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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자) 2024년 12월 12일 (목)대림 제2주간 목요일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
가톨릭 성인/축일
    성 비첼린 (Vicelin)
    같은이름 비셀리노 , 비셀리누스 , 비셀린 , 비젤린 , 비첼리노 , 비첼리누스 , 비켈리노 , 비켈리누스
    축일 12월 12일
    신분 주교 , 선교사
    활동지역 올덴부르크(Oldenburg)
    활동연도 +1154년

       성 비첼린(Vicelin/Vizelin/Wissel/Witzel)은 1086/90년경 독일 북서부 니더작센주(Niedersachsen州)의 베저강(Weser R.)에 면한 하멜른(Hameln)에서 부유한 귀족 가문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어렸을 때 부모를 일찍 여의고 이웃 마을의 사제였던 루돌프(Ludolf) 삼촌의 돌봄을 받으며 성장했다. 그는 처음에는 귀족 가문의 가정교사로 일하다가 자신의 지식이 얼마나 부족한지 깨닫고 파더보른(Paderborn)의 대성당 학교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그는 하르트만(Hartmann) 가문과 함께 지내며 교육받았고, 다른 동료들을 능가할 만큼 실력이 출중해 대성당 학교의 운영과 관리를 도왔다. 1118년에 그는 브레멘(Bremen)으로 가서 대성당 학교의 교장이 되었고, 그곳 주교에 의해 대성당 참사 위원으로 임명되었다. 그 뒤로 그는 더 깊은 학문 연구를 위해 프랑스의 랑(Laon)으로 가서 신학과 법학을 공부했다. 1126년 독일로 돌아온 그는 랑에서 인상 깊게 보았던 ‘프레몽트레회’(Chanoines Reguliers de Premontre)의 설립자인 성 노르베르토(Norbertus, 6월 6일) 대주교가 있는 마그데부르크(Magdeburg)로 갔다.

       마그데부르크에서 성 노르베르토에게 사제품을 받은 그는 슬라브족의 복음화를 위해 선교사로 파견되기를 원했으나 어떤 이유에서인지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성 비첼린은 브레멘으로 돌아갔는데, 다른 전승에 따르면 성 비첼린이 브레멘의 아달베르트 2세(Adalbert II) 대주교에게 사제품을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오늘날 독일 북부 지역인 홀슈타인(Holstein)에 사는 벤드족(Wends, 독일이 정복하여 그리스도교화한 서[西]슬라브계 여러 부족의 총칭)의 복음화를 위해 선교사로 파견되었다. 그의 첫 선교활동 근거지는 뤼벡(Lubeck)이었는데, 그곳에서 그를 후원하던 하인리히 왕자가 죽은 후 브레멘 근처 비펜도르프(Wippendorp)로 옮겼다. 그는 쉴 줄 모르는 설교가, 교사, 성공적인 선교사라는 칭호를 얻을 만큼 열정적으로 활동했고, 많은 사제들이 1127년에 그가 새로운 수도원(novum monasterium)을 세우는 것을 도와주었다. ‘새로운 수도원’을 뜻하는 독일어 ‘neues Kloster 또는 neues Munster’가 결국은 비펜도르프와 인근 지역을 합해 오늘날의 노이뮌스터(Neumunster)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도시로 발전했다. 성 비첼린이 설립한 새로운 수도원은 성 아우구스티노(Augustinus)의 규칙을 따랐고, 대주교에게 많은 기부를 받아 빠르게 성장했다.

       1147년 대(對)벤드족 십자군의 성공으로 1066년 슬라브족의 봉기로 사라졌던 예전 교구들을 복원하기 시작했다. 함부르크-브레멘(Hamburg-Bremen) 교구의 대주교는 홀슈타인 지방의 교구들을 복원하면서 1149년에 성 비첼린을 올덴부르크의 주교로 임명하였다. 하지만 함부르크-브레멘 교구의 대주교와 지역 공작과의 갈등으로 이듬해에야 착좌할 수 있었다. 그는 교구민의 영적 성장을 위해 힘쓰며 새로운 선교 근거지로 받은 플뢴 호수(Ploner See) 근처 보사우(Bosau)에 성 베드로 성당을 짓기 시작했다. 그런데 1152년 팔데라(Faldera)에 머물던 성 비첼린은 두 번째 심각한 뇌졸중을 겪었다. 그래서 생애의 마지막 2년을 노이뮌스터 수도원에서 마비된 상태로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며 고통 속에 지내다가 1154년 12월 12일 선종하여 그곳에 묻혔다. 성 비첼린은 ‘홀슈타인의 사도’ 또는 ‘벤드족의 사도’로 불리며 독일 가톨릭교회와 개신교회 안에서도 공경을 받았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12월 12일 목록에 성 비첼린의 이름을 추가하면서 독일 노이뮌스터에서 슬라브족의 복음화를 위해 헌신한 올덴부르크의 주교인 성 비첼린을 기념한다고 기록하였다. 성 비첼린은 라틴어로 성 비켈리누스(Vicelinus, 또는 비첼리노)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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