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성인/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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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자 그레고리오 10세 (Gregory X)
같은이름 그레고리 , 그레고리우스 축일 1월 10일 신분 교황 활동연도 1210?-1276년
교황 복자 그레고리우스 10세(Gregorius X, 또는 그레고리오 10세)는 1210년경 이탈리아 북부 피아첸차(Piacenza)의 귀족 가문에서 테달도/테오발도 비스콘티(Tedaldo/Teobaldo Visconti)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다. 그는 고향에서 성 안토니오 성당의 참사위원이 되어 여러 해 동안 자코모 페코라라(Giacomo Pecorara) 추기경을 위해 봉사했고, 1244년 자코모 추기경이 선종한 이듬해에는 교황 인노첸시오 4세(Innocentius IV)가 소집한 제1차 리옹 공의회 조직을 돕기 위해 프랑스의 리옹(Lyon)으로 갔다. 그리고 그해 여름 리에주(Liege)에서 대부제의 자리에 올라 거의 20여 년을 그곳에서 지냈다. 1265년에는 오토보노(Ottobono) 추기경을 수행하여 영국 교회를 방문하였다. 그는 프랑스와 잉글랜드 왕실의 막역한 벗이었다. 1248년부터 1252년 사이에 그는 파리(Paris)에서 공부했는데, 이때 위대한 신학자인 성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월 28일)와 성 보나벤투라(Bonaventura, 7월 15일) 그리고 미래에 교황이 될 인물들과 왕족들을 만나 친분을 넓혔다.
그는 예루살렘 성지를 순례하던 중인 1271년 9월 1일, 아직 사제품도 받지 않은 상태에서 교황 클레멘스 4세(Clemens IV)의 서거 이후 3년간 계속된 교황좌의 공석 끝에 6명의 추기경 위원회에 의해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소식을 듣고 1272년 2월 10일 비테르보(Viterbo)에 도착한 그는 3월 19일 그곳에서 사제품과 주교품을 받고, 3월 27일 로마의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그레고리오라는 이름으로 교황으로 축성되었다. 그는 1274년에 제2차 리옹 공의회를 소집하면서 주요 의제로 교회 개혁, 동방 교회와의 일치 문제, 예루살렘 성지를 위한 후원 등을 제시하였다. 공의회에서 동방 교회와 서방 교회 간의 화합을 도모했으나 그리스 성직자와 신자들의 저항과 예루살렘 해방을 위한 십자군 출정으로 말미암아 성공하지 못하였다. 공의회에서 다룬 주요 의제 가운데 교황 선거와 관련된 교령이 반포되었는데, 이에 따르면 교황이 서거한 후 새 교황 선거를 위해 추기경들이 폐쇄된 공간(봉쇄 구역)에 들어가 선거가 끝날 때까지 머물러야만 하는 오늘날 교황 선거 방법의 토대를 제도화했다.
리옹 공의회가 끝난 후 교황 복자 그레고리오 10세는 십자군의 출정을 위해 몰두하였다. 로마로 돌아오는 길에 1275년 10월 스위스의 로잔(Lausanne)에서 새로운 독일의 국왕으로 선출된 합스부르크의 루돌프(Rudolf von Habsburg)를 만났고, 그의 황제 대관식이 1276년 2월 2일로 예정되어 있었다. 교황 복자 그레고리오 10세는 알프스산맥을 가로질러 이탈리아 북부의 밀라노(Milano), 피렌체(Firenze), 아레초(Arezzo) 등을 방문하다가 열병으로 쓰러져 1276년 1월 10일 아레초에서 선종하여 그곳의 주교좌성당에 묻혔다. 그는 1713년 교황 클레멘스 11세(Clemens XI)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고, 교황 베네딕토 14세(Benedictus XIV)에 의해 “로마 순교록”에 이름이 추가되었다.
옛 “로마 순교록”은 2월 16일 목록에서 그에 대해 전해주었다. 이탈리아 토스카나(Toscana) 지방 아레초에서 피아첸차 출신으로 프랑스 리에주의 대부제로 있다가 교황으로 선출된 복자 그레고리오 10세가 잠들었는데, 그는 제2차 리옹 공의회를 열어 그리스 동방 교회와의 일치를 도모해 그리스도인들 사이의 불화를 해소하고자 노력했고, 예루살렘 성지 회복을 위해 지대한 노력을 기울였으며, 가장 거룩한 방식으로 교회를 다스렸다고 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교황 복자 그레고리오 10세가 아레초에서 선종한 1월 10일로 기념일을 옮겨 그에 대해 전해주었다. 리에주의 대부제에서 교황으로 선출되어 모든 면에서 그리스인과의 친교를 장려했고, 그리스도인들 간의 분열을 치유하고, 예루살렘 성지를 회복하기 위해 제2차 리옹 공의회를 소집했다고 기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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