. 하느님의 능력을 보았으면서도 수건돌리기 놀이를 하듯 나와 무관한 곳으로 옮기기에 급급했습니다. 그들이 고난을 통해 보여 주시는 하느님의 현존을 알아챌 기회를 얻었지만, 그 천재일우의 기회를 날려 보낸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에 돌아온 계약 궤를 맞을 때 그 궤를 함부로 쳐다 본 사람들이 죽임을 당합니다. 계약 궤가 하느님의 현존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경외심을 잃고 호기심으로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그 후로도 계약 궤는 이스라엘에도 부담스럽고 꺼리는 대상이 되었습니다. 한동안 이리저리 옮기며 뒷방 노인네나 천덕꾸러기처럼 대접 받았습니다. 계약 궤는 다윗이 예루살렘에 모셔둘 때까지 한편에 치워두고 잊고 싶은 물건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다윗도 계약 궤를 모셔올 때 큰 교훈을 얻었습니다. 계약 궤에 손을 댄 자가 죽임을 당합니다. 매우 놀란 다윗은 계약 궤를 두려워하고 번제를 올리며 진정 하느님의 현존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계약 궤를 주술적인 힘을 지닌 부적으로 여기는 것이나, 그 궤의 위력을 통해 하느님의 현존을 보았으면서도 깨닫지 못한 필리스티아인들의 행위나, 하느님의 현존을 알면서도 자신들 삶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한편에 치워둔 이스라엘의 어리석음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습니다. 

오늘날 눈에 보이는 계약의 궤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변덕이 죽 끓듯하는 인간의 손에 더는 맡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주님의 말씀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오직 그 말씀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만 변할 뿐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에게 무화과나무의 변화를 보고 손에 잡을 수 없는 자연의 흐름을 읽는 지혜를 주셨듯이 언제, 어디서고, 무엇에서나 하느님의 현존을 깨달을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그저 우리의 어리석음과 게으름이 그런 조짐에 눈을 감게 할 뿐입니다.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통해 말씀하시는 하느님의 아들 예수께 우리가 보이는 행동은 어떤지 살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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