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성인/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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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 아가피토 1세 (Agapitus I)
같은이름 아가비도 , 아가비또 , 아가비뚜스 , 아가피투스 축일 4월 22일 신분 교황 활동연도 +536년
성 아가피투스 1세(또는 아가피토 1세)는 이탈리아 로마(Roma)의 유명한 가문 출신으로 정확한 출생 연도는 알 수 없다. 그의 아버지는 로마의 첼리오(Celio) 언덕에 있는 성 요한과 성 바오로 성당(Basilica dei Santi Giovanni e Paolo)의 신부였던 고르디아누스(Gordianus)로 교황 성 심마코(Symmachus, 7월 19일)를 반대해 일어났던 폭동으로 502년 9월에 사망하였다. 어려서부터 아버지의 영향으로 성직자 양성 교육을 받은 그는 로마 교회의 대부제가 되었고, 535년 5월 13일에 교황 요한 2세(Joannes II)를 계승하여 교황으로 즉위하였다. 그는 교황 재위 11개월째인 536년 4월 22일 병에 걸려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에서 선종해 지극히 짧은 재임 기간을 기록하였다. 그동안에 그는 교육 문제와 학문 연구에 큰 관심을 두어 공립 학교를 설립하였다. 정치적으로는 유스티니아누스 황제(527~565년 재위)가 그리스 출신 장군인 벨리사리우스를 통해 시칠리아를 점령하고 이탈리아를 공격하려고 하자, 이탈리아를 지배하던 동고트족의 테오다하트(Theodahad) 왕은 교황에게 황제와의 평화 협상을 중재해달라고 요청했다.
직접 여행 경비까지 마련해 출발한 교황 성 아가피토 일행은 536년 2월 황제가 있는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에 도착해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하지만 예상했던 대로 황제는 전쟁을 멈출 뜻이 전혀 없었다. 결국 교황의 평화 중재는 실패로 돌아갔다. 그러자 성 아가피토 교황은 즉시 종교적인 문제로 주의를 돌렸다. 그는 정통 교리를 선언한 451년 칼케돈(Chalcedon) 공의회의 결정이 훼손되는 위험을 간신히 막아냈다. 당시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는 안티무스(Anthimus)였는데, 그는 그리스도의 두 가지 본성인 신성(神性)과 인성(人性)이 하나의 위격(位格)으로 존재함을 부인하는 그리스도 단성론(單性論)을 더 발전시킨 에우티케스(Eutyches) 대수도원장의 주장을 은밀히 옹호하고 있었다. 게다가 안티무스는 테오도라(Theodora) 황후의 보호와 고위 성직자들의 지지를 받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교황 성 아가피토는 자신에게 비우호적인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를 설득해 교회 회의를 개최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육화의 신비와 관련된 교리를 설명해 안티무스 총대주교를 파면하고 정통 교리를 지지하는 메나스(Menas)를 총대주교로 임명하였다.
성 아가피토 1세 교황은 536년 4월 22일 알 수 없는 병에 걸려 콘스탄티노플에서 선종했고, 그의 장례식은 그곳에서 성대하게 거행되었다. 그리고 그의 시신은 납 관에 안치되어 로마로 옮겨져 그해 9월 20일 성 베드로 대성당에 안장되었다. 옛 “로마 순교록”은 성 아가피토 1세의 유해 이장일인 9월 20일 목록에서 교황 성 대 그레고리오 1세(Gregorius I Magnus, 9월 3일)에 의해 그의 거룩함이 증명된 교황 성 아가피토를 기념한다고 전해주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선종한 날인 4월 22일로 축일을 옮겨 교황 성 아가피토 1세가 로마의 주교는 도시의 성직자들에 의해 자유롭게 선출되어 교회의 존엄성이 모든 곳에서 존중받을 수 있도록 노력했고, 고트족의 테오다하트 왕의 요청으로 콘스탄티노플의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에게 가서 참된 신앙을 옹호하고 메나스를 그 도시를 주교로 임명했으며, 그곳에서 평화롭게 선종했다고 기록하였다. 동방 정교회에서는 그의 축일을 4월 17일이나 22일에 기념하고 있다.♣
- 성 아가피토 1세 (Agapitus 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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