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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백) 2025년 2월 2일 (일)주님 봉헌 축일(축성 생활의 날)제 눈이 주님의 구원을 보았습니다.
가톨릭 성인/축일
    복자 시몬 피다티 (Simon Fidati)
    같은이름 사이먼 , 시모네 , 피다띠
    축일 2월 2일
    신분 신부 , 설교가
    활동지역 카시아(Cascia)
    활동연도 +1348년

       복자 시몬 피다티는 1295년경 이탈리아 중부 움브리아(Umbria)의 카시아에서 저명한 피다티 가문의 아들로 태어났다. 당시 카시아는 피렌체(Firenze) 공화국에 속한 작은 마을이었다. 그의 어린 시절에 대해 알려진 바는 없지만, 그는 처음에 자연과학을 공부하다가 나중에 신학과 성경에 관심을 두게 되었고, 스무 살 무렵 고향에 있는 성 아우구스티노 은수자회에 들어갔다. 그가 수도 생활을 선택한 데에는 당시 프란치스코 수도회의 급진적 영성가였던 안젤로 클라레노(Angelo Clareno) 수사의 영향이 컸다. 그와 만남을 통해 회심을 체험한 복자 시몬 피다티는 수도회에 입회한 후 성경과 교부들의 가르침, 그리고 순교자와 성인들의 행적을 연구하는 데 힘썼다. 수도회에 가입하고 몇 년 지나지 않은 1318년경부터 그는 열정적인 설교자로 여러 도시에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의 금욕주의와 참회에 대한 설교는 많은 이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고, 그에게 영적 지도를 받고자 하는 이들도 늘어났다. 그는 영적 지도를 구하는 사람들에게 정성껏 편지를 써서 보내주었는데, 이것은 나중에 그의 사상과 교리가 응축된 방대한 “편지 모음집”(Epistolario)으로 출판되었다.

       그는 설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말이 아니라 육체적 고행이라고 했고, 하느님의 명에 따라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미리 준비할 필요가 없다는 원칙을 철저히 지켰다고 한다. 그의 가장 대표적인 작품은 15권으로 된 “우리 구세주의 저작”(De Gestis Domini Salvatoris)이란 복음 주석서로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가르침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담고 있어 중세에 널리 읽혔다. 그는 또한 사회에서 소외된 이들을 위해 헌신했는데, 특히 매춘과 관련된 사람들의 회개와 개종을 위해 노력했다. 그는 피렌체에 수녀원을 설립하고 회심한 여성들과 미혼모를 위한 피난처도 세웠다. 그는 1348년 2월 2일 전염병이 닥쳤을 때 병에 걸려 피렌체에서 선종했고, 그의 유해는 현재 카시아에 있는 성녀 리타 대성당(Basilica of Santa Rita)에 보존되어 있다. 그는 1833년 교황 그레고리오 16세(Gregorius XVI)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2월 2일 목록에 성 아우구스티노 은수자회의 신부인 복자 시몬 피다티를 추가하면서, 그가 말과 글로써 많은 사람을 더 나은 그리스도인 생활로 이끌었다고 기록하였다. 성 아우구스티노 은수자회에서는 그의 축일을 2월 16일에 기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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