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성인/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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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 아이슈타인 에를렌드손 (Eysteinn Erlendsson)
같은이름 아오스딩 , 아우구스띠노 , 아우구스띠누스 , 아우구스티노 , 아우구스티누스 , 어거스틴 , 에이스테인 , 오스틴 , 외스테인 , 외이스테인 축일 1월 26일 신분 대주교 활동지역 니다로스(Nidaros) 활동연도 +1188년
성 아이슈타인 에를렌드손은 1120년 이후 노르웨이의 니다로스(오늘날의 트론헤임[Trondheim]) 인근 농장에서 귀족 가문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1140년경 성 아우구스티노의 수도 규칙을 따르는 프랑스 파리(Paris)의 생빅토르(Saint-Victor) 수도원에서 교육을 받았다. 그러면서 자신의 이름을 자랑스럽게 라틴어 형식인 아우구스티노 에를렌드손(Augustinus Erlendsson)으로 불렀다. 그는 사제품을 받고 노르웨이의 국왕인 잉게 크로크리그(Inge Krokrygg)의 전속 사제가 되었다. 1157년 2월 24일 니다로스의 초대 주교인 존 버거슨(Jon Birgersson)이 선종하자 잉게 왕은 그를 후임 주교로 임명하였다. 노르웨이의 두 번째 대주교로 선출된 그는 교황으로부터 주교품과 대주교의 직위를 상징하는 팔리움을 받기 위해 이탈리아의 로마로 갔다. 그런데 1159년 9월 1일 교황 하드리아노 4세(Hadrianus IV)가 선종하고 새 교황으로 알렉산데르 3세(Alexander III, 1159~1181년 재임)가 선출되었는데, 일부 반대파가 대립 교황을 세우면서 혼란스러운 시기가 계속되고 있었다. 그로 인해 뒤늦게 주교품을 받고 1160년 늦가을에 알렉산데르 3세 교황으로부터 팔리움을 받은 후 1161년에 노르웨이로 돌아왔다.
노르웨이로 돌아온 그는 로마와 노르웨이 교회 간의 유대 관계를 강화하고자 노력했다. 그런데 그가 돌아왔을 때 노르웨이는 매우 혼란스러운 상태였다. 잉게 왕이 조카에게 살해당하자 잉게 왕의 지지자들이 에를링 스카케(Erling Skakke)를 중심으로 모여 그의 아들인 마그누스 에를링손(Magnus Erlingsson, 또는 Magnus V)을 왕위에 올렸다. 왕위가 왕의 아들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넘어갔는데, 성 아이슈타인 에를렌드손은 마그누스 5세 왕을 후원하며 교황 대사와 다수의 성직자 및 고위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노르웨이 역사상 첫 번째 왕실 대관식을 거행하였다. 그는 귀족들의 간섭을 물리치고 자유롭게 노르웨이의 교회를 사목했고, 그 당시 유럽의 교회 관습들을 노르웨이 교회에 적절하게 이식하는 데 크게 성공하였다. 그는 또한 교황 대사로도 활약하면서 성직자들의 공동생활을 유도하고 그에 알맞은 규정도 만들었다. 왜냐하면 그 당시 노르웨이 성직자들이 독신제도를 제대로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 아우구스티노 수도회를 두 개 정도 설립하였다.
1179년 마그누스 5세 왕이 그와 대립하던 스베레(Sverre)와의 전투에서 패했을 때, 그를 후원했던 성 아이슈타인 에를렌드손도 피신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는 영국으로 가서 잠시 망명 생활을 했다. 그는 서퍽주(Suffolk州)의 세인트에즈먼즈베리(St Edmundsbury) 수도원에 머물렀는데, 아마도 그곳에서 노르웨이의 성인 왕이자 순교자인 올라프(Olav, 7월 29일)의 전기(‘Passio Olavi’, 원제는 Passio Et Miracula Beati Olaui)를 작성한 듯하다. 여기서 그는 성 올라프 왕의 선교 활동과 순교와 기적 이야기를 중심으로 다뤘다. 그는 1183년 스베레와 화해하고 고국으로 돌아와 더는 정치 문제에 관여하지 않고 성 올라프의 유해를 안치할 새로운 대성당 건설을 계속했다. 그는 1188년 성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 미사를 봉헌한 다음 날인 1월 26일에 선종하였다.
그는 1229년 니다로스에 모인 노르웨이 주교들에 의해 만장일치로 성인으로 선언되었으나 시성 권한이 교황에게 있었기에 공식적인 절차는 보류되었다. 그 후 지역 교회 차원에서 그에 대한 공경이 허용되었고, 오랜 시간이 흘러 2001년 교황청 경신성사성은 트론헤임 교구에서 그의 축일을 선택 기념일로 지내도록 승인하였다. 이듬해에 트론헤임 교구에서 축일로 지내도록 격상하고 다른 교구에서는 선택 기념일로 지내도록 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1월 26일 목록에 노르웨이 트론헤임의 주교인 성 아우구스티노(아이슈타인) 에를렌드손의 이름을 추가하고, 그가 군주에 맞서 인내심을 갖고 교회를 수호하며 놀라운 배려로 교회를 성장시켰다고 기록하였다. 성 아이슈타인 에르렌드손은 노르웨이에서는 외스테인/외이스테인 에를렌드손(Øystein Erlendsson)으로 불린다.♣
- 성 아이슈타인 에를렌드손 (Eysteinn Erlends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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